그래서, 지육을 반출할 경우 포장하여 반출하기를 권장한단다. 안 해도 그만인데. 나중을 위한 포석인가? 콜드체인시스템을 도축장부터 구축하겠다는 지난 과거부터 꿈꿔온 꿈의 실현이 아니었나.. 하.. 법은 법인데 달라질 알맹이 없는 뭐는 뭐? 제발, 잘못 보았기를 바랄 뿐이다. 김성호.
왜 이다지도 돼지시장에서는 원료돈 정산방식(지급률), 출하방식(생체중 기준), 그리고 도축장 반출방식(온도체) 등 온갖 부조리가 잔존하는 것일까? 수입산 돼지고기와 경쟁은 뭐로 하나? 생체중으로 출하한 온도체 한돈이면 가능하다는 말인가? 생산과 유통업계의 주장인가? 가격의 완충과 시장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온갖 외부효과를 내부화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작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지난 수십년을 넘어오면서 미루었던 일부터 실행한 다음에 다음 다음을 기약했으면 싶다. 과연, 가당키나 한가 라는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
<참고> 부조리 란,
원래는 조리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논리적 의미만을 표시하는 말이었으나 반(反)합리주의적인 철학이나 문학, 특히 실존주의 철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용어가 되었다.
J.P.사르트르의 소설 《구토(嘔吐)》(1928)에서는 마로니에 나무의 뿌리와 같은 ‘사물 그 자체’를 직시할 때에 그 우연한 사실성(事實性) 그것이 부조리이며 그런 때에 인간은 불안을 느낀다. 이것은 M.하이데거나 S.A.키에르케고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A.카뮈는 그것을 다시 일보 전진시켜 《시지프의 신화》(1942)에서 “부조리란 본질적인 관념이고 제1의 진리이다”라고 하여 세계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태도를 부조리라고 규정하였다.
원래 부조리한 세계에 대하여 좌절을 각오하고 인간적인 노력을 거듭하여 가치를 복권하는 것이 카뮈의 부조리에 대한 주장이었다. 따라서 카뮈의 경우 부조리는 당연히 ‘반항적 인간’을 낳는 것이다. 이리하여 부조리의 사상은 F.W.니체 등과도 유연성(類緣性)을 갖게 된다. 어떻든간에 R.데카르트 이래의 근대합리주의적 가치관에 대결하여 그것과는 다른 곳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을 때 부조리는 비로소 그 본래의 문제성을 나타내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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