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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무엇을할것인가

집착. 존재. 갈망. 두려움. 희망의 연결점

by 큰바위얼굴. 2021. 10. 14.

집착.

집착은 때를 가리지 않는다. 몸이 부쩍 튼튼해진 때 욕심이 집착으로 나타난다. 뭘 더 원하길래 그러는지 곰곰히 지켜본다. 성공인가? 돈? 자랑스러움? 혹은, 죽지못해 아쉬운 나머지?

 

존재.

존재감은 잃기 쉬운 반면 세우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 스스로 떳떳하다는 것. 당당하다는 것은 쉬이 그렇다고 하기에는 걸리는 것들이 많다. 사실, 그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아마 원하는 바 일텐데 어찌어찌 살다보면 그것과 그것을 구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 곤혹스런 경우가 잦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라는 말처럼 쉬우면서도 어려운 말이 있는 것처럼 존재는 감정 때문에 있으면서 없어지기도 한다.

 

갈망.

바람은 때를 가린다. 몸이 건강해야 바라게 된다.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건강하길 바란다. 이때에는 다른 건 모두 의미를 잃고 만다. 그렇다면 건강한 때에는 모든 의미있는 것들을 원해야 할 텐데 사실 놀기 바쁘다. 물론 원하는 바가 성공과 돈을 의미하지는 않겠지만 어디 그런가? 몸이 건강하니 놀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절제라는 말이 나왔고 쉬어 가더라도 할 건 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그냥 한다. 하다보면 되기 마련이니 너무 멀리도 너무 높게도 보지 말고 그냥 한다.

 

두려움.

죽음 만큼 두려운 존재는 없다. 내 곁에 딱 붙어 있으면서도 마치 없는 듯 하다가도 간혹 감정이 복 받치면 등장한다. 손을 맞잡을 때나 어깨동무를 할 때, 그리고 그럴 수 있어 라고 격려의 말을 듣거나 너 너 대로 괜찮아 라는 인정을 듣노라면 더욱 그러하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뭘까? 잃는 것? 소멸? 성공하지 못한 것? 이별? 살아있지 못한 상태? 사실, 우린 잠에 빠져들고 잠을 건너뛸 수는 없다. 잠든 나를 볼 때 그건 살아있다고 봐야 하겠지만 어쩌면 죽음과 많은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난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후회하는 감정 때문이라고 본다. 후회하지 않도록, 여한이 없도록, 연연할 필요가 없다면 죽음 또한 두려운 대상이 아니다. 그저 받아들일, 하루하루 살아감에 감사하는 일련의 일상과 같다.

 

희망.

바라는 것이 있으니 이루어 지리라. 100번을 반복한다. 수없이 바랐고 바라던 일. 잘 사는 거라고 해야할까? 행복한 삶이라고 해야 할까? 행복하다면 나만? 가족과? 조금 더 구체적일 수록 좋겠다. 누구와 함께 하니 너무 좋아 라는 말처럼 바라는 것은 별반 다를 것 없는 일상 중에 만나서 좋고 대화해서 좋고 위해서 좋고 나누니까 좋고 함께 해서 좋은 게 아닐까 싶다. 이유 없이. 그저 함께 하고 싶은 마음, 그것 만큼 바라는 바가 또 있을까!

 

족쇄.

가족은 울타리요 터전이면서 받침이요 기둥이면서 든든함이다. 다만, 그 애잔함이나 연결된 끈끈함은 죽음을 두렵게 만드는 족쇄와 같다. 그렇다고 끊어낼 것인가? 끊어질 것인가? 아니기 때문에 더한 의미가 있다. 족쇄는 결국 든든함과 같이 따라오니 기꺼이 찬다. 두렵지 아니하고 두렵지 아니하도록 하는 노력은 단지 표현하면 된다. 사랑한다. 감사한다.

 

여운.

일련의 키워딩을 통해 차분해지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흔들린 정체성을 바로잡기 위함이요, 튼튼한 몸, 불끈한 욕심, 숨쉬기 버거운 혹은 양압기를 통해 다시 배우는 숨쉬기처럼 갑작스레 찾아와서 흔든다. 중요한 건 마음이요 사는 이유는 함께 함이라 퇴직할 기업의 성과가 목표가 될 수 없고 지워진 사명감 대신 가족애를 누리려는데는 그만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각자의 생각과 바람이 다르고 그러하니 걱정꺼리 또한 고민꺼리 또한 살아가려는 마음조차 제각기임에야 나 또한 그러했으니 지극히 당연함이라. 쉬이 동화하고 쉬이 동조되는 이유는 가족이기 때문이려니. 지나치게 내몰지 말고 몰아세울 필요는 없다. 산책길에서 바라보는 느끼는 감정이야말로 진실됨. 성공은 성과로 볼 이유가 없다. 필요한 것이 돈이라면 돈을 벌면 그만이고 인정과 칭찬이라면 인정과 칭찬을 하면 족하고 성공이란 걸 바란 그것이 본인이 세운 것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그저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성공은 성과가 아니다.

사는 이유가 성공이 아니듯이

죽음이 두려운 이유가 헤어짐이나 후회의 감정이라면

굳이 지금 두렵다. 바란다. 성공하겠다. 이런 걸 바란다기 보다는

살겠다. 즐겁게. 재미있게. 함께 하겠다. 라고 다짐하는 모습이 좋겠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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