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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어떻게살것인가

여보 힘내

by 큰바위얼굴. 2021. 6. 17.

 

산책 초입, 뒤로 찍은 배경이다.

라디오 소리가 커서 산책로 녹음에 방해가 되는 비닐하우스가 오른쪽,

덩그란이 아무리 봐도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은 건축물, 일명 우시장이 왼쪽에 위치해 있다.

 

도대체 여기에 이 건물이 있는 이유, 혹은 배경은 뭘까?

우리들이 내린 결론은 잘못 지었다 라기 보다는 투자에 가깝다 라는 것이다.

아무 이유없이 이렇게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건물이 지어졌고 이용은 하지 않는다. 더구나 신식, 즉 얼마 되지 않아 보인다.

이용에 너무 불편하기 때문에 사실상 방치된 채 있다.

 

어제 대화는 중간에 끊겼다.

당연하게도 블럭방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관점 차이 때문이다.

 

"당신이 하기 싫으면 한 발 물러나서 지켜보고 당신 삶을 살면 어때?" 하는 말이

"그래도 변한 건 없어." 하면서 이도저도 못한 채 그냥 앉아있는 모양이 눈에 선하다.

 

떠난 마음, 상실감, 허전함, 짜증, 찌뿌둥함

그런 가운데 의욕까지 없다. 만사가 귀찮아 보인다.

그러니 관심있어 하는 둘째 영탁이에게 맡겨 보는 건 어때? 라는 제안조차

"그래도 변한 건 없어." 하면서 공부는? 학교는? 토일은 그렇다치고 평일은? 하면서 따져 묻는다.

(이게 아닌데, 이러려고 말을 건 것이 아닌데... 서둘러 사과하고 마무리 짓는다)

 

골치가 아프다.

다 제 멋대로다.

일은 일 대로 벌여놓고 탓 하기 바쁘다.

첫째 영록이는 자기 안에 갖혀서 또다시 "기숙학원에 보내주면 정말 열심히 전략을 다할께요." 하는 언행을 반복한다.

이런 요구조차 건방지다. 방방 뛰고 못내 흔쾌히 ok하지 않는 아빠에게 서운함을 온몸으로 피력하고 거친 말투를 내뱉는다. 

 

"아냐, (조금 성격이 지랄맞아도) 자기욕심이 있고 뭔가 하려는 사람에겐 당연히 따라 붙는 거야." 하면서 

애써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처음도 아닐 뿐더러 나아지고 있고 현명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기다리면 되는 일일 뿐이다.

 

둘째 영탁이는 공부에 흥미가 없다. 없어 보인다에서 없다로 바뀌었다. 블럭방에 마련된 공간에 머물기는 하지만,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성취욕이나 의욕이 보이질 않는다. 밑줄은 그어놓지만 그 또한 행위에 가깝다. 마치 영혼없는 몸짓이라고나 할까. (내가 잘못 판단했기를 바란다.)

그래서 탈출구가 필요하다. 이 세상에 너가 흥미가질 것이 아예 없을까? 그렇지 않아. 뭐든 해보면 그 작은 동기를 찾을 수 있을꺼야 하면서 허클베린 핀이 모험을 떠나기로 다짐했을 그 순간을 떠올리며 그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내 서희는 패배의 그림자가 짙다. 마치 패배를 처음 당하는 것처럼 온몸으로 몸부림치고 괴로워한다. 심지어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면서 이제까지 한 것이 없단다. 한 사내의 배우자이면서 세 아이의 엄마, 그리고 자기삶을 조금 더 풍요롭고 다채롭게 하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바로 블럭방이었음을 잘 알고 있을텐데 그 마음은 어디가고 당장 눈앞에 닥친, 다른 두 곳은 평상시처럼 잘 되는데 나만 그래 그러면서 긴장의 끈을 놓치를 못하고 매일매일 자리에 앉아 속을 썩히고 있다. 왜 손님이 오지 않는 걸까? 라는, 왜 나만?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다. 그리고 미련스럽게도 매일매일 태엽을 감았다가 풀어놓는 것처럼 반복한다. 그러하니 쉬이 풀리겠는가!

 

"여보, 조금만, 아니 한 발 뒤로 물러나서 봐봐" 하는 말에도 역정을 낸다. 큰 소리로 니 말은 말 같지도 않다 라고 되받아친다. 그건 해결책이 아니라고 한다. 참으로 똑똑하다. 심지어 무척 당당하다.

그러면서 아이러니 하게도 속은 무디고 썩는다. 본인조차 안다. 알면서 매일 태엽을 감았다가 푼다.

(내가 잘못 판단했기를 바란다. 이 또한)

 

그리고, 오늘.

"잠 못 드는 아내를 위해" 라는 메시지를 만들기 시작했던 이유가 있는 것처럼

"여보, 힘내" 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산책길 녹음기를 켠다.

 

https://youtu.be/ggCUKYCi4CM

 

 

 

 

  • 스스로 `自`2021.06.17 08:54

    아무것도 아니다.
    관계가 힘들다면 상종하지 않으면 되고, 나아가 무관심하면 된다.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 이롭다.
    만약, 사업이 힘들다면 힘든 이유를 찾아 해결하면 된다.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힘든 이유는 따로 있다.

    가격이 다른 곳 보다 높아서,
    비즈 재료비가 자꾸 추가되니 아이들이 좋아해도 부담되서,
    레고는 신상 없이 잘 눈에 띄지 않아서,
    정주여건 상 이용고객이 적어서,
    잘 알려지지 않아서,

    활황일 때는 눈에 띄지 않는 문제들이 우후죽순 튀어 나온다.
    그러면서 진성고객이 드러난다.
    준서, 우택, 예담...

    내게도 진성고객이 있으니 1+1 = 2 +1 = 4 +1 = 6 +1 = 10
    이처럼 배수로 뛴다. 1명의 고객에게 감동을 주면 그 고객은 입소문을 낸다.

    높은 허들은 낮추면 된다.
    그리고 내가 집중할 것은 오지않는 고객이 아니라 와서 내 앞에 앉아 있는 고객이다.
    찌뿌둥한 건 아닌지, 어제는 즐거웠는지, 오늘은 뭘 할 건지
    아이들은 생각 보다 크게 반응한다. 관심에.

    거의 대부분 블럭방에 방문하는 아이들은
    어울리기 보다는 홀로 만들고 만든건 뿌듯해 하면서 그걸 좋아한다.
    다만 자랑이든 일상이든 자기를 내 보이는 것에 더한 의미를 둔다는 건 대부분의 아아들과 똑같다.

    충분히 전했다고 보는데
    여전히 날카롭다. 살이 떨린다. 답을 구하려고 하는 노력 보다는 주저앉아 우는 걸 택한 듯 하다.
    다 해보았다는 말을 한다. 이상하다. 문제는 지금 맞이했는데 해 보았단다.
    만약 위에 열거한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면 물어봐도 좋겠다. 그렇지만 어디 쉽겠나
    이 물음은 오지 않는 고객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과연 답을 해줄 만큼 친절할까?

    그러니 모험을 할 필요가 있다.
    전략적 휴업을 통한 재단장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러 노력들의 흔적을 대자보를 통해, Zone의 코스를 통해, 빙고 게임을 통해, 또다른 재미를 위해 나타내 보면 어떨까?
    사실 이 보단 어쩌면 기다렸다가 이벤트를 하거나
    최근 계약한 것처럼 쿠폰을 발행하거나
    하는 일련의 노력이 더 잘 통할 수는 있지만, 이 또한 본질은 아니다.

    실패는 실패로 받아들이고,
    바꿀 건 바꾸면 된다.

    또 다른 시작을 하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잠시 피해 있어도 좋겠다.

    내가 잘 못 했다면
    욕을 먹어야 할 건 나.

    원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나이고
    문제의 핵심이 되는 것이 나라면
    나를 바꾸면 된다.
    당신도 잘 알듯이 내 문제는 내가 바꾸고 그 근간을 이루는 몸과 마음을 튼튼히 하기 위해
    산책을 하고 단련을 한다.
    우습게도 보이고 갖잖아 보이기고 하고 뭐 별거 있어 하는 걸로 보인다.
    피할 것도 부딪힐 것도 없다.
    그냥 좀 피곤하면 자고 자고 일어나서도 지끈거리면 잠시 뒤로 물러나도 좋겠다.
    아무것도 아닌데, 어쩌면
    아무일도 아닌데, 너무 평탄해서 일까? 아니면 부의 축적이 생각 보다 빨리 왔기 때문일까?
    큰 보답에는 큰 우울이 뒤따르는 것이 맞는가?

    아니다.
    큰 보답은 그 만한 노력을 한 결과물일 뿐이고 우린 허투로 하지 않았고 그러지 않을 것이니 그 말은 틀렸다.
    큰 우울은 그냥 패배감, 상실감, 자신감 잃은 모습, 사실 모두 다 자기 생각일 뿐.

    갖혀 있는 이는 누굴까?
    나일까?
    영록일까?
    당신일까?

    목욕탕에 갈 수도 없어 때를 벗겨 버릴 수도 없다.
    껍질을 벗으면 안 될까?
    당신 곁엔 내가 있잖아.
    멍청하지만 현명하고 바보지만 둔중하고 재미없지만 솔직하고 위로할 줄 모르지만 마음을 다하고 당당해 보이지만 뭔가 어설픈 나, 왜 자꾸만 자기를 가두고 자기가 자기가 자기가 하려고만 할까?

    잘못이라면 이 또한 인정하면 쿨하다.
    실수하면 고치면 쿨하다.
    실패라면 딪고 일어서면 쿨하다.
    하기 싫다면 물러서면 쿨하다.
    억지로 라는 마음이 강하다면 내려놓으면 쿨하다.
    그 외는 내 문제가 아니니까.

    못 미더움,
    잃어버린 자신감,
    흔들린 정체성,
    답답한 마음,
    이 또한 내 모습이고 당신 모습이다.
    그러하니 당신 곁에 내가 있고 내 곁에 당신이 있다.
    당연하게도 잘 알지 못하고 모두 이해할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이해하려 하고 마음을 다해 "제발, 아프지 않게. 자기를 책망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하는 말을 한다.

    누구나 완성체는 아니고 이는 지극히 당연하다.
    미 완성체이니까 당연한 일이고
    미 완성체니까 어쩌면 서로를 위하는 것이 아닐까!

    더 좋은, 더 행복한, 더 기쁜 일들을 만들어가고 싶다.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래왔듯이 우린 앞으로도 그럴 건데 당신은 자꾸 침몰하는 배에 앉아 있는 모양세를 취한다.
    여보, 침몰하는 배의 구멍이 작다면 손을 집어 넣어 막으면 되잖아?
    너무 구멍이 커서 그리고 너무 많이 가라앉았다면 배를 탈출하면 되잖아?

    망망대해, 한 척의 배가 있어 길을 떠나네.
    둘이 만나 하나의 둥지를 틀고 계속 나아가네.
    어느 사이엔가 가족이 불어 났다네.
    어디로 갈지 어떻게 할지 모든 정해지지 않은 것들이 많지만,
    배는 나아가야 하고 계속 간다네.
    배가 나아가는 이유는 배이기 때문이니 굳이 고민할 꺼리는 아니라네.
    배를 튼튼하게 하고 의식주를 해결하고 나아가는 것이 당면한 일상이라면,
    배가 나아가는 그 목표를 정함이 삶의 지향점 이듯이
    계속 고뇌하고 번민하되 웃음을 잃지 말고 하면 족하다네.
    왜냐하면 그 목표는 어차피 피상에 불과하니까.

    배가 배인 이유를 따져 묻지 않듯이
    배가 나아가는 목표를 굳이 정하든 말든 크게 게의치 않듯이
    배를 함께 몰아 가는 그 길이, 그 길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이 바로 배이고 목표인 것.
    배가 배인 이유를 굳이 찾아 선에 이르길 바라지 않고,
    배의 목표를 굳이 정하여 하나의 선을 지향하지 않는다.
    이는 굳이 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정작 고민할 건 배 위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 그 속에 함께한 사람들, 그리고 희노애락.
    어찌 행복하기만을 바랄 것인가!
    어찌 평탄하기만을 바랄 것인가!
    이는 지극히 큰 욕심이다.

    힘든 시기를 거쳐 나를 단단히 만들듯이
    이유가 있다면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하면 족하다.
    사는 이유가 감정을 느끼는 데 있다면, 함께 하는 이유는 감정을 나누는 데 있다 하겠다.
    감정은 이성을 앞서고
    잘난체 하는 이성은 감성에 지배된다.
    흔들리면 태반이 감정인 것이고 흔들린 빈틈과 부족함은 결국 관심과 사랑을 끌어당긴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당신,
    제발 그만 미련을 훌훌 털고 일어나 나를 반갑게 맞아주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너무 심력을 소모하지 마오.
    살다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한 편의 드라마 처럼 흘러간다오.
    당신과 함께 만들어 온 그 수많은 시간의 편린들이 내게 지금 행복감을 듬뿍 주고 있듯이
    당신 또한 내 이런 마음을 받아주면 좋겠소.

    유명한 일화에서 우린 느낀다오.
    나두 그러구 싶다.

    여보,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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