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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우리가족 이야기

40 vs 11

by 큰바위얼굴. 2022. 5. 31.

"영탁아, 시간되면 잠시 이야기 좀 하자~"

"치형아, 5분만 말할까?"

 

이렇게 둘을 불렀다. 치형이 먼저 하고 나서 영탁이와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식탁에 앉으니 둘이 함께 진행되게 되었다. "여보, 당신도 와서 함께 하자~"

 

둘러둘러 이야기 하다가, "그래서, 치형이 넌 지금 삶에 얼마나 만족하니? 아니면, 얼마나 불만족해? 혹은 못마땅해?"

 

그랬더니 89% 라고 한다. 주로, 디지게 말을 듣지 않는 태도가 쉽게 바뀌지 않는 걸 불만이라고 한다.

 

그럼, 영탁이는?

 

조금이라도 만족하면 51%, 불만족이면 49% 라고 볼 때, 더 만족스럽다면 80%, 99%도 가능해. 그냥 눈대중처럼 말하면 좋겠는데,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60% 라고 한다.

 

어느 부분이 어떻게, 혹은 뭘 불만스러워하는 건데? 또는, 만족하고 있다면 그 만족하는 부분이 뭘까?

 

... ...

 

(잠잠해서 그만둔다)

 

 

p.s.

 

내 삶을 얼마나 만족스럽게 여기고 있는가?  (99%에 가깝다)

혹은 불만족스런 부분은 없는가? (이만하면 되었다. 단지, 사라짐에 강한 애착을 느끼면서 진한 고통 혹은 아픔, 또는 슬픔을 느낀다)

 

만족과 불만에 대해서는 그나지 크게 와닿지 않는다.

 

아침산책길, 한참 뛰는 중에 마주한 그 여자. 칭칭 동여맨 가운데 스쳐 지나간다.

어! 

싱그러움, 청초함, 밝음, 쾌활함에 못지않게

권태로움, 뒹굴뒹굴, 드라마 열중, 어두움이 생각난다. 그러면서 그래서 내가 아내에게 할 수 있는 건 뭘까?

 

재미를 찾아주거나

함께 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거나

 

통화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일상을 받아들이거나

잠시 쉬었다가 만났을 뿐인데 아주 꼬리가 떨어질세라 흔들면서 몸둘바를 몰라하는 예티와 해나와 같은 모양을 찾거나

 

밤에 귀가한 영록이가 강아지 집에 얼굴을 들이밀며 애정을 표하는 모습을 보면,

강아지가 뛰어논 쿠션에 머리를 베고 강아지 옆에 누워 잠든 치형이가 떠오르면서 형제구나! 한다.

 

사료통에 서슴없이 손을 넣어 하나 둘 던져주는 모습이 어김없이 반복되고,

잔소리하는 엄마와 아내가 있을 뿐 우린 그렇게 서로 같은 느낌을 주고 받고 있다고 본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마주한 우리 가족은 애정이 참으로 풍부하다.

애써 감출 지언정, 눈물도 잦고,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풍부하다.

냉냉해 보이는 가운데 애정어린 눈빛과 장난끼 가득찬 볼따구, 뭐 재밌는 거 없나 찾는 모습을 보노라면 누가 아빠이고 누가 애인지 모를 일이다. "아직은 아빠에게 안 될 것 같아요." 하는 치형이의 대답에 "아닐껄, 아닐꺼야. 니가 이길꺼야" 라며 달렸을 때의 승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래도 아직은 아빠가 나 보단 더 스마트한 거 같아요." 라는 말에 기뻤다. 12살 아이에게 인정받는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다.

 

쾌활하고 명랑하면서 위함과 대함을 아는 아이,

자라서 어느 새 형들과 같은 모양이 되더니 자기몫을 척척 해낸다.

속함에 대한 상실감을 획득으로 바꾸기 위해 열중하는 영록이,

알바와 연애 사이에서 고단함과 기쁨에 부지런하는 영탁이,

최근 부쩍 드라마에 빠져 지내는 서희,

두 번 토해내서 걱정을 끼친 해나와,

꼬리쪽을 자꾸 물고 집구석에 처박히려는 예티는 스포팅 컷을 했기 때문일까? 아닐까?

 

물어봤어야 할까?

산책길에 종이는 먹지 말라고 해야할까? 알아들을까?

말하지 말까? 호두알 만한 씨앗을 기어코 삼키려는 해나와 이를 말리다가 오른쪽 왼쪽 손가락을 살짝 찢긴다.

교육은 뭐고, 훈육과 가르침, 지혜, 본받음, 내리사랑, 주고받음, 말릴 수 있을까? 말려야 할까?

산책을 피할까? 진드기를 피하려고 원수산을 회피하듯이 씨앗이 없는 나무그늘을 찾아야 할까?

그렇다면 지렁이는? 말린 육포맛이 날까? 

그렇다면 마른 똥덩어리는? 푸석하니 발효된 아삭한 맛일까? 잘도 씹어 먹는 모습이 내 비위만 상할 뿐인데, 어찌 해야 할까?

 

일상이 중첩되어 어제 일이 오늘 이어지고 내일 다시 이를 만난다.

나이는 들고 어느 새 아이들이 어른이 될 것이고, 부쩍 부쩍 세월의 야속함은 더 늙어 주름지고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 모습에서 찾게 된다. 나 또한 다르지 않겠지 라면서 죽음을 사라짐으로 순화하여 이에 대비하려 한다.

 

사라짐에 강한 애착을 느낀다.

그래서 남긴다. 일상을, 감정을, 애정을, 사랑스러움을, 잘함을, 하고 싶은 바를, 그리고 이런 내 마음이 전달되기를.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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