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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우리가족 이야기

'난소와 자궁을 첫 생리 전에 도려내는 것이 미래에 있을 종양 발생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해나와 예티 중성화수술)

by 큰바위얼굴. 2022. 5. 27.

해나와 예티, 수술과 교배 사이에서 고민을 한다. 밤잠을 설쳤다. 엄습한다. 내 판단이 중요함에 따른 막대한 책임이 뒤따름에 마음이 무겁다. 애써 잠을 청한다. 그리고, 일어나 산책길에서 잡스럽다가도 버리고 정리한 생각을 모아본다.

 

1.

동물병원 의사는 말한다. 교배를 하지 않을거면 난소와 자궁을 들어내는 것이 좋다고. 개의 생이 15년에서 20년으로 길어진 만큼 질병 또한 발생이 커졌다고. 특히 생식기관 발병이 크다고. (겁을 준다? 직업관일까?)

 

속으로 생각되어진다. 직업관 만은 아닐텐데, 왜 탈리도마이드나 지나보니 그게 맞지 않은 행위였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지금은 유행처럼 떼어내는 것이 관습처럼 되어버렸다지만 어디 그러한가? 타고난 신체의 일부를 도려낸다? 과연 윤리적인가의 문제를 떠나서 개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없는 것일까? 과연, 있을 수 있는 미래의 발병 때문에 생리시작 전에 30여만원을 들여 수술을 해야 하는가? 또다시 경제적 논리에 갖히고 만다.

 

난소와 자궁 호르몬은 아이를 여성으로 변모시킨다. 신체 뿐만아니라 정신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는 단지 태어날 아이들만을 위한 기관이 아니다. 내 신체, 내 정신, 내 건강인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단지 호르몬 만 그렇까!

 

(본질에 가깝도록 생각하고 판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무겁게 짖누르는 책임감을 밀어 올리려고 노력한다)

 

 

2.

나만이 혹은 내가 수술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키우자는 주장을 펴는 이유는 뭘까? 한참 고민이 되더라. 도대체 난 뭘 우선해서 바라는 것일까? 수술이 싫어서? 미래불확실성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교배를 하고 싶어서? 자연스런 성장을 지켜보려고?

 

모두 있다. 미래불확실성 때문에 수술을 해서 미연에 방지하자는 주장에 대해, 그러니까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산책을 가고 뛰고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말로 응답한다. 분명 어떤 질병이든 걸릴 것이다. 이건 답이다. 나이가 들고 늙어갈 수록 기관은 노화되어 기능이 약해질테니까. 더구나, 아프다고 통증이 있다고 말을 하지 못하는 개의 입장에서 적시에 치료하거나 하는 타이밍은 놓칠 가능성 마저 있다. 

 

모두가 맞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런 거부감이 들까? 신호를 지키자 라는 약속을 정해놓고 차량이 없으면 건너는 태도를 보이는 나, 내 본위라기 보다는 신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신호의 필요유무로 판단하곤 한다. 신호는 답이 아니라 최소한의 약속일 뿐, 신호가 필요한 상황에서 지키고자 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면을 반영한다. 그런 면에서 채 자라지 못한 난소와 자궁을 첫 생리 전에 도려내는 것이 미래에 있을 종양 발생을 줄일 수 있습니다 라는 캐치프레이즈 마냥 고민한다는 자체가 한편으론 우습다. 

 

'난소와 자궁을 첫 생리 전에 도려내는 것이 미래에 있을 종양 발생을 줄일 수 있습니다'

 

데몰리션맨 이었던가? 유명배우가 자동차에서 나오는 라디오 음악을 따라하는데 그 노랫말이 "아이스크림 맛있어. 좋아. 좋아... " 이런 내용으로 기억된다. 그 만큼 음악이 퇴보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보여줬다고 보고 있는데 마치 그런 느낌이다. 마치 암이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니 15년 전에 예방하세요 라는. 그럼 우린?

 

(아마, 맞아죽을 거다. 우리에게 이런 말을 적용하려한다면)

 

 

3.

동물복지란 무엇인가? 가축에게 행복을 주는 것일까? 고기가 되어 우리 입 속으로 들어와 일체가 되는 그 때를 위해 살아생전 행복하도록 하자는 것일까? 아마, 열악한 환경과 처우 때문에 동물복지의 대상이 주로 가축에 머물며, 반려동물에게는 텍을 주어 인식표를 부여했다고 본다.

 

'버리지 마세요.'

 

인류와 동등하게 대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에 준할 수는 있다고 본다. 함께 살고 먹고 자고 일어나 산책을 가고 대화를 나누며 표현하고 사랑을 주고 받는다. 반려라는 말은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니까. 그런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온통 비윤리적인 행위들이 보인다. 다시말해, 인류 입장에서 경제적인 판단에 근거한 행위들이 보인다. 만연하다. 동물병원 의사 대부분은 수술을 권한다. 마치 최고의 처방인 양 첫 생리 전에 수술하면 30만원이 들지만 생리 후부터는 100만원에서 200만원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라고 경제적인 사정을 들먹이며 영업을 한다. 언제부터 수술이 예방적인 활동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너도나도 떼어내는 것이 능사로 여기면서 유투브를 찾아보면 찬반양론이 공존하는 사회다.

 

단언컨데, 예방적 수술행위는 지탄 받을 일이다. (쏠리지 말고 바른 판단을 한다)

 

 

4.

한 걸음 걸으면서 버릴 건 버린다.

뜀과 동시에 모두 버린 다음 다시 하나씩 주어담아본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무엇인가? 반발심은 아니다. 수술 또한 아니다. 함께 살아감에 있어 내가 그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 함께 하는 것. 미래에 있을 암조차 지금 하고있는 예방적인 활동들 - 마사지와 관심, 목욕, 치솔질 등 -로 가져가는 것. 산책과 운동을 병행하는 것, 잔디밭에서 맘껏 뛰도록 기회를 주는 것. 태어난 아이를 돌보며 핥아주는 모습을 보며 웃음짓는 것. 마냥 즐거운 것. 훈훈함, 정겨움, 사랑스러움...

 

우선순위,

ㄱ. 예티와 해나랑 함께 살아간다. (병은 예방적 수술이 아니라 활동으로 대비한다. 산책, 마사지, 씻기 등)

ㄴ. 교배는 가족구성원 모두의 의견을 모아 결정한다. (교배가 먼저가 아니니까. 교배결정은 천천히 한다. 엄마로서 예티와 해나의 경험을, 삶을 우선한다. 경제적 합리적 사고는 배제한다.)

ㄷ. 태어날 아기들은 함께 하거나 분양을 한다. (수입으로만 보진 말자. 어딘가 살아갈 가족으로 여기자. 필요하다면 이해를 구하여 가계도를 작성한다. 교류를 이어간다. 가족의 범주를 키운다. 교류의 범주를 확장한다.)

ㄹ. 암 발생이 되지 않도록 예방적인 활동을 한다. (마사지, 목욕, 치솔질 등)

 

내 아이들조차 자라나 어느 순간 둥지를 떠나 자신의 길을 가겠지 하며 함께 하는 지금 그 마음으로 대하며 살고 있듯이 그러면 된다. 마사지는 힘을 줌에 있어 주의를 기울이면 효과가 여럿이다. 심지어 교정까지 가능하다. 심리적인 교감 외에도. 목욕은 자주하면 건조해지니 비누의 화학성분을 최소화하여 자주 씻는데 사용해도 무난한 용액을 찾는다. 월 2회 정도. 목욕이 곧 물놀이라는 인식을 주자. 매일 씻는 건 씻지 않았을 때 가려움이나 떡짐이 발생하듯 부지런하면 된다. 피부의 건조함이나 더러움 보다는 화학적 자극을 최소화하되 매일 씻는 방향이 좋겠다. 치아, 똥꼬, 거기는 자주 씻는다. 하루 2번이상.

 

 

...

 

 

아이들을 분양 받았을 때는 아이들에게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사랑을 주고 받는 교감에 대해. 아낌없는 사랑에 대해.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풀어내기 위해. 정서적인 관심 유도를 위해... 수없이 많은 이유가 있었다. 미래에 있을 죽음을 견디거나 경험하고 싶지 않아 거부했었는데, 그나마 아이들이 원하고 내 나이가 50을 바라보니 죽음조차 감당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까? 아님, 주변에서 아파하는 지인들, 가족들을 보게되었기 때문일까? 어지러워서 앞이 보이지 않을 듯하거나 일그러진 세상을 보는 두려움은 치아를 치료하거나 양압기를 착용하고 잠을 자는 순간에 항시 함께 하기 때문이었을까?여러 이유가 있듯이 살아가는 지금 함께함과 소중함을 느끼도록 하는 마음에서다. 죽음이란 두렵다고 멀리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별의 감정이 아프고 슬프고 깊이 가라앉지만 이 또한 그만한 행복과 웃음을 보이기 위한 파도의 일렁임 뿐일테지 하였다.

 

아이들을 위한 일이 결국 나의 일이 되었고, 나에게 표현이란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감정으로 나타난다. 이를 보고 주변에선 변했다고 한다. 단지 행동에 비친 보여진 것 뿐인데 변했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아침에 잘 일어난다. 주말과 주일조차. 아이들이 싸놓은 똥과 오줌이 제 위치에 있는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할 수도 있고 관심을 저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난 어느 순간 선택했고 그걸 하고 있더라. 아이들의 반응이 흔드는 꼬리의 모양새가 반갑다. 봐도 봐도 좋은가 보다. 방문을 열었는데 그렇게나 반긴다. 똥판을 치우고 씻고 패드를 간다. 물을 갈고 할 때까지 한참을 보면서 기다린다. 사료를 챙기면 이때는 꼬리가 떨어질 마냥 흔든다. 신나한다. 하루의 시작이 정겹다. 그러니 바닥에 흩어놓거나 모아놓아 준 사료를 먹은 자리를 닦아내기 위해 청소를 하니 아내가 반긴다.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고 밀걸래로 닦는다. 이 또한 아이들에겐 놀이가 된다. 도망간다. 실랑이를 벌이듯 하루의 시작이 번잡하다. 때론 화장실 문을 열고 빼꼼히 얼굴을 들이민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듯 두 눈을 마주치면 이젠 곧잘 마주한다. 서로 눈싸움을 한다. 예전만 하더라도 두 눈을 마주하면 졸립다는 듯이 더이상 노려보지 말라는 듯이 눈이 감기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이젠 그렇지 않다. 마주본다. 뭔가 신호를 보낸다. 다만 아쉬운 건 이리 와 라고 해도 오지 않는 정도. 그리고, 내가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 미안한 것.

 

삶에 변화가 생겼고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여기에 돈의 씀은 생각지 않는다. 다만, 반대급부로 돈의 범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월 500이 어느 새 월 1000이 되었더라. 

 

오늘 집에 가면 무뚝뚝하게 인사하고 자기를 돌보기는게 가족을 위한 일인양 열심인 영록이와 연인과 삐그덕 거리면서 성숙해진 꾸준한 족발집 알바로 최고가치 중 하나인 부지런함을 보여준 자칭 바른생활 사나이 영탁이, 그리고 언제나 밝고 명랑한 장난끼 가득한 볼따구로 이번주엔 야구 해요 한 치형이를 본다.

 

조금은 나아졌겠지 하며 기대를 품는데 뽀뽀해도 안아도 퉁명한 목소리, 쩌리쩌리 통증이 있는 손가락은 분명 썩은 홍삼달인 물을 먹었기 때문일꺼야 라는 말에 신경질을 내는 모습, 한껏 늘어진 목소리엔 이젠 드라마도 지쳤어요 아이들조차 잘 해서 훈련사로 나가볼까나 하다가도 한 풀 꺽인 뭐 재미있는 거 없나 찾는데 당장은 쉬고 싶어하는 모습이 그려질 때면 "여보, 인테리어 짜보는 건 어때?" 라고 관심사를 불러일으키는 소리에 "응. 안 그래도 도면을 받았는데 아직.." 이란 답. 여러 모습이 마치 카멜레온 같다. 어느 장단에 맞출 지는 잘 모르지만 잘 듣고 응 만 잘해도 상위점수는 받을 수 있다. 아내는 뭐든 척척 잘한다. 현명하고 부지런하다. 그만큼 애정이 많다. 그런데 애정이 과한 면이 있어 그 만큼 (사서) 고생한다. 잡스런 생각이 많아서일까? 병원에 가고 싶다고 하는 소리에 엥? 그건 직업병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여보, 걱정꺼리가 없는 게 싫어? 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사서 걱정하는 면이 보인다. 마치 걱정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처럼. 잘 자라고 밝고 명랑하며 웃음이 넘치는 우리집, 걱정만 놓고보면 한가득이지만. 오늘은 다를꺼야. "막걸리 한 잔 어때?"  어이구, 이 화상아, 결국 술이냐 라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소주, 막걸리, 포도주, 칵테일, 양주, 중국술, 라거맥주... 

 

술과 함께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고 오늘은 막걸리 먹자 하는 날이 요즘 잦다. 달짝지근한 맛에 어울리는 김치의 상큼함과 셀러리의 아삭함, 그리고 (정육)오리의 깊은 보약과 같은 맛을 명이나물에 싸서 한 입에 넣어 본다. 상상을 한다. 그리고 실천한다. 여보, 오늘 요렇게 어때?

 

 

 

 

  • 스스로 `自`2022.05.31 08:48

    가족회의는 하지 못했다.
    영탁이가 나갔고 영록이는 들어왔다.
    심란해 한다. 영탁이가.
    적응하려 노력중이다. 영록이가.

    일단,
    영록이는 교배 반대. 수술?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날 아내가 전해 주었는데.

    이번에 만나면 자연스레 이야기를 꺼낼까?
    이어질까?
    어떤 결론이 날까? (정말 궁금하다.)

    답글
  • 스스로 `自`2022.06.03 08:17

    아내가 말한다. 예티는 스포팅컷 했다고 저렇게 예민한 거봐. 집콕 하잖아. 안그래도 예민한 앤데 과연 새끼를 잘 돌볼 수 있을까? 난 절대 반대야.

    그러게. 그런 면이 있어. 그래서 더욱 필요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입밖으론 내지 않고 수긍한다는 듯이 넘어간다.
    그리고, 활활 타고 남겨진 재처럼 맴돈다. 그래서 너라면 어떤 결정을 할 꺼니? 라고 자문한다.
    교배여부는 인류가 결정한다.
    수술여부 또한 인류가 결정한다.
    편의와 부담을 고려한 조치이면서 함께 살아가는 가족으로서 그렇게 한다.

    중성화 수술했어요. 라는 말을 종종 듣노라면 내 귀엔 이렇게 들린다.
    우리 애는 내맘대로 성징을 도려냈어요. 라고. 수컷과 암컷은 차이가 있다는데 아무튼 그렇다.

    뒤에 있을, 혹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만약 중성화수술이 잘못된 판단이었고 인류의 잘못이라는 결정이 후대에 이루어지면서 현재를 논할 때 참으로 미개하였다 라고 한다면 과연 수많은 종사자들, 특히 수술을 종용한 동물병원 의사들과 이를 방치한 결정권자들에게는 어떤 미련이나 후회가 남을까? 남기는 할까? 참으로 쓸데없는 생각이다. 어찌 되었든 제시했을 뿐이라고 할 것이다. 선택은 당신이 하지 않았냐고 할테고. 언제까지 이런 미련한 결정을 전문가가 아닌 돌보미가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지금의 중성화수술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어리석었다 라고 할 것으로 자명하다. 이를 앞당겨 지금 그걸 실행하려니 참으로 어렵고 혼란스럽다. 물어봐도 찾아봐도 온통 중성화수술의 위험성은 미래에 있을 암 예방이라는 얘기들이 만연하며, 이를 위한 당연한 조치라고 하는데 그건 역시 인류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만약 이를 인류에게 적용한다고 한다면 말도 안된다고 하는 일이 자행되고 있으니 내가 이상한 것으로 결론을 짓고 마무리를 한다.

    나도 모르겠다. 여보, 그런데 다행스런 건 교배여부에 대한 당신의 의견이 일면 타당하다는 것이고 너무나 다행스런 건 수술여부에 대해서는 미루었다는 거야. 역시, 대단해. 나는 한참이나 고민한 끝에 교배와 수술이 다른 것임을 알았는데 말야. 그러니까. 교배 또한 바로 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을까 싶네. 2년만에 새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놀랍네.
    좀 더 자라고 함께 하고 그 시간들 속에서 충분히 새끼를 돌볼 만하다고, 일명 컸다고 볼 때 혹은 컸다고 인정될 때 혹은 새끼를 낳고 싶어하는 반응을 볼 때 어떤 말로 할지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충분히 그 시간이 도래했을 때 그때 결정해도 좋겠구나 싶어. 어쩌면 이는 방치요 미룬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우린 동일한 현상을 놓고 다르게 해석하고 올바로 보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가잖아. 그 면에서 우리의 이번 결정이 참으로 잘 했구나 하길 여기면서 조금은 가슴펴고 예티와 해나의 톡톡 튀는 발걸음에 맞춰 산책을 거닐 듯 살아가보면 어떨까 싶어.

    그러니까 라는 말이 들리는 듯 하다. (어제 장인어른께서 넘어져서 고관절 골절이라는 진단이 나왔고 병원에 계신다. 내일 찾아뵐 것이며 아마도 함께 가지 않을까 싶은데, 아침내내 사라짐에 강한 애착을 느낀다와 그로인한 남김에 대한 그 남김에 대한 장인어른의 태도를 이해코자 대입해보건만 잘 출력되지 않아 답답해졌다. 어떤 마음일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건 답인데 어찌 살아갈지 어찌 대할지 어찌 바라볼지 어찌 감당할지 어찌 어찌 하는 면면이 장인어른께 부담을 지웠나 하는 생각도 들고, 뭐가 옳은 것인지 바른 건지 혹은 적합한지 또는 잘한 것인지 아무튼 마음에 싹튼 의문이나 걱정은 물어보고 듣고 알아야 겠다. 굳이 자해석하지 말고.)

    답글
  • 스스로 `自`2022.08.05 10:17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과연, 중성화수술 하지 않는 것이 강아지에게 이로운 것일까?
    미래에 닥칠 자궁축농증이 없다고 자신 못하는 상황에서 그걸 방지할 수 있다면 이란 생각이 과연 대변했다고 볼 수 있을까?
    시술 정도라면 고민이 깊지 않겠지만, 난소와 자궁을 모두 도려내야 한다고 볼 때 여전히 망설임이 남아있긴 하지만,

    결국,
    교배를 할 것인가?
    새끼를 낳아 키울 것인가?
    새끼 또한 키울 것인가?
    새끼를 낳아 영록이, 영탁이, 치형이가 받아 키울 수 있는가?
    강아지를 낳아 키우는 그 경험이 과연 함께 해 나가는데 그만큼 필요한가?
    지금 강아지와 함께 하는 시간으로 불충분한가?
    새끼를 낳는다?
    새끼를 낳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면 자궁축농증을 고려하고, 생리 시기에 피칠과 우울증까지 고려해볼 때 그리고 사람과 같지 않음을 볼 때 중성화수술을 해야 편하다고 본다. 변수는 줄고 노력 또한 준다. 그 만큼 굴곡 없는 삶이 가능하다. 굴곡이 없는 삶이, 굴곡을 굳이 감당하지 않아도 충분한데 굳이 감당하려 한다면 새끼낳는 그런 충분한 고려사항이 있을 때 함께 감당하는 것이 보다 낫다고 생각되어 진다. 그렇다.

    태어난 대로 살아가는 것.
    그게 그렇게나 힘들고 어려운가 보다.
    더구나, 그 결정을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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