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계사회와 이야기꾼.
사냥을 하는 시기. 먹을 것을 찾아 밖에서 구해 와야 했던 시기. 산과 들로 사냥지를 넓히고 넓혀 경험을 쌓아야만 했던 시기. 사냥터에서 죽을 수 있기에 이야기가 전달되지 못한 채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경험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구전. 즉 입과 입을 통해서 이야기로 전해지는 경험담, 그건 바로 생존과 직접적이다.
돌아가 이야기를 전한다.
경험담을 남기고 이야기를 전하는데, 힘들고 힘들어서 다시 얼마나 쉬었을지 모를 시간이 지난 후에는 밖으로 또 나간다. 경험을 쌓는 건 사냥에 적합한 성이었을 것. 아마도 임신을 해야만 하고 임신이 되어야만 했고 알든 모르든 아이를 키우고 보호했던 건 여성. 경험을 쌓는 건 남성. 그렇다면 이야기꾼은 누구에게 더 어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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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전해주는 모험담은 흥미진진한 아이들에게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을 것. 다만, 남성이 주로 집안에 머물지 못하니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주로 여성이었을 것. 그렇다면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고 들어주고 하루를 그렇게 보내며 이웃과 인사하고 외로움을 달랬던 성은 바로 여성. 남성이 단체 행동, 마치 군대와 어떤 조직체처럼 모인 집단에서 남성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더 적합하게 나아갔다면, 여성은 흩어져 있는 각자가 자연스레 어울리고 모여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나누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 다시말해, 여성에게 더 어울리는 것에 대해 모계사회로부터 출발하며 성에 적합한 형태로 발전을 거듭해왔을 것.
이 이야기를 시작한 건 산책길에서 주로 이야기를 나누며 앉아있는 것이 여성들이기 때문. 남성들은 주로 젊은이와 나이든 사람을 50세 전후까지 친다 하더라도 달리고 달리는 누구보다 건강을 생각하고 오래도록 살고자 하는 본성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있지 않을까 생각케 할 만큼 산책길에는 성의 구분이 뚜렷하다.
과거 그들이 사냥하고 돌아온 남성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고 나누는 과정에서 살았듯이, 지금 또한 일터로 향하고 다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집안일을 하면서도 여러 이웃과 인사하고 나누고 함께 하려는 공동체 지향의 성향은 여성에게 좀 더 많지 않을까?
이야기를 만드는 데는 남성이 경험을 쌓는 쪽에서 좀 더 낫다면, 이야기를 풀어서 쉽게 나누고 혹은 기록하고 좀 더 세세하게, 그리고 좀 더 다이나믹하게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나 혹은 그림을 좀 더 디테일하게 다른 사람의 감정을 토대로 경험보다는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건 어쩌면 남성이 갖고 있는 한계가 아닐까 하는데, 누군가 말을 참으로 예쁘게 한다는 칭찬을 한다.
조리 있게 한다. 흡족하게 한다. 나보다는 남들에게 듣기도 좋은 소리를 한다.
참으로 같은 말이라도 자아가 강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묻어나는 주장 성향. 의지의 유무가 아닌 듯 하지만 뜻밖에도 여성이라기 보다 혹은 남성이라기 보다 타인의 귀에 (감언이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가 아주 편안한 소리. 결국, 이제나저제나 소리꾼이 이야기꾼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또 보자 CU.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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