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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나의 이야기

무당벌레

by 큰바위얼굴. 2023. 6. 22.


꼬물꼬물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 팔이 닿지 않는다. 변기에 앉아서 앞으로 그리고 아래로 보니 보였다. 뭘까? 한 순간 위기감에 살이 떨려온다. 서둘러 추스린 다음 가까이 가 보았다.

> 이야기 듣기(음성 녹음 파일)

20230622_무당벌레.m4a
9.83MB


무당벌레처럼 생겼다.

"여보, 무당벌레가 있네"
"뭐라고?"

"화장실에 무당벌레가 있어."
"그래? 당신이 알아서 해."

내가 뭘 알아서 해야 되는 걸까 순간 망막했지만, 어떻게 들어온 건지 궁금해 하는 찰라, 아내가 말한다. 내 속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식물에서 나왔나?)
"아마 강아지들 몸에 붙어 들어왔을 거야."

그렇구나. 그러면 어떻게 할까? 이제 모든 책임은 나에게 넘어왔다. 잡아 죽일지, 잡아버릴지 혹은 그대로 둘 지.
그대로 두는 건 왠지 내게 닥칠 혹은 또다시 보게 될 불안감을 안게 되니 우선 제끼고, 죽이는 것 또한 내 성향에 맞지 않는다.

바퀴벌레, 개미, 날짐승, 들짐승을 죽이는 걸 꺼린다. 최근 나는 남해를 갔고 독일 마을에서 치형이와 거리를 걷고 있었다.

왕개미, 작은 개미가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인다. 치형아 저거 봐 라는 말이 무색하게 발로 비벼 죽인다. 뭐지?

또 있네?
또 발로 비빈다. 뭘까?

한동안 말없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정리한 다음,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보인 치형이에게 말을 건낸다.

산책길에서 기어가는 벌레조차 일부러 피해 가는 나와는 달리 치형이의 망설임 없이 발로 비벼 버린 행동에 대해 나무란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왜 너에게 어떤 위해를 끼쳤는지 묻는다. 도대체 왜?

무심히 지나치며 엄마를 따라가는 치형이. 아내에게 고자질한다.

"여보, 치형이가 개미를 밟아 죽였어."

"치형아, 왜 그랬니?"
"..."


자, 이제 무당벌레로 돌아와 보자. 나에게 무당벌레란 뭘까? 왜 내 앞에 눈에 띄었을까? 그나마 다행히 내게 띄었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휴지를 찢어서 무당벌레를 올라타게 한 거야.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을 움츠리고 바닥을 꽉 잡는다. 살살 긁어 서둘러 타도록 한다.

나 또한 빨리 처리되지 못하는 조급함에 순간 이마에 빠지짓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점차 화를 나타내는 게이지가 있다면 점점 휘발유를 채우듯이 올라가는 게 느껴진다. 제발 너를 함부로 하지 않도록 도와줘. 결국 여러 번 시도 끝에 휴지에 올라 탔고 그다음은 어떻게 할까 생각한다. 방금 내린 변깃물에 버려야 했을까?

아니다. 그건 내가 직접 처리하지 않았을 뿐 같은 결과이니. 안방 베란다를 보고 이중문으로 되어 있어 나가기가 불편해보였고 주렁주렁 매달린 옷에 내가 치일 걸 생각하니 귀찮음에 장애물이 많다며 거실로 나간다. 청문을 연다. 이제는 어떻게 할까?

22층.

저 멀리 털어버린다면 날아가겠지?
바닥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을까?

참으로 무당벌레로 인해 생각의 생각에 단계면 단계마다 고민이 이어진다. 열린 창문에 털어버리려는 생각을 버리고, 모눈종이처럼 생겨서 벌레가 못 들어오게 막는 방범창, 아니 방충망을 향해 털었다. 그런데 접힌 휴지에 딱 달라붙은 무당벌레는 잘 떨어지지 않고, 결국 조금 더 세게 휘두르니 떨어졌지만 방충망 안쪽에 떨어진다. 거북이가 뒤집혀 바둥거리듯이 무당벌레는 그렇게 바둥거리더라. 다시 휴지를 갖다대어 달라붙게 한 후, 팔을 밖으로 뻗어 방충망의 바깥에 붙도록 유도한다.

성공. 와우! 서둘러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충망을 닫는다.

(다시 산책길)
무당벌레는 무사히 탈출했을까? 내가 곤란하니 우리 집 울타리 안으론 들어오지 말아 줘 라는 행동이 바람직했을까? 함께 살 수는 없었을까?

(무당)벌레는 이로운 존재일까? 다시금 무당벌레를 떠올리는 건 산책길에 꾸물거리고 지나가는 벌레가 다시금 강아지에게 붙지 않도록 조심조심 바닥을 보며 걷고 있을 때 자연스레 이어진 걱정에서 시작되었다.

다시금 비슷한 상황이 닥친다면 난 달리 행동할까? 또다시 무심코 왕개미를 밟아 비비는 행위까지 떠올리게 될까? 옳다 그르다의 얘기가 아니라 감정의 흐름. 내 영역을 지키는 최소한의 살생의 의지. 산책길에 마주한 떠오르게 된 상황. 어느 것 하나 온전치 않지만 달리기를 멈추고 새를 쫓으려는 해나와 예티가 뛰어나가려고 팽팽하게 잡아당겨진 줄을 잡고 걸으면서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나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벌레일까? 무당일까? 한낮 꿈인가? 나비인가? 감각과 감정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원동력이다. 또 보자 CU. 성호.


산책에서 돌아와 아파트 정원 길을 돌며
어제 퇴근길과 학원 하교길에


회사 옥상에서 바라보니, 차량, 강아지와 뛰는 여자, 등교하는 학생들...

자극을 받으니 스트레칭을 한다. 조금 전에 카톡방에 공유한 내용을 떠올리며, 종종 옥상에 오르자며 건강을 생각한 면에 대해.

BOH 자스민 녹차를 막 우려내어 티백을 잔에 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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