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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우리가족 이야기

쟁투와 투쟁에 관한 이야기

by 큰바위얼굴. 2014. 11. 11.

쟁투와 투쟁에 관한 이야기

 

우리는 쟁투 속에 살고 있다. 혹자는 투쟁을 한다. 반목과 질시는 쟁투의 산물이다. 투쟁은 반목과 질시를 아우른다. 지금부터 쟁투와 투쟁에 관하여 이야기 해보자.


‘쟁투’는 서로 다투어 싸움을 말한다. 현상을 일컫는 말이며 현재진행중임을 뜻한다.
‘투쟁’은 어떤 대상을 이기거나 극복하기 위한 싸움을 말한다. 목표지향적이다.

 

‘아귀다툼’이라는 말이 있다. ‘적자생존’이라는 말도 있다. 왠지 현실과 동떨어진 듯하다. 쇼핑을 하는 사람들, 어떠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사람들, 아이들 교육에 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 그리고 오늘은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고민을 즐기는 사람들.

 

‘전쟁’은 건국이래 있어왔고 현재도 전쟁중이다. 철책선 너머에는 동지가 있다고 한다. ‘동지’는 목적이나 뜻이 서로 같은 또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 엄밀히 이야기 한다면 동지가 아니기 때문에 또는 동지를 지향하기 때문에 나타난 말일 것이다. 38선의 남과 북이 동지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다만, 우리가 한 종족이라는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종족’은 조상이 같고, 같은 계통의 언어ㆍ문화 따위를 가지고 있는 사회 집단을 말한다. 여기에서 문화적인 요소가 다소 꺼림칙하다. 그렇지만 길고 길게 본다면 반만년 역사 속에 현재를 조명한다면 뭐 그정도쯤이야 하고 넘어갈 만 하다.

 

전쟁은 투쟁이다. ‘투쟁’은 어떤 대상을 이기거나 극복하기 위한 싸움을 말한다.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좋게 말하면 투쟁이요, 나쁘게 말하면 쟁투다. 그저 싸우고 싸우다보니 이념과 동질감을 잃고 싸우는데 열중한다. 주장을 위한 주장을 하고 흠은 감추기 급급하고 공은 독차지하기 바쁘다.

 

사회는 쟁투와 투쟁이 어우러져서 돌아간다. 소소한 쟁투 속에 투쟁이 돋보이고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투쟁을 한다면 그 만큼 목표는 빠르게 얻을 수 있겠지만 잔정이 부족해진다. 소소함을 잃기 십상이다.

 

당신은 지금 투쟁을 하고 있는가?
혹시 쟁투 중이지 않은가?

 

혹자는 세상을 전쟁터라고 표현하고 투쟁의 역사라고 바라본다. 혹시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함이 있거나 불편하다면 당신은 지금 투쟁중이다. 당신이 알든모르든 현재 진행중이다. 잊지마라. ‘투쟁’은 어떤 대상을 이기거나 극복하기 위한 싸움을 말한다. 밟고 올라서야 한다. 투쟁에는 상생은 없다. 이긴 자의 배려가 있을 뿐이다. 소소한 일에는 투쟁 보다는 쟁투가 어울린다. 쟁투는 배려와 상생이 가능한다. 그저 서로 다투어 싸우는 행위를 멈추면 되기 때문이다. 쟁투할 것에 투쟁을 하고 투쟁할 것에 쟁투를 한다. 멍청함의 극치다.

 

옛 이야기를 사례로 들어보자. 한 마을에 곧고 바른 집안이 있다. 그 집안은 마을을 두루 살피며 주민들로부터 신망을 얻고 있다. 다른 마을에 사는 한 집안이 그 집안의 터에 금광이 있음을 알았다. 당연히 해당 집안은 금광은커녕 관심이 없어 모르는 상황이다. 이때 다른 마을에 사는 집안은 욕심을 부린다. 그 집안을 망하게 하기 위해 야비한 짓을 서슴치 않는다. 온전히 다 가지는 것이 목적인양 투쟁을 한다. 그리고 그 집안을 무너뜨리고 거의 모든 것을 다 가질 때쯤에 그 집안의 우호세력이 뒤늦게 알고 다른 마을에 사는 집안을 견제한다. 결국 다른 마을에 사는 집안은 얻은 것 없이 쫓겨난다. 30년이 걸린 일이다.
만약, 다른 마을에 사는 집안이 욕심에 따른 30년을 투쟁할 것이 아니라 그 집안에 솔깃한 제안을 했다면 어떠했을까? 개발하고 개발하다보면 여러 변수들이 발생하는데 그만큼 다른 마을에 사는 집안만한데가 없다는 신뢰만 주었다면 충분히 가능할텐데, 이처럼 투쟁의 시작이 결과를 만든다. 투쟁할 꺼리에 투쟁해야 할 것이며 투쟁에 욕심이 끼어들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투쟁은 대의적이며 정의로운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주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고 확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투쟁을 하고 있는가?
투쟁과 쟁투를 구분하여 이길 것과 저줄 것을 나누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이 어떠하든 당신의 자세에 달려있다. 쟁투할 것인가? 투쟁할 것인가? 목표를 분명히 한다면 투쟁이 될 것이며 그 과정중에 일어나는 쟁투 쯤이야 할테지. 선택하라. 그리고 투쟁을 즐겨라. 대의를 놓고 투쟁을 할 지어라.


“왜 사냐건 웃지요” 하는 말이 있다. 결과적이든 과정중이든 투쟁을 즐기기에는 이처럼 어울리는 마음이 없다할 만하다. 내가 사는 이유는 이러이러하다 라고 말하기 어려운,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삶의 진실들, 그래서 그저 웃을 수 밖에 없다는 말. 그렇다.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 귀기울여 보자. 김성호.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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