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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무엇을할것인가

인생의 참맛, 그 두번째 항목

by 큰바위얼굴. 2021. 10. 8.

오늘 저녁 가족회의를 앞두고 준비를 한다.

대충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일 텐데, 첫째아이의 일상과 둘째아이의 일상, 그리고 세째 아이의 일상 중에 나타난 거부감, 꺼리낌은 없애고 '하면 좋은 거'와 '하고 싶은 거'를 하자는 쪽으로 얘기를 준비한다.

 

 

자기 삶을 바라보메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가?

만족한다? 혹은 불만족스럽다?

성공적이다? 혹은 부끄럽다?

 

사실 답은 없다. 자기가 정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자기 삶에 대해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말을 듣더라도 그 말이 자기 말이 아닌 타인의 말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아니고는 자기에게 달려있으니 그쪽으로 너무 쏠리거나 의지하지 않으면 된다. 

 

첫째 아이의 '아집' 我執

생각의 범위가 좁아서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 중심의 한 가지 입장에서만 사물을 보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고 방식을 말한다. 즉, 자기를 세상의 중심으로 삼는, 자기에게 집착하고 자기를 내세우는 모든 생각과 마음이 아집이다. 아집은 과거의 성장 배경과 생활 환경에 따라 길들여지고 습관화된 마음의 틀이므로 한번 아집에 빠지면 그것을 깨닫기 전까지 계속 굳어져 가는 경향이 있다. 아집에 사로잡히면 사고가 객관적이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며, 폐쇄적이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집 [我執] (Basic 고교생을 위한 사회 용어사전, 2006. 10. 30., 이상수)

 

(1) 자기 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자기만을 내세우는 것.

(2) 오온()으로 이루어진 아()를 상주불멸하는 실체로 집착하는 소견.

(3) 아상()에 집착하여 자기의 의견에만 사로잡혀 그것만을 옳다고 고집하고 주장하는 것.

(4) 대아()를 발견하지 못하고 소아()에만 집착하는 것.

[네이버 지식백과] 아집 [我執] (원불교대사전)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내려놓으면 좋겠다. 모든 판단과 선택, 맞닿드린 상황에 대해 자꾸 판단하거나 생각하거나 이조차 싫어 회피하는 모습조차 자기중심적이다. 그저 남이 볼 때 한량처럼 보이듯이 그저 그렇게 받아들이면 좋다.

더 없다. 하루를 일어나 시작하고 먹고 PC방가고 자고 일어나 다시 반복하는 모습이 앞으로 어떻게 바뀐다한들 사실 일어나 먹고 일하고 자고 다시 반복하는 모습이 변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같다. 일상은 똑같다. 다만 차이는 받아들이는 마음에 있는 것. 내가 자기를 돌아볼 때 만족스러우면 된다. 뭘 하든 뭘 했든 뭘 하려하든 상관없이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깨끗히 승복하고 탈탈 털고 그냥 Ok 하면 된다. 좋아 좋아 하면서 아무것도 없는 혹은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 아집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기만 위하고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편한 삶에서 관심은 없고 온통 자기 자기 자기인 모습은 아집이다.

그렇게 자기 자기 자기만 생각하다가는 어느새 늙어 소주 한 잔 들지 못하는 아비의 등을 바라보메 그 슬픔을 참을 수 없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나처럼.

 

여한이 없다. 연연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자. 후회 없도록 아낌없이 살자. 뭘 더 잃을까 두려워 하기 보다는 뭘 더 이룰까 혹은 뭘 더 나눌까 즐거워 하는 방향이 낫지 않겠나!

 

둘째 아이의 '천성'

본래 타고난 성격이나 성품.

 

타고나길 느긋하고 여유가 넘치니 중국인의 만만디 한다는 모습이 떠오른다. 땅이 넓기 때문에 인구가 많기 때문에 뭐든 볼륨이 그 만큼 클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란 그들은 뭐든 크고 무겁다. 잔챙이, 쫌생이, 얍삽이를 천성적으로 싫어한다. 반도에 위치하여 중국과 일본에 부침을 많이 당한 우리, 현명하게 사리판단을 잘 하는 사람됨을 최고로 여겼다.

어쩔 수 없는 지리적 환경적 상황에서 나온 품성이라고 본다. 자, 여기에서 우리 둘째의 천성은 여유, 한가로움, 어떤 절취부심한 마음이 있다손치더라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품성을 타고났다. 그래서 아마 오해를 받을 만 하다. 나름 여우같고 사기꾼처럼 속이기도 하며 아닌 척도 잘만 하는데 겉보기와 속이 어쩜 그리 능청스러울 수 있을까!

 

그만큼 손해이면서도 이익이다. 타고나길 그러하니 걱정도 팔자다 라는 말처럼 딱 둘째의 자리에 맞는다. 형이 지닌 진취성과 돌파력, 사고력, 혹은 자기중심적인 부분을 떡 하니 큰 돌이 묵직하게 자리하니 허 참 하는 말이 나오듯이 그런 형세를 자연스레 가져가니 더할나위 없다. 세째에게는 매서운 형으로서 말에 힘을 더하니 뭘 또 바랄까!

 

세째 아이의 '    '

못 들었다. 한자는 보았는데 못 알아보았다. 아쉽기 그지없다. 물어보았으나 알려주지 않았다.

 

바라보메 즐거움이 넘치니 그 자체로 좋다. 맹랑하다. 발랄하다. 슬기롭다. 알아서 찾는다. 애정이 넘친다. 뽀뽀를 한다.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가족의 면면을 둘러보메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내 마음이, 아비의 마음이 이리도 만족스러우니 그 기운이 넘치기를 기대한다. 

 

 

아무것도 없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

이는 내가 없다. 내가 아니다. 없는 것이 아니다. 있다? 있는 것인데 없다 라는 말.

사실 빈 손으로 오지 않았다. 태어나는 순간 이미 내겐 티켓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어느 방향인지 어느 목적지인지 모두 그 티켓에 적혀있다. 다만 읽을 줄 모르고 티켓을 지니고 있는지 찾지 않아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미 떠난, 내 손에 들린 티켓, 그러면서 자기는 티켓을 산다고 우왕좌왕 분주하다. 자기가 지닌 티켓을 보자. 아집의 장점을 바라보고 천성의 장점을 내세우자. 타고나길 그러하니 그 품성대로 스킬을 연마하고 경험을 쌓아 영웅이 되자.

 

나이는 들어가는 것. 거꾸로 흐를 수 없는 것처럼 삶 또한 나아가는 것. 되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과거는 지나온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말끔히 비워도 좋고 지워도 좋고 흡족해 하면서 넉넉한 마음을 품어도 좋다. 사실,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메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지을 이가 얼마나 될까? 이래서 부끄럽고 저래서 부끄럽기 일쑤다.

보지 않아도 아는 것처럼 그렇다. 왜냐하면 그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뭘 알아야 흔한 실수나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을텐데 어디 그런가! 내 품성조차 잘 알지 못한 상황에서 그냥 떠밀려(?) 나온 인생, 내 티켓을 흔들면서 갑시다 하면 족한 걸 이제야 조금 알겠는데. 헐 참이다. 나이 마흔여덟에 조금 아는 상황이 우습다.

 

부끄러워 할 필요 없다. 과거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앞으로 다시 그런 부끄러운 걸 하더라도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 또한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 어쩌면 이 말 '최선'이라는 말 때문에 힘겨웠나 보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어여쁜 아내, 짧은 치마가 어울리는, 그래서 더할나위 없이 반응하는, 훈훈한, 또는 색정적인 몸의 변화, 가벼운 터치감, 살포시 안겨드는 포옹, 팔짱 낀 맨 살에 스치는 가슴의 감촉, 한 발 두 발 발 맞춰 걷는 동반자적인 함께 함, 긴 머리결, 나풀거리는 하늘거림, 다소 아쉬운 가슴의 봉긋함 조차 사랑스럽다.

 

삶은 나아가는 것. 더 이상 연연할 필요가 없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앞으로 채우고 느낄 삶을 기대하며 새로운 티켓을 구해 떠나는 여행처럼 살아도 좋겠다. 머물기를 좋아하니 뒹굴뒹굴 웹툰과 소설에 빠져든다. 문득 든 이러다 끝나는 거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아 휴대폰을 멀리한다. 덩달아 꾸준히 빠짐없이 듣던 '손에잡히는 경제' 까지 멀어진다.

 

멀리해야만 했던 건 아쉬움 때문이다. 이렇게 지나가 버린 시간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중한다. 내 마음에. 내 자신에. 그리고 들여다본다. 그리고 표현해본다. 적는다.

 

왜 인생의 참맛, 그 두번째 항목이 그것인지에 대해서는 들어보자.

 

 

https://youtu.be/-coak1COb5k

 

짧다면 짧은 삶. 유한하다. 유한한 건 값지다. 아깝다. 그런데 아낄 필요가 없다. 무한한다. 아낌없이 표현해도 아깝지 않다. 사랑한다. 고맙다. 라는 말을 달고 살아도 좋다. 부끄럽다. 부럽다 라는 말을 달고 살아도 좋다. 자연스럽다. 내가 챙길 건 삶이 유한한데 일상의 반복 속에서 어떤 티켓을 구할까 하는 설레임이랄까!

 

사실, 다시 얻은 티켓으로 도착한 그곳에서 얼마나 머물까 하는 기대감은 머물수록 반감되기 마련이니 어쩌면 이는 숙명과도 같다. 그래서 나이듦이 반가운 소식일지 모른다. 심지어 노화는 움직임조차 방해한다. 그러하니 움직일 수 있을 때 산의 자락에서 산의 줄기에서 산의 꼭지에서 느끼는 그 해방감, 광활감, 자유로움을 만끽하면 좋겠다.

 

장인어른을 보면 어떤 감정이 드니?

 

그러면, 어머니를 보면?

 

슬프고 아쉽다면 그러지 않기 위한 일을 하면 된다. 찾아뵙고 사랑한다. 고맙다. 감사하다. 라는 말을 포옹으로 표현해도 좋겠다. 뭘 더 바랄까? 여한이 없다는 건 이처럼 상대적이다. 여한은 내게 없는 내 마음을 둔 그것에서 오기 때문인지 참으로 아리송한 감정이다. 내 빈곳을 알아서 채워주는 반려자의 마음처럼 나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내가 느낀 인생의 참맛을 누렸으면 여한이 없겠다. 

 

소리를 내고 눈짓을 하며 귀기울인 만큼 읽은 만큼 말하고 표현하자. 몸짓하자. 승무를 추는 그 자태에 감탄하기 보다는 직접 흉내를 내도 좋겠다. 배워도 좋겠고. 연기하고 흉내내는 걸 부끄러워 할 필요없다. 삶의 자취에서 내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어찌 흉이 될까? 그보다 나은 내 마음을 흡족해 할 만한 그걸 내 스스로 표현하기 전까지는 그 과정이 당연하다. 말하자. 어깨동무하자. 포옹하자. 손을 맞잡자. 축구하자. 농구하자. 그래 놀자.

 

인생이 놀이판이라, 신명나게 한 판 거하게 놀아보자. 얼~ 쑤.

덩실덩실 춤을 추고 노래하니 어찌 맛이 없을 수 있을까!

 

인생의 참맛이라. 한 잔의 술에 녹아든 애잔함 만큼이나 맛이 좋구나!  

김성호.

 

 

 

 

 

  • 스스로 `自`2021.10.08 08:55

    과거를 적으시오.

    (모두가 빈 종이에 과거의 있었던 일 중 부끄럽고 자랑스런 일들을 적는다.)

    이제 과거를 버리시오.

    (빈 종이를 태운다? 집에서? 고이 접어서 봉한다? 요게 좋겠다. 타임캡슐과 연결할까?)

    촛불을 켤까? 손전등에 유리잔의 일렁거림으로 분위기를 연출할까? 뭐가 좋을까? 과거 속으로 회상에 잠기는데 가장 적합한 분위기는 고즈넉함일까? 발랄함은 아니겠지?

    그러면, 이 글은 언제 공유하는 것이 좋을까? 지금? 과거를 버린 후에? 아님, 모두 알린 후에 진행할까? 그러면 쪼금 반감되지 않을까? 기대하지 않았는데 하는 액션만큼 즐거운 깜짝쇼는 없는데, 이 글을 공개하는 것이 꼭 필요한가?
    음... 내 스스로 정리한 것에 만족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대화를 통해 전달하면 좋지 않을까? 그러네. 지금 공유는 하지 말고, 분위기를 만든다음 과거를 적고 버리는 프로그램 후에 가족회의를 하자.

    아차! 그럼 연어는 언제 먹지? 언제 먹는 게 좋을까? 배고플텐데...

    답글
  • 플로라2021.10.08 09:02 신고

    항상 인생에 진심이니
    잘될거야

    답글
    • 스스로 `自`2021.10.08 10:12

      '항상' 이란 말 보다는
      '진심' 이란 말 보다는
      흥미, 재미, 요것저것 표현하는 모습에 더 가깝다고 봐.

      내 마음의 정체를 알아가는, 혹은 찾아가는 과정의 즐거움이랄까!

      '잘될거야'
      이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면서 아쉽지 않으려고 하는 몸짓처럼 보이나 보다.
      아마, 격려나 응원에 가깝기 때문에 미래형으로 표현했으리라 본다.

      그래도,
      '잘될거야' 보다는
      '요것저것 표현하고 다가가는 모습, 마음을 풀어내는 모습이 정겹고 좋다~' 하는 현재형 칭찬으로 되돌아왔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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