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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어떻게살것인가

삶(= 죽음)을 대하는 자세

by 큰바위얼굴. 2021. 3. 22.

죽음이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온다.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삶' 이다.

 

여한이 없는 삶이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이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을, 나에게 가장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 순간이다.

 

"아빠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는 치형이,

"여보, 이제 돌아올 때도 되었지 않나?" 하는 아내의 말에 대꾸한다.

 

순리대로, 켜켜이 쌓이다보면, 그리고 그 안에서 준비하고 있으면 되겠지. "멀지 않아졌어. 점점."

 

부쩍 치통이 있고,

가끔 머리 속이 가지럽고,

턱이 뻐근하다.

 

다 알겠는데, 생계를 하기 위한 수입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재 벌고 있는, 아니 쓰고 있는 돈 만큼은 벌어야 할텐데 이를 대체할 수단 혹은 방법이 마땅치 않다.

벗어나려 노력하지만 아직은 좀 더 준비가 필요하다.

 

내가 가진 역량을 깊숙히 들여다 보고 있고,

이를 세상과 연결 짓기 위해 생각에 잠길 때가 잦아졌다.

 

하고 싶은 건 찾았는데, 현실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한 상황.

죽음과 삶은 양면처럼 받아들인다.

 

간절하게 내게 오질 않길 바라는 죽음에 대하여

간절한 삶을 그 만큼 살고 있는지에 대해 반성한다.

 

일상처럼 다가올 그 때,

후회없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바란다.

 

가슴이 아프다. 아직은 덜 아문 것처럼, 아니 설익은 것처럼 가끔 되돌아 본 '죽음'은 내게 깊숙히 찔러온다.

아프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아파도 좋으니 더 더 보고 더 나누고 더 함께 하길 원하는 '소망'이 커져간다.

욕심이려니. 비록 욕심일망정 그래도 바라고 바란다. 내 남은 생을 가져가더라도.

 

설익은 것처럼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깊은 숨을 천천히 내쉬면서

잠깐의 여유를 되찾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조금만 외면해도 좋지 않을까?    김성호.

 

 

 

 

  • 스스로 `自`2021.03.23 10:46

    죽음은 삶과 같다.
    내가 죽거든 베토벤 곁에 묻어 달라!
    수용이 아픔을 동반한다지만,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방치된 삶이 소중하지 못한 삶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죽음은 기꺼움으로 맞이하는 축복으로 삼아야 하고,
    삶은 죽음을 기꺼이 맞이할 만큼 살아보는 게 필요하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이는 누구인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 인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일은 무엇인가?

    오늘도 잠시 생각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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