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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우리가족 이야기

홀로 나선 길

by 큰바위얼굴. 2022. 12. 15.

어제 눈이 왔기 때문이고, 길이 미끄러워서 달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며, 춥다.

배를 쓰다듬으니 따뜻하다.

추우니 나가기 싫어진 걸 받아들인다.


눈이 내리는 하천변 산책길 초입
지나온 길 위에 발자국

 

산책길을 나왔다. (음성 듣기) https://youtu.be/7sH_pZl6k_w

 

살며시 내리는 눈.

내린 눈이 쌓이는 길. 

발자국을 만들고 있다.

태초에 모든 게 있었다. 그 위에 내가 발자국을 만들고 있고, 지금은 그런 시대다.

5시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야지.

순간 일어나기 싫은 타협점을 잡기 위하여 머릿속이 분주하다. 아, 오늘은 좀. 오늘은 좀. 아니 그래도 일어나야지? 아니, 눈이 와서 미끄럽잖아. 춥잖아. 달릴 수도 없잖아. 그런 중에 한번 더 달릴 수 없잖아에서 뻗은 가지는, 옷을 갈아입지 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 그냥 출근하는 복장으로 입고 나서자. 다만, 볼일 볼 때 불편하겠지만, 그건 해 봐야 아는 거고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더니, 벌떡 일어났다.

 

새벽 5시.

방을 나오니, 영탁이 방 침대 위에서 해나가 으르렁으르렁거린다. 큰소리로 짓진 않고 나 여기 있어요 하는 모양새. 얼릉 가서 바닥에 내려놓고 예티를 찾아 거실로 나온다. 뒤따라온 해나와 거실 소파 한쪽 구석에 엄마 옷을 깔고 누워 배를 뒤집는 예티. 쓰담 쓰담. 쓰다듬어 준다. 멀뚱거리는 해나를 무릎 위로 끌어올려 얼굴과 유난히 따뜻한 배. 결국, 잠이 덜 깼는지, 나 가고 싶은데 너무 추워 나서기 싫은 건지로 이해한다.

그래서 오늘은 현관문을 닫았다 기다렸다 닫았다 하지 않았고. 기다리지 않았다.

달려서 돌아온 산책로 초입에서 바라본 길

현관을 나서는 길에 혹시나 얘네들이 착각한 건 아닐까 라는 오해가 떠오른다. 혹시 내가 출근복을 입었기 때문에 같이 안 가는 줄 알고, 안 데려가는 줄 알고, 지레 포기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결과는 매한가지. 어찌되었듯 요 며칠 전부터 해나는 현관에 나오지 않았고, 예티는 어제 나오지 않았다. 오늘 나오지 않을 거로 기대했고, 새벽 5시에, 추위에 눈이 와서 미끌거리는 길로 정했다.

달릴 수 없다. 달리지 못한다. 5시에 일어나야 될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을 때 답변은 뭘까?

맞아. 달리는 게 먼저가 아니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는 게 먼저가 아니야. 일어나는 게 먼저다. 달리면 잡스러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좋고, 어떤 몸에 대한 한계를 계측하기에 좋다. 나이 들어가면 알기에도 딱 좋다. 그렇지만 이 또한 일어나서 거리로 나와야 가능한 일이고 무엇보다 일어나는 거. 달리든 걷든 산책하든 일어나는 게 먼저지.

달릴 때의 기분과 달릴 때의 상황, 달릴 때의 어떤 바람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일어나는 것만 못하다. 일어나야 뭐든 할 것을, 하고 싶은 바를, 선택하든 정하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See U. 성호.


 

어제 저녁, 

서희는 말한다. "여보,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 사랑하면 호떡 정도는 구워줄 수 있지 않겠어?"

그래서, 추운 날씨에 옷을 주섬주섬 입고 GS25에 가서 호떡팩 2개를 사와서 만들었다. 

 

"여보는 자꾸 내게서 도망가는 것 같아." 하는 말을 들으면서, 배부른 속과 앉아 불편한 의자에서 벗어나 소파로 왔다.

 예티의 젖니를 뺐다. 결국. 치형이가 20:45경 집으로 돌아왔을 때, 치형이의 도움으로.

새초롬하다. 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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