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며 조급해 한다. 마음이 급하다. 변한 게 없음에도. 넉넉하진 않지만 늦진 않았음에도 서두른다. 새벽 5시에 산책을 나서 돌아오는 길, 현관 앞에선 나를 남긴다.
새벽 5시에 기상했다.
산책을 나서며 노래하듯 흥얼거리는 말 https://youtu.be/kPWDVQ_jMbI
이를 다시 글로 옮겨 적는다.
모두가 사라진 거리에 서서 밤하늘에 별들은,
오늘아침 바라보는 별들과 같은 것일까.
아무도 없고 새벽을 울리는 걸음 마다
김에 서린 시냇물 소리,
조용한 거리를 깨우네.
일어나기 싫어서 잠을 더 자고 싶었지. 찌뿌둥 하며 잠을 설쳐 버렸지. 피곤하고 피곤한, 모두가 사라진 이 거리에서 적막을 깨우는 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시냇물의 졸졸 흘러가는 소리.
앞으로 만나겠지. 거대한 바다와. 그리고 다시 모험을 시작해.
다행이라고나 할까. 흘러 흘러 가서 바다를 만난 것이 다행이랄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렇지 않다면 꾹꾹 눌러싼 (해나의) 배변의 해방감이 더 나은 걸까. 어제도 마주하고 오늘도 바라보는 이 거리, 시간이 같고, 일분일초가 다른 이 거리, 적막을 깨우는 이 소리. 텅빈 마음, 갈 곳 없는 욕심, 살아 숨쉬는 기억을 더해 추억을 먹고사는, 그러니까, 그 짧은 시간 - 목줄에 메여 함께 걷는 중에 체이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 - 에 볼 일을 (예티가 쉬한다) 다 보려고 하니 참으로 대견하구나!
목줄을 잡고 뛰자 뛰어 뛰던 중 멈춰선 그들을 보니 지렁이를 질겅질겅 씹고 있더라. 다가가 후려치고 후회한다. 내 눈에 띈 커다란 지렁이가 문제인 걸까. 알고 모르는 것의 문제인 걸까. 참으로 잘 한 일은 두꺼운 점버 대신 얇은 바람막이를 선택한 것이지. 손이 살짝 아리도록 추운 날씨, 하늘은 푸르고 검다.
속이 상한다. 그리고 속상한 것이 풀린다. 왜냐하면, 다시 멈춰선 해나에게 다가가서 멀찌감치 본다. 삐죽 거리며 다가온다. 다행이다. 만족스럽다.
망설임 없이, 짖고 으르렁 거린다. 어제도 만났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짖고 으르렁 거리는 건 이유가 있겠지. 이제 그만, "헤이, 뛰어"
"이쪽."
헉 헉.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달리는 길을 멈추게 하고 둘이 꿍짝꿍짝 질겅질겅 씹어대고 있는 멈추게 한 것에 대한 분노인가. 다시 돌아가서 입을 강제로 열고 손가락을 넣어 빼내려 한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나오는 건 없이 그저 손가락만 계속 휘저을 뿐인 (내 모습이). 아마도 정해서 마음이 편해져야 되겠지. 짖는 것 또한 어떤 방식의 정함이 필요하겠지. (헉 헉.)
목줄을 놓아 키우려는 내 바람과 달리, 자꾸만 멈춰서 말라비틀어진 커다란 지렁이를 질겅질겅 씹어먹는 그리고 눈쌀을 찌뿌리게 하는 그 모습에 꺼리낌이 일고, 목줄을 놓는 것이 진정한 자유. 어쩌면 이 또한 나만의 착각일 수 있겠지. 앞서거니 뛰려고 몸부림 치는 목줄까지의 간격, 그게 전부인 양. 그러지 말기를 바라는 내 마음과는 달리 오늘도 결국 목줄을 잡고 이 정도가 어쩌면 관계에 있어서 그 바람과 내 정함 사이에서 머물기를 바라는, 혹은 머물게 되는 그 정도의 '거리감' 일까.
내 마음과 달리 저 멀리 차 소리에 반응하는 거. 으르렁 거리는 거. 다시 뛰쳐 나가는 거. 그래도 재주는 용하게 늘었지. 내 바람은 목줄을 풀고 완전히 없앤 후, 함께 달리는 거. 징검다리 또한 신나게 뛰어 넘어가는 거. 그래 그래, 언젠가 이루어지겠지. 졸졸졸 흘러가는 시냇물 만이 내 두려움을 없앨 것인지, 다시 걷는 그 용기를 칭찬해 줄 것인지 참으로 재미있다.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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