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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어떻게살것인가

불안의 정체

by 큰바위얼굴. 2021. 7. 8.

불안하다.

1.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다.
2. 몸이 편안하지 아니하다.
3. 마음에 미안하다.
[유의어] 애태우다, 조마조마하다, 걱정스럽다

 

"기숙학원에 보내주세요."

(힘들어 죽겠어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솔직히 재미없고 지루하고 정체되어 있어서 힘듭니다.)

 

"일어날 때 밥 먹을 때 잘 때를 지키는 것이 그렇게 힘드니?"

(너만 힘든 게 아니야. 모두 힘들어. 지킬 건 지키자.)

 

힘들다고 한다.

힘든 건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한 건 마음이 편하지 아니해서 그렇고, 몸이 편안하지 아니해서 그러하며, 마음에 미안함이 가득해서 그렇다.

불안하다.

 

https://youtu.be/EaVorRitkyA

 

 

목표를 정한다.

열심히 한다.

다만, 일상의 지루함과 따분함은 정체되어 있어 쉬이 견디기 힘들다. 

더구나, 이는 다른 이가 대신해 줄 수 조차 없다. 온전히 제 몫으로 받아들인다.

일상을 반복으로 보면 그렇다.

 

신나게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이면 모두 해결된다.

하지만, 놀 수록 방황할 수록 마음이 심란해지기 쉽상이고, 훅 훅 오르지 않는 성적은 마음을 흔든다.

맞다 라는 확신을 갖고자 하지만 이 또한 노력의 일환이다.

사실, 확신을 갖는다는 건 큰 욕심이다.

마음에 달린 일이다.

 

힘들어서 힘들다고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고지곧대로 대답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고,

그 안에 숨은 '힘들다'에 대해 '힘내' 라고 응원하는 마음 또한 당연하다.

 

힘들다고 할 때 그래 고생이 많다. 힘내. 라고 한다.

힘들다고 할 때 그냥 내버려두자 라고 한다.

결과는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거나 적극 의견을 내거나 심지어 반대를 한다손 치더라도 사실 답은 같다.

감당하고 감내하고 인내하고 참고 하는 일련의 몫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나하고 재밌어 하고 참여하고 함께 하는 노력의 몫 또한 같다.

선택의 문제일 뿐.

 

힘드니 파고드는 속내는 위로를 받고 싶다.

떨쳐버리고 싶다.

벗어나고 싶다.

새로이 다시 라는 말에 현혹된다.

이 또한 일상이 반복되듯이 반복된다.

이 또한 당연한 일이다.

 

힘드니 호소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럼 우리 바람 쐬러 갈까? 여행 좀 같다와서 심기일전 해볼까?

조금은 일상에서 벗어나 보는 건 어떨까?

사실, 여행이 지닌 의미나 견딤의 무게는 같다.

PC방에 가는 시간이 아까운 것이 아니다.

불안해 하면서 심란해 하는 그 시간이 아까운 것 또한 아니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 뿐이다.

어찌 생물이 딱 딱 정해진 대로 살 수 있을까?

변수는 있기 마련이고 심란함에 따른 풀기 또한 따라붙는다.

아니할 수 있거나 흔히 말하는 건전한 놀이, 독서나 음악듣기, 만들기 등을 통한다면 좋은 시선을 모으지만,

어디 그러한가?

 

자극에 흥미에 재미에 빠져듦에 우린 쉽게 노출되어 있고

그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는데 이를 이겨내기란 공부에 매진하는 것과 같다.

 

마치 정해진 공식처럼

공부에 매진하는 모습이나 시간을 관리하는 모습은 이상하다. 

당연한 건 지금과 같은 모습이다.

힘들어 하고 힘들면 PC방에 가거나 자극받기에 시간을 쓴다.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다.

늦게 자면 늦게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면 하루종일 힘들다가 그날 저녁 푹 잠에 골아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건만,

일찍 지기 아쉽고 아깝고 그렇게 저렇게 시간 보내는 밤이 좋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서 아침 달리기를 하고 땀을 흠뻑 빼어 약간 나른한 긴장한 상태에서 4시간 바짝 집중하고,

11시쯤 1시간반에서 2시간 정도 낮잠을 잔 후,

밥 먹고 바짝 2시간 집중하고, 독서나 음악감상 (정적인 놀이; 자극적이지 않은 놀이. 영화도 제외) 혹은 자료찾기 놀이를 1시간 정도 해서 소화를 시킨 후,

다시 저녁 먹기 전까지 초집중을 한다. 그래서 확보한 공부시간의 총량은 7:00~11:00 + 13:00~15:00 + 16:00~20:00 = 10시간. 이러면 저녁이 있는 삶이요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이 가능하다.

 

아침 달리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익숙해지면.

점심 낮잠을 빼놓을 수 없다. 꿈 속에서 앤돌핀이 치솟는다. 심신피로가 풀린다.

저녁 식사부터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다. 삶의 질을 관계에서 찾는다. 특히 불안감을 해소한다. "아빠, 오늘저녁은 연어 어때요?"

 

한 잔의 행복,

한 조각의 행복,

한 가족의 행복.

 

살아 뭐할래 하다가도 힘들고 지치면 가족부터 괴롭힌다.

가장 좋은 건 자기시간을 갖되, 함께하는 시간에 대한 고려를 하는 것인데 사실상 모든 시간을 자기에게만 쏟는다.

그러다가 힘들면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의견을 던지고 반응을 본다. 사실 즐겁다기 보다 괴롭다.

 

선순환하는 자연 생태계처럼,

온갖 기계로 편리를 좇아 결국에는 악순환하는 생태계를 적극 구현하는 인간의 삶처럼,

선순환을 좇고자 하나 결과적으로는 악순환을 시키는 결말처럼,

선의로 하는 행위는 악의처럼 마무리되기 쉽상이고,

이는 모두 선순환하는 생활패턴을 만들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다.

 

건강한 몸에서 좋은 생각과 행복한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정해지지 않은 시간에서 좋은 결과와 훌륭한 성과, 마음에 드는 것을 내는 것은 쉽지 않고, 최선이 아니다.

 

건강한 몸처럼

일정한 규칙 혹은 생활패턴에서 여유와 안정이 찾아온다.

그러하니 오직 자기에만 쏟은 시간을 철저히 자기시간 10시간과 함께하는 시간을 두어 건강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낫다.

결국 익숙해질 때가지 반복하는 것이 노력일 것이며

익숙해질 수록 쉬워지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행복했니? 라는 먼 훗날 물음에 그럼 당연하지 라는 망설임없는 답변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는 지극히 당연히 안다. 가족 누구에게 물어봐도 알 수 있는 답이다.

정말 행복했니? 라는 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너무도 당연히 서로에게 정을 주고 함께 하고 있음을 나타내야 한다.

그런데 우숩게도 함께 하는 시간에는 배려도 없고 고려도 없고 한계만 있다.

이정도면 충분해 라고 하거나 가족행사에는 참석하잖아요 라고 한다.

 

설겆이는 제몫이 아니요

쓰레기를 치운 일은 선물이 된다.

아니해도 될 것을 기꺼이 했음에 기뻐하는 건 당연히 자기몫이고

고마워 함을 받아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한 몫으로 여기기 쉽상이다.

쓰레기 중에는 내꺼 니꺼 따질 것 없이 동생들 것이나 부모의 것 혹은 함께 먹은 음식 잔여물이 대부분 일 것인데

치우는 건 동생 중 한 명이거나 부모 중 한 명이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저는 공부하잖아요

제는 공부하지 않잖아요

속마음이 이렇다면 정말 더럽다. 이런 속마음은 쓰레기 버리듯 기꺼이 버려야 한다. 아닌 것은 얼릉 버려야 이롭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누가봐도.

일상이 불안정한 것은 아닌 것이다. 불안할 수 밖에 없다.

공부 10시간 외는 욕심이다. 더 늘릴 필요도 더할 필요도 없다. 저녁시간이 여유롭다면 삶을 돌아보거나 앞서보면 좋다.

공부는 책 속에 있는 것과 책 밖에 있는 것, 솔직히 책 속에 있는 건 맞추는 것이고 논리를 좇아 이치를 깨닫는 것이라면

책 밖에 있는 건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다.

온종일 자기를 위해 시간을 쓰고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당연함을 조금 나은 방향으로 돌리면 무척 괜찮아 지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 살고 있고 내일을 준비한다 에서 모순은 공부를 다하여 성적을 내면 미래는 밝을 것이라는 기대다.

사실 공부를 잘한다고 성공하지 못한다. 성공은 꾀 혹은 기발함 또는 묵묵함이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성공이든 공부든 앞날을 위한 말이고 책 밖이든 현실이든 그건 지금을 나타내는 말이다.

 

당연하게도 너는 지금을 살고 있다는 점이고,

어쩌면 불쾌하게도 너는 지금을 살면서 앞날 것만 하고 있다는 점일 수 있다.

온통 자기시간 속에서 함께 하는 시간은 배려인 것이고 고려인 것인 것처럼

결국 이기적인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사실 하지 않아도 좋은, 좋은 건, 내게 이로운 건 애써 회피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쓴 약을 버리고 단 약을 찾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렇게 하건만,

조금은 달아져도 좋지 않을까?

 

불안한 것이 당연하다면,

불안해 하지 않는 노력이 당연한 것이다.

 

일상을 일상처럼 반복하면서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과 같다.

일상을 벗어나 시간의 구애됨없이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숙제를 푸는 것과 같다.

앞 문장과 뒤 문장은 같다.

 

노력이 수반됨이 당연한 일이고,

쉬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정한 시간 속에서 사는 것이 별다른 생각없이 집중하기 편하다는 것이다.

쉬운 길을 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갈 필요가 없듯이

일상을 정하면 확신이 노력이 아닌 현실이 된다.

 

욕심을 버리기는 참으로 힘들다.

욕심을 내려놓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 노력이 든다.

 

버릴 수 없다면,

내려놓을 수 없다면,

함께 하면 된다.

 

공은 상존(서로 함께 있다)함을 나타낸 말이다.

https://blog.daum.net/meatmarketing/4972

 

공(空)

[ 空 ] 공(空)은 비었다는 것, 즉 없다는 것인데, 무엇이 없다는 것인가? 인식주체[能]로서의 심념(心念)이 없고, 인식객체[所]로서 일체 법의 차별상이 없다는 것이다. 이어서 사구백비(四句百非

blog.daum.net

 

굳이 공을 좇지 않아도 좋은 것처럼

당연히 공이 내게 머무는 것처럼

찾든 찾지않든 욕심 또한 그와 같이 대하면 족하다.

 

결과나 목표에 연연하기 보다는

힘듦과 불안에 연연하기 보다는

힘든 만큼 힘들지 아니한 때가 있었으니 그 때를 떠올리고,

불안한 만큼 불안하지 아니한 때가 있었으니 그 때를 간직하면 되고,

결과나 목표와 같은 욕심이나 앞날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지금 내게 있지 아니한 것이니 그저 두면 족하다고 본다.

 

즐기기를 아까워 하지 말고

불안조차

목표조차

욕심조차

공부조차

모두 그 안에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 그저 당연하다고 여기고 이를 함께 하면 족하다.

 

없는 것을 아쉬워 하는 것 또한 욕심이요

남들이 가진 것을 탐내는 것 또한 욕심이요

앞날을 미리 당기려는 것 또한 욕심이다.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이 또한 삶의 당연한 이치인 것처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지 아니할 수 밖에 없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요

지금을 사는 것이 맞다.

 

앞날과 과거,

목표와 수준,

욕심과 불안,

이는 모두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하다.

 

점검한다는 말은 나를 이롭게 한다는 말인데,

점검해보니 불안해지고 괴로워지고 시간을 허투로 쓰면 이는 점검하지 아니함만 못하다.

 

힘들다고 전한 말은 나를 이롭게 한다는 말인데,

힘들다고 하니 엉망이 되고 관계가 악화되고 괴로워지면 이는 전하지 아니함만 못하다.

 

맞다 그르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시간 풀어내려 한 노력이 아깝도록 답을 내지 못함이 답답해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이때 하는 '나도 모르겠다' 라는 말은 이 정도면 되었다 하면서 다음에 이어가면 된다 라는 걸 덧붙이고 있으니 답이 어디있고 찾고자한 답을 구하지 못했다손 치더라도 그 흔적은 고스란히 남았으니 이는 앞날에 대한 여운과 지금 한 노력이 어우려져 있음을 말하니 삶 또한 이러하고 말과 행동, 불안, 공부, 행복 또한 이러하다. 좋은 감정에서 안 좋은 감정으로 옮겨가기 쉽상이듯 안 좋은 감정 또한 좋은 감정으로 옮겨가기 쉽상이다. 이미 그러했다.

 

가장 좋은 걸,

가장 그럴 듯한 걸,

바랄 순 있어도 내가 하지 아니하고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이

누군가 내 지금 모습을 보면

가장 좋은 걸 혹은 가장 그럴 듯한 걸 이라고 봐줄까 싶다.

되돌려보면 답은 같다.

 

답답한 것 또한 같고,

불안한 것 또한 같고,

바라는 것 또한 같다.

 

함께 하고 싶고 함께 하는 순간이 행복하길 바라면서

그렇지 아니할 수 있음 또한 받아들여야 함이 당연하다.

지향만 할 것이 아니라 경계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아감 못지 않게 뒷걸음질 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하나를 알고 둘을 아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둘을 잊는 것이 당연하다.

어찌 채우기만 할 것이며 어찌 비우기만 할 수 있을까?

채우고 비우고 넘치고 없고 있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

당연한 걸 당연하다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

 

"내가 쓰레기 통이 된 듯해." 라는 답변이 못내 가슴에 남아있다. 멈추길 바랐다. 그런데 그 말이 심했다.

(여보, 나도 힘들어. 그만 하고 우리 좋은 얘기로 옮겨갈까?)

 

이런 속내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피면 지고 심으면 나고 들쑥날쑥 함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이 안에 행복이 있음을 안다.

다 이룰 수 없고 

바란 대로 모두 될 수 없고

그래도 아니됨을 안다.

 

피할 수 없으면 피하지 말고

하고싶으면 하고

뭔가 원대한 꿈을 꾸고 그걸 하고자 한다면 그냥 하면 된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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