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양/궁극에의

다면중심 세상을 만들어가는, 인류가 궁극으로 바라는 바람.희망.소망.꿈의 의미

by 큰바위얼굴. 2022. 1. 27.

각기 달리 보는 단면들이 모여 나의 세상을 만든다 라는 '다면중심 세상론'은 경험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 다면중심 세상론

https://blog.daum.net/meatmarketing/5270

 

 

각각의 단면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까?

인류가 바라고바라는 이루고자 하는 꿈은 무엇일까?

경험을 쌓는다.

경험을 축적한다. 이어간다.

각각의 단면들이 각각의 세계를 형성하고 그 세계는 각자 바라는 바에 근거하여 움직인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18조원을 들여 게임사를 합병한다고 한다.

게임이 중심이 되는 세상이 열릴 것으로 보았다는 것인데, 글쎄 나는 메타버스     로부터 출발하여 궁리하는 지금. 대명제인 "과연 인류가 궁극으로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에 답하려는 입장에서 보면 게임은 만들어진, 이미 짜여진, 정해진, 한계가 뚜렷한, 다만 여러 체험을 해볼 수 있는 장점 외에는 쏠린다 라는 단점이 큰 방향이라고 느끼니 거부감이 든다. 물론 우린 불연듯 아무 생각없이 게임을 통해 즐기고 이야기하고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 방향에서 찾았겠지만 과연 모든 인류가 아무 생각없이 게임에 푹 빠져 보내고 싶을까?

 

아니다. 나 또한 바라지 않는다.

아무 생각없이 게임에 푹 빠져 보내는 시간이 늘면 늘수록 현실에의 한계를 마주하게 되니 더한 외로움과 후회, 반성이 생기기도 한다. 현실 도피로 볼 때의 게임을 하고싶지 않다. 즐거움만 가득한 짜여진 인위적인 세상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당장 보낼 시간이, 시간을 보낼 꺼리가 없으니 할 뿐이다. 대안이 나온다면 어찌 그리 가지 않을까 한다.

 

그 방향에서 고민중에 있다.

 

"과연 인류가 궁극으로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

 

자유롭고 싶다.

상상한 대로 살아보고 싶다. (절대 짜여진 만들어진 게임이 아니라)

 

자유롭고 상상한 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희망.소망.꿈을 이루고 이루고자 바란다면 그 상상한 그대로 살면 된다 라는 답을 주어야 한다. 결코 짜여지고 만들어진 세상이 아닌 것이다.

 

바라고바라다 보면 이루어진다.

바라고바라다 보면 기도가 되어 언젠가 이루어진다.

기도는 바람.희망.소망.꿈과 같다.

 

미술작품을 보고 감상에 젖고, 음악을 듣고 감상에 젖고, 영화 감상을 하고, 우린 잠을 통해 꿈을 꾼다.

감상은 상상.연상.꿈과 같이 볼 수 있다.

 

불연듯 떠오른 상상.연상은 잠을 통해 꾼 꿈과 같이 나를, 우리를 보듬어주고 환희에 젖게도 하며 반성케 하는 치유의 시간을 부여하고 휴식하게 한다. 먹먹함, 은은함, 달콤함, 보드라움으로 표현할 수 있다.

 

"과연 인류가 궁극으로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

 

바라고보라는 것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는 현실에서의 경험, 즉 다면중심 세상에서 살아가며 쌓은 경험들이 어느 순간 너무 축적되어 힘이 들때나 쉼이 필요할 때 혹은 주기적으로 잠을 자게 한다. 잠은 정리의 시간이면서 치유를 하고 되돌아보게 하며 각인된 명제를 해결하려 하기도 하며 그 과정을 모두 꿈을 통한 경험으로 보여준다. 마치 그랬구나 그랬어 하는 것처럼 또는 마치 그럴까 그랬구나 하는 것처럼. 정답은 아니겠지만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아 다시 물어보는 것처럼.

 

"과연 인류가 궁극으로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

바라고바라다 보면 이루어진다.

바람.희망.소망.꿈을 이루고 이루고자 바란다면 그 상상한 그대로 살면 된다.

 

다면중심 세상이 경험이 쌓여 이루어진 단면으로 형성되었듯이 각각의 단면들은 바라고바라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바라고바란 그 방향은 잠을 통해 되돌아보면서 꿈을 통한 경험으로 다시 펼쳐지며 치유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 계속 나아간다. 살아간다. 어쩌면 차원은 있기도 하지만 없다. 어쩌면 전생과 후생 또한 있기도 하지만 없다. 공간과 시간의 축을 중심으로 본 산물일 뿐, 어쩌면 우린 이미 그렇게 전생과 후생 뿐만아니라, 각각의 단면이 차원이라 말하는 것 모두 어쩌면 현실에서 마주한 우주의 모습 또한 하나의 단면처럼 '나'를 중심으로 다면을 형성한 세상이 되어 그렇게 흘러갈 뿐이다.

 

삶이 배경의 변화 속에서 쌓는 경험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듯이 배경의 변화가 다양한 경험을 내포하고 있다면 과연 삶이 지향하는 건 뭘까? 그 지향하는 바가 바로 "과연 인류가 궁극으로 바라는 바가 무엇일까?"와 다를 이유가 있을까? 또는 지금 내가 궁리하는 "과연 난 뭘 바랄까?" 라거나 "내가 바라는 건 도대체 뭘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과 그 무엇이 다를까? 배경의 변화가 삶을 나타내는 경험을 말하고 있다면 상상의 변화는 바라고바라는 바의 움직임, 다시말해 방향성을 칭한다고 봐도 좋겠다. 삶의 길을 감에 있어 우린 배경의 변화 속에서 경험을 쌓는다. 그렇다면, 삶의 길은 어디로 향하느냐 라는 질문에는 우리가 바라고바라는 대로 흘러간다 라는 답을 주저없이 말하듯이, 내가 본 삶의 길이 향하는 방향은 바라고바라는 바람.희망.소망.꿈이요 그건 바로 짜여지고 만들어진 게임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게임을 통하든 수양을 통하든 하다보면 언젠가 닿을 그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바라고바라다보면 이루어진다.

 

"바라고바라면 기도가 된다. 현실이 아닌"

이 명제가 던진 파문이 이다지도 깊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현실에서 쌓은 경험이 각각의 단면이 되어 '나'를 중심으로 다면을 형성함으로써 각각의 단면이 각각의 세계가 되는 다면중심 세상이 열렸다면, 그 다면중심 세상은 '나'가 바라고바라는 바람.희망.소망.꿈을 향해 나아가고, 그 바라고바란 바람.희망.소망은 미술감상처럼 음악감상처럼 영화감상처럼 그리고 잠을 통한 꿈처럼 표현되어 나타나 이끈다. 잠시 쉬어가며 치유하는 잠은 그래서 소중하다.

 

꿈과 꿈의 연결하기는 바라고바라는 세상을 에너지가 가득찬, 경험너머 상상조차 나누는 세상으로의 진입을 말하며 멀지않은 때 다가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의 단초처럼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강한 감정을 주면 연결은 가능하다.

그런데 연결하기 전에 우린 연결하기 위한 각각의 연결점, 즉 꿈을 꾸어야 한다. 꿈을 꾸도록 알려주는 일이 필요하다. 상상을 하도록, 상상이 된, 생각하는, 음악을 듣고 불연듯 떠오른 감상을 감상 그대로 간직하고 (저장) 나누는 (전파) 그리고 오래도록 함께 이야기 하는 (공유) 세상이 열릴 것으로 예상한다. 이처럼 꿈과 꿈이 연결된 세상에선 치유와 반성, 회복, 먹먹함, 은은함, 달콤함, 보드라움이 가득차 있어 그 자체로서 충만한 경험에너지로 더할나위 없는 즐거운 경험을 선사해 줄 것이라 믿는다.

 

"과연 인류가 궁극으로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

바라고바라다보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바라고바라는 것은 바람.희망.소망.꿈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람.희망.소망은 잠을 통한 꿈이 서로 연결될 때 그 꿈의 기반이 된 수많은 단면들의 경험들이 상호작용할 때 '나'를 중심으로 한 다면중심 세상이 '우리'를 중심으로 한 다면세상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믿는다. 김성호.

 

> 다면중심 세상을 만들어가는, 인류가 궁극으로 바라는 바람.희망.소망.꿈의 의미

https://youtu.be/4FlnuB6JY5s

 

이어서 '변화' 이야기 2번째를 작성하다보니 '궁극'과 연결이 되어 덧붙인다.

> 변화, 2번째 이야기

https://blog.daum.net/meatmarketing/5272

 

 

많은 경험을 쌓았다. 궁리도 많이 했다.

무엇보다도 '궁극에 도달하는 길(Reach the End)' 코너를 만들어 풍성한 글을 작성중이라는 점이다.

 

 

하루 하루가 새롭다.

 

'궁극에 도달하는 길'에서 한 발 나아간 꿈과꿈을 연결하기 위한 첫번째 단계인 꿈이야기를 연재 중이다.

 

 

일상기록 코너가 하나씩 하나씩 늘어나면서 위로 밀어올리는 중이다. 나의 이야기로부터 가족이야기, 그리고 고민했고 고민하고 있는 무엇을 할 것인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의견들. 고민하다보니 마주한 메타버스에서 시작된 "과연 인류가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라는 궁극에 대한 궁리. 궁극에 대한 고민을 정리하면서 다시 파생된 실제 접한 꿈이야기. 아직 꿈과꿈을 연결하기는 요원하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18조원에 매입한 게임사처럼 될 것으로 짜여지거나 만들어진 세상을 반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하니 그와 달리 난 "내가 바라는" 혹은 "우리가 바라는" 그것에 대한 고민을 이어갈까 한다.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은 배경에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관점에 따라 삶은 이처럼 가소롭게도 보인다.

 

다만, 배경의 변화는 삶을 이끄는 에너지인 경험을 준다. 경험을 쌓고 경험과 함께 나눈다 라는 참으로 단순한 진리.

일은 목표나 목적이 될 수 없다. 경험 중의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직업에 비춘 경험쌓기는 한계가 있다. 아니해도 좋을 해도 좋지만 그런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 펼쳐진 꿈이 여러 직업으로 각색되어 표현될 지라도 그 직업은 단지 배경의 변화에 지나지 않듯, 펼쳐진 꿈을 이루는 건 우리가 가고자 하는 하고자 하는 바라고바라는 이루고자 하는 그것이라는.

 

어쩌면 이생에 못다할 수도 있겠지만 뭐 이어짐은 끊임없이 단초는 남겼고 계속 될 것이니 급할 건 없다. 바라고바라다보면 이루어진다. 내 생에 기도가 아닌 현실이 되길 바라면서. 김성호.

 

 

 

 

  • 스스로 `自`2022.02.07 22:56

    "과연 인류가 궁극으로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

    바라고바라다보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바라고바라는 것은 바람.희망.소망.꿈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바람.희망.소망.꿈 그 자체인가 보다. 바라는 바가 아니라. 문득 다시 읽어보며 든 생각이다. 신념이랄까? 강한 의지랄까? 면면히 흐르는 강이랄까? 그 자체가 바로 바라는바가 아닐까? 바람.희망.소망.꿈 그 자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