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눈을 뜨고 찾은 테마다. 찾는데 한참을 헤메고 헤맸다. 어떤 주제는 부담없이 떠올랐다면 어떤 주제는 한참을 찾다가 마지막에 아하! 하면서 떠오른 것조차 있다. 물론 지금 말하고자 하는 기록하는 삶은 그 찾아헤맨 주제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먼저 기록한다. 기록하는 삶이 얼마나 값진 축복인지 나타내 보려고 한다. 짧게나마 부족하게나마 이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기록하는 삶이 지닌 그 모태라고 할까 가치라고 할까 그 기록의 시작이 결국 상상을 연결하는 하나의 출구였음을 알았기에 더욱 그러하다.
기록되어 진다. 내 삶은 내 모습은 남의 시선에 면면을 이루어 기록되어 지고 그 모습은 면면이 나를 둘러싸 나를 중심으로 한 다면중심 세상을 연다. 이런 맥락이 바로 다면중심 세상론 이다. 기록되어진 삶, 성경말씀이 사도들에 의해 기록된 예수의 삶인 것처럼. 기록되어졌지만 내 삶인 것처럼, 블로그에 담아낸 수많은 이야기들이 내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등장한 어머니, 장인, 장모 등 모두에게 단면이 되어 그들의 삶이 영원히 남겨진 것처럼. 내 삶을 그리다보니 남의 삶 또한 담겨 더욱 풍성해진 것이 삶이 되어 나타난 것처럼. 기록되어진 면면은 영원히 남아 이어질 것이고 그 이어짐이야말로 앞으로의 이어달리는 주자로서 기회를 더 받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다시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그 모습을 떠올려보라. '갯마을 차차차'에서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어릴 때 바닷가에서 사진 찍을 때 개다리 춤을 추어 웃겼다거나 고등학생 때 편의점에서 100원을 더해줬다거나,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에게 한강에서 투신자살하려할 때 엠블런스를 불러준 일이라거나 우린 미처 인연이 아니라고 여겨 지나치더라도 언젠가 알든모르든 다시 이어져 면면히 흘러서 세상을 풍요롭게 그리고 이롭게 한다는 것을 난 믿는다.
기록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내 아이들이 내 아내가 내 가족이 모두 자신의 삶을 기록했으면 좋겠다. 짧은 문장으로 느낌을 그때그때 적어도 좋고 보낸 메시지나 통화한 내용을 한군데 몰아서 모아놓아 잃지 않아도 좋겠다. 클라우드에 모아놓은 자기만의 기록물이라해도 좋겠으나, 가능하다면 SNS에 공유가능한 형태이길 바란다. 기록이란 나를 나타내는 것, 내 삶을 보여주는 것, 그렇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그럼으로써 내려놓은 혹은 바닥에서 바라보는 위로의 삶을 지향하는 것, 가진 것 없이 허허로운 가운데 일상을 마주하는 것, 대함이 하루하루 매 순간 새로운 것, 쓰고쓰면 남은 감정은 사실 공허한 가운데 충만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는 것 등 기록이 지닌 면면은 이로운 것 투성이다. 어찌 내게 이롭기만 한 기록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메모광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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