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먹고 빨리 크게’ 조작된 닭…더 이상 동물이 아니다
경향신문 2016.10.12
ㆍ인류가 사랑한 새, ‘멸종’ 아닌 ‘급증’으로 슬픈 생존
ㆍ세계의 닭공장
브라질의 경제 중심지 상파울루 한복판 아클리마상의 좁은 오르막 뒷골목에는 닭고기와 달걀만 파는 ‘포피뉴 프랑구’가 있다. ‘포동포동한 닭’이라는 뜻의 이 가게에서 파는 닭 부위는 모두 20여종. 닭가슴살만 해도 뼈를 발라낸 것과 얇게 포를 뜬 것, 뼈가 남아 있는 것 세 종류다. 닭다리는 다리뼈가 들어 있는 북채와 토막 친 것, 뼈를 발라낸 닭다리살, 허벅지 위쪽 살로 나뉜다. 모래집과 심장, 간 같은 내장은 따로 진열돼 있다.
한국인들이 ‘닭똥집’이라 부르며 술안주로 즐겨먹는 닭모래집은 파울리스타(상파울루 시민)들도 즐겨 먹는 식재료다. 토마토소스와 함께 요리해 쌀밥이나 빵과 함께 먹기도 하고, 내장 부위를 섞어 슈하스쿠라는 전통 꼬치구이를 만들기도 한다.
■파울리스타의 치킨 레시피
마를리(62)는 여기서 닭고기와 달걀을 판 지 올해로 41년이 됐다. 전에는 주변 농장에서 닭을 가져다가 직접 털을 뽑고 손질해 팔았지만 지금은 새벽마다 도매시장에서 토막토막 다듬어진 고기를 사온다. 위생 문제로 몇 해 전 당국이 소매점에서 닭을 잡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예전엔 직원이 30명에 이를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15명이 돌아가며 근무한다. 요사이는 가슴살이 인기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소금과 레몬, 마늘만 사용해 뼈를 발라낸 닭가슴살이나 다리살을 그릴에 구워 먹는 사람이 늘었다.
상파울루 사람들에겐 자기만의 닭고기 레시피가 하나씩은 있다. 마를리는 염소 창자에 닭고기를 채워 만든 ‘링구이샤 지 프랑구’를 즐겨 먹는다. 중앙시장 ‘메르카두 무니시팔’에서 닭고기를 파는 마리아 레시(57)는 토마토 소스와 마늘, 양파와 함께 푹 삶아 만든 닭발 수프를 좋아한다. 대형 슈퍼마켓체인 ‘엑스트라’에는 한국의 웬만한 대형마트 정육코너 전체 크기와 맞먹는 닭고기 코너가 있다. 진열대들을 둘러보던 마리사(63)는 1㎏짜리 한 팩에 11헤알(약 3800원) 하는 닭고기 브랜드 ‘사디아(Sadia)’의 냉동 닭가슴살을 집어들었다. 그릴 구이와 튀김, 중국식 볶음요리를 만들어 먹을 거라고 했다.
어쩌면 진짜 ‘평화의 새’는 비둘기가 아니라 닭일지도 모른다. 세계의 누군가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누군가는 쇠고기를 먹지 않지만 닭고기를 꺼리는 문화는 없다. 사막을 떠도는 중동 유목민의 후예들은 더운 날씨에 쉽게 상하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인도의 힌두교도 농민들은 감히 중요한 노동력인 소를 잡아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처럼 힌두 문화권과 이슬람 문화권이 만나는 곳에서는 닭 요리가 발달했다. 미국의 인기 애니메이션 시리즈 <심슨 가족>에서 예루살렘에 간 호머 심슨은 “돼지를 먹지 않거나(무슬림), 조개류를 먹지 않는 사람(유대교도)은 있지만 우리 모두 치킨은 사랑하지 않느냐”고 외친다.
닭이 어디서도 금기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기르기 쉽고 곡식을 많이 축내지 않는 데다 금방 길러 잡아먹을 수 있어서다. 4000여년 전 인더스 계곡에 살던 사람들이 길들인 닭은 빠른 속도로 중동을 거쳐 유럽과 세계로 퍼져나갔다. 20세기에 닭 키우기는 대규모 산업이 됐다. 지금 지구상에는 190억마리의 닭이 산다.
■ 이민자들이 만든 닭공장
닭고기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미국이지만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는 브라질이다. 세계에서 매년 도축되는 닭 400억마리 중 브라질에서 도축되는 것이 68억마리다. 해마다 지구의 사람 수만큼의 닭이 고기가 되는 셈이다. 2015년 브라질은 닭고기를 1314만t 생산했고, 이 가운데 884만t을 국내에서 소비했으며 430만t은 수출했다. 한국인들도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브라질산 닭고기를 먹는다. 국내 수입 닭고기의 91%가 브라질산이다.
남미에서 닭의 역사는 곧 이민의 역사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전까지 아메리카 대륙에는 닭이 없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칠레에 폴리네시아에서 온 닭의 한 종류가 있었다는 학설도 있지만 검증되지는 않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복자들이 닭을 배에 싣고 대서양을 건너온 뒤에야 브라질 사람들은 닭을 만났다. 적응력 좋은 새들은 빠르게 낯선 땅에 정착했다. 달걀과 닭은 화폐 대신에 쓰일 정도로 흔해졌다.
산업화 초기였던 19세기에 가난과 사회적 혼란에 시달리던 이탈리아 농민들은 넓은 땅과 일자리가 있다는 아메리카로 눈을 돌렸다. 이 시기 브라질에서는 아프리카에서 미주로 이어지는 대서양 노예무역이 금지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졌다. 브라질 농장주들은 백인이고 같은 가톨릭 문화권에 속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격하게 환영했다. 1880년부터 1900년 사이, 100만명에 가까운 이탈리아인들이 브라질에 도착했다. 이들은 남부 산타카타리나, 파라나 등지에 주로 정착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원주민들이 집 뒷마당에 풀어놓고 기르던 닭을 산업화했고, 오늘날 브라질 양계업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브라질의 대표적인 식품회사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육가공기업인 BRF도 산타카타리나에 살았던 이탈리아 이민자 가족들이 1934년 차린 작은 양계장이 모태였다.
남부에서 시작된 닭 산업은 이내 전국으로 퍼졌다. 양계업의 북상(北上)을 주도한 것은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 등 대도시에 정착한 중국과 일본 이민자들이었다. 1960년대부터 양계업은 명실공히 ‘산업’이 됐다. 소고기를 좋아했던 브라질인들은 이 무렵부터 닭고기를 더 먹게 됐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4년 조사한 주요국 육류 소비량을 보면, 브라질인 한 사람은 1년에 닭고기를 38.7㎏ 먹는다. 쇠고기는 27㎏, 돼지고기는 11.9㎏으로 닭고기에 미치지 못한다. 한국에 ‘치맥’이 유행이라지만 한국인의 1인당 연간 닭고기 소비량은 15.4㎏, 브라질의 절반도 안된다.
1979년 브라질이 닭고기 수출을 시작했고, 1980년대 중반부터 수출량이 급증했다. 최대 고객은 중동과 동아시아다. 올해 브라질 닭을 가장 많이 사간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였다. 그 다음이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순이다.
■맥너겟이 키운 ‘스모닭’
브라질에서 닭고기는 철저하게 규격화된 생산품이다. 가장 널리 퍼져 있는 품종은 미국 아칸소에 본사를 둔 육계회사 코브반트레스(Cobb-Vantress)가 만든 코브(Cobb) 품종이다. 코브는 브라질에서 키워지는 종계의 70%를 차지한다.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다진 닭고기로 만든 너겟과 닭고기 패티를 앞다퉈 개발하면서, 다국적기업이 개량한 닭들은 더 이상 동물이 아닌 ‘고기 생산기계’가 됐다. 적은 사료를 먹고 빨리 자라게 만들어진 닭에는 자동차처럼 모델명이 붙는다. 코브반트레스가 개발한 코브500의 공식 소개 문구는 “사료를 적게 먹는 닭으로 개량된 가장 효율적인 구이용 영계”다. 코브700는 이보다 한층 더 개량돼, 짧은 시간 더 뚱뚱하게 자란다. 코브는 한국 양계업체들도 많이 키우는 품종이다.
품종에 따라 다르지만 닭은 보통 5~10년을 산다. 기네스북에 오른 ‘가장 오래 산 닭’은 16살에 미국 앨라배마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암탉이다. 하지만 종계를 생산하는 회사들은 닭의 수명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조금이라도 빨리 잡아야 사료와 시설비가 적게 들고 육질이 부드럽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90일 동안은 키워야 2㎏이 되던 닭은 지금은 42일 만에 2㎏ 넘게 자라 도축할 수 있는 크기가 된다. 알을 낳을 수 있을 정도로 성숙되기도 전이다. 인간으로 치면 어린아이가 성인의 뚱뚱한 몸을 갖게 된 셈이다. 패티나 너겟용으로 많이 쓰이는 닭가슴살은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브라질의 대형마트에서 흔히 팔리는 뼈가 붙은 가슴살은 무게가 1㎏에 이른다. 몸무게의 절반이 가슴인 셈이다. 이는 닭의 근육이 가슴 부위에 몰리도록 육계 회사들이 닭의 성장과정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기 때문이다. <식량의 종말>을 쓴 미국 저널리스트 폴 로버츠는 “1980년 맥도널드가 ‘치킨 맥너겟’이라고 이름 붙인 메뉴를 개발한 뒤 닭들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스모 선수 체형이 됐다”고 말한다.
가슴살만 커진 닭들은 골격이 체중을 따라가기 어려워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리며, 물통이나 사료통까지 걷기도 힘들어한다. 세포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 근육이 계속 수축상태인 경우가 많고, 모세혈관이 거대한 근육에 영양을 공급할 만큼 충분히 발달하지도 못한다. 이로 인해 닭고기 색이 희미해지고, 육질이 흐물흐물하고, 수분이 빠져나오는 PSE(Pale, Soft, Exudative)라는 증상이 나타난다. 미국을 비롯한 곳곳의 거대 닭공장에서 벌어지는 일이자, 양계업계의 오랜 고민거리다. 손쉬운 해결책 중 하나는 닭고기에 인산염 따위를 주입해 수분이 새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개량된 닭들은 병아리 시절 농가에 공급된다. BRF나 브라질의 대형 육가공업체 JBS는 양계 농가 20만여곳에 부화기에서 알을 까고 나온 병아리들을 분양한다. 기업들이 농가에 내주는 것은 병아리만이 아니다. 수의사와 사료도 한꺼번에 보낸다. 사료와 물을 얼마나 줄지, 닭 축사의 시설은 어떻게 관리할지도 기업이 정한다. 양계장 주인은 닭을 정해진 날짜까지 키우는 역할만 한다. 잘 관리된 공정 속에서 표준화된 맛과 크기, 품질을 지닌 닭고기가 만들어지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브라질이나 똑같다. 무게를 채운 닭은 가공공장으로 옮겨져 도축된다. 흰색 가운으로 온몸을 가린 여성 노동자들이 부위별로 해체된 닭을 판매용으로 포장한다. 브라질 동물단백질협회(ABPA)가 공식적으로 분류하는 ‘닭 제품’은 모두 41종이다.
■ 양계장의 유칼립투스
닭 산업과 함께 닭들의 몸집은 커졌고, 삶은 짧아졌으며, 몸은 약해졌다. 브라질의 위탁 양계업자들은 닭장 주변에 유칼립투스 나무를 심는다. 다른 동물들이나 바이러스, 세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주변 마을에 냄새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호주가 원산인 유칼립투스는 주변에 강한 독성을 지닌 천연 항균물질을 뿜어낸다.
외부인들의 출입은 물론 정기적으로 농장을 출입하는 관계자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조차 철저히 관리된다. 사료 트럭도 농장 안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다. 동물단백질협회에 소속된 회사가 운영하는 양계장들은 대개 7일 동안 조류와 접촉하지 않았다는 증명을 해야 들어갈 수 있다. 조류독감(AI)이 발병한 나라에 체류했던 사람은 농장을 방문할 수 없다.
이토록 위생관리에 집착하는 것은 질병이 일단 생기면 순식간에 퍼져나가 수백만마리가 폐사하게 되는 대규모 축산환경 탓이다. 특히 고기를 많이 얻을 수 있도록 개량된 미국 품종은 토종닭보다 면역력이 훨씬 약하다. 게다가 닭들 대부분은 면역력이 생기기도 전에 도축된다. 대규모 닭 농장들이 가공공장 주변에 몰려 있어 병이 퍼지기도 쉽다. 가장 공포스러운 질병은 조류독감이다. 값싼 고기를 빨리 얻기 위해 비좁은 공간에 닭을 밀어넣고 항생제와 영양제를 투여했지만 항생제 내성균이 만들어낸 새로운 질병이 터져나왔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의 조류독감은 공장식 축산의 부작용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브라질에서는 지금까지 조류독감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이 전염병이 아시아와 미국을 휩쓸었을 때 반사이익을 톡톡히 봤다. 동물단백질협회 본부를 찾았을 때 만난 양계인들은 “그게 다 우리 닭들이 정말 좋은 환경에서 자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성장호르몬을 사용하지 않고, 항생제도 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해 쓰지 않는다고 했다. 소처럼 사육 기간이 긴 가축은 성장호르몬 주사가 효과 있지만, 40일 정도만 키우는 닭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실제로 브라질에서 육계용 닭은 좁은 케이지(우리) 대신 거대한 닭장의 울타리 안에서 산다. 빽빽하기는 해도, 몸 돌릴 틈조차 없는 공장식 사육장에 비하면 그나마 낫다. 땅덩어리가 워낙 넓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케이지 사육에 대한 비판이 거세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유럽연합(EU)은 1㎡당 사육할 수 있는 닭의 전체 중량이 35㎏ 미만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브라질의 축사에서 자라는 닭들은 1㎡당 평균 28㎏ 정도만 수용된다. 추운 남쪽에서는 닭들이 조금 더 조밀하게 살고, 따뜻한 중부지방에서는 약간 더 넓은 공간에서 산다.
동물단백질협회는 한때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면적당 닭 개체수를 늘리려 시도했으나 닭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참상이 발생해 그만뒀다고 한다. 그러나 달걀을 생산하기 위한 산란용 암탉들의 세계에서는 ‘배터리 케이지’가 아직 퇴출되지 않았다. 배터리 케이지는 가로 50㎝, 세로 50㎝의 닭장이 가로세로로 연결된 대량사육용 구조물인데, 산란계들은 한 칸에 대여섯마리씩 갇혀서 알을 낳는다.
■ 리카르두의 토종닭
상파울루 근교의 이타치바에서 토종닭을 키우는 루이즈 리카르두 비앙키(51)는 이 일대에서 처음으로 닭을 기르기 시작한 이탈리아인 중 한 명의 후손이다. 그의 할아버지 엠마뉴엘은 1930년대에 친구와 함께 커피나무를 키우려다 방향을 바꿔 닭을 택했다. ‘파밀리아비앙키’(비앙키 가족)로 이름 붙여진 가업은 손자인 리카르두에게까지 내려왔다.
9월13일 그의 양계장을 찾았다. 이곳 닭들이 말하자면 브라질 닭의 원형이다. 1930년대 대공황 때 남들처럼 하얀 수입닭을 길러 성장한 파밀리아비앙키는 양계산업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틈새시장을 찾아나섰다.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던 토종닭을 되살리는 것이 목표였다. 미국에서 닭 유전학자까지 초빙해 10여 종류의 닭을 교배했고, 토종닭의 옛 모습을 재현했다. “금잔화를 사료에 섞었어요. 그러면 닭의 살갗이 예전 토종닭처럼 노랗게 됩니다.” 리카르두가 설명했다.
철망으로 벽을 댄 커다란 계사 2동 안에 까만색과 갈색, 흰색, 노란색 닭들이 뒤섞여 있다. 닭들은 그늘지고 바람이 잘 통하며 사료와 물이 있는 계사와 풀이 나 있는 작은 앞마당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울타리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닭들이 낯선 사람을 보고 푸드덕거리며 계사 안으로 들어간다.
“이 애들은 오늘로 생후 76일이 됐어요. 내일이면 고기가 될 운명이지만 이 녀석들은 모르겠지요.” 엘리오(53)는 청바지에 갈색 구두 차림으로 닭들을 쓰다듬었다. 엘리오는 리카르두에게서 닭을 받아와 키우는 위탁업자다. 이틀 이내에 다른 조류를 접촉했다면 양계장을 방문할 수 없고 방문객들은 몸을 덮는 비닐옷과 장갑, 신발덮개를 착용해야 한다. 그래도 여기서는 외부인들이 닭장 안에 들어가 닭을 만져볼 수 있다. 엘리오의 닭들은 튼튼하다. 토종닭의 일생은 규격화된 대형 양계장에 사는 닭보다 두 배 가까이 길다. 몸무게는 1.7㎏ 정도로 덜 나간다.
엘리오의 생활은 뒷마당에서 닭을 기르던 옛 농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 아침 6시30분이면 아내와 함께 닭장으로 나와서 물통을 깨끗이 닦아 물을 넣어두고 사료통을 충분히 채운다. 하루 종일 필요할 때마다 왔다 갔다 하면서 닭들을 돌본다. 해가 뜨면 닭들은 축사 밖으로 나와 마당을 거닌다. 가끔 힘이 좋은 닭은 울타리를 넘어 농장 밖으로 날아가기도 하지만 눈썰미 좋은 엘리오에게 곧 잡혀오거나 알아서 집을 찾아온다.
물론 이 양계장도 현대식 닭 사육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엘리오는 파밀리아비앙키가 인공부화기에서 부화시킨 병아리들을 한꺼번에 들여오고, 75일 정도 키워 한꺼번에 도축장으로 보낸다. 엘리오는 “닭은 접시 위에 올려놓았을 때가 가장 예쁘다”고 했지만 두 달 넘게 정을 붙인 닭들이 떠날 때는 울적해진다고 했다. 닭들도 짧은 생이지만 그를 알아보고 나름의 교감을 한다. “평소에는 반바지를 입고 오는데 오늘 아침에 긴바지를 입고 왔더니 닭들이 나를 못 알아보는 것 같더라고요.” 축사에 널린 깃털과 배설물을 청소하면 새 병아리들이 들어오고, 매일 새벽 축사에 들르는 일상이 반복된다.
■ 지금은 ‘닭의 지질시대’
“유전자를 계속 개량하다 보면 나중에는 가슴살만 남은 닭도 나오지 않을까요. 중국 사람들은 닭발 요리를 좋아하니까, 발이 네 개 달린 닭을 만들면 잘 팔리겠군요.” 닭의 품종개량 과정을 열심히 설명하던 동물단백질협회의 후이 에두아르두 살다냐 바르가스 부회장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물론 농담입니다. 그렇게 되면 닭이 서 있을 수도, 살아 있을 수도 없겠죠.”
그러나 고기 외의 쓸모없는 부위들을 없애버리겠다는 이 상상은 일부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의 과학자들은 2002년 가공비용을 줄이겠다며 ‘깃털 없는 닭’을 개발했다. 분홍빛 살갗이 그대로 드러난 닭은 세계에 충격을 던져줬다.
최근 몇몇 지질학자들은 1950년대 이후의 지질시대를 ‘현세’와 구분되는 ‘인류세(人類世)’로 분류해야 한다며, 후대 사람들이 인류세의 지질을 파헤친다면 가장 흔하게 나오는 화석은 아마도 닭뼈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옛날 사람들은 닭의 목을 직접 비틀어 잡았고, 냄새나고 더러운 닭장에서 달걀을 주워왔지만 우리는 전화 한 통으로 프라이드치킨을 주문하거나 먼지 하나 없는 대형마트에서 포장된 닭고기를 산다. 시간이 지날수록 닭고기를 먹기는 더 편해졌고, 더 많이 먹게 됐고, 양계업은 더 큰 산업이 됐다.
“닭은 불운한 동물이에요. 멸종이 아니라 급증으로 비운을 맞이했죠. 차라리 멸종하는 편이 나았을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수십억개의 달걀과 수백만㎏의 닭고기를 원하는 이상, 수백만명에게 닭고기 제품들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뻔한 것 아니겠어요.” 닭이 전 세계로 퍼진 과정을 추적한 미국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앤드루 롤러의 논픽션 <치킨로드>에 인용된 동물보호 운동가 캐런 데이비스의 말이다.
2005년 9월부터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한 브라질산 닭고기는 10년 만에 저렴한 가격과 높은 품질로 ‘주류’가 됐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통계를 보면 2015년 브라질산 닭고기 수입량은 수입 개시 이듬해인 2006년의 5배로 늘었다. 조류독감 여파로 미국산 닭 수입이 일시 중지되면서 2015년 한 해 동안에는 국내에 수입된 닭고기 9만9259t 중 91%가 브라질산이었다.
브라질산 닭고기가 밀려온 시기는 치킨집 창업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2013년 KB금융그룹이 신용카드 개인사업자 가맹점 기준으로 집계한 전국의 치킨전문점은 3만6000곳. 2002년 이후 10년 동안 매년 2300곳씩 늘었다고 한다. 취업난에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과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가 진입 장벽이 낮은 치킨집 창업에 뛰어든 결과다. 이 시기 한국에서는 순살치킨과 닭강정, 파닭과 불닭이 유행했다. 통닭 대신 등장한 이 새로운 치킨들의 상당수는 값싸고 크기가 큰 브라질산 닭고기로 만든다.
▶브라질 국민간식 ‘코시냐’
브라질 식문화에서 닭고기는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다. 길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간식은 ‘작은 허벅지’라는 뜻인 ‘코시냐(Coxinha)’다. 닭고기를 다져 밀가루와 감자, 닭 육수를 넣은 반죽으로 감싼 뒤 닭다리 모양으로 만들어 튀긴 것이다. 19세기 브라질에 잠시 입헌군주제가 실시됐을 때, 조리할 닭고기가 부족해지자 왕실 요리사가 고안해낸 음식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의 닭볶음탕과 비슷한 ‘프랑구 앙 몰류’, 닭고기를 양념해 불에 구운 ‘필레 지 프랑구’도 동네 허름한 식당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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