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향에 돌아와 저 멀리 큰바위얼굴을 바라보니 어느사이엔가 닮아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라고 기억된다. '큰바위얼굴' 동화를 보고나서 난 바라고바란, 그렇게나 감추고 감춘다고 해도 자기안에 바라고바란 모습, 진실로 바라고바란 바는 큰바위얼굴처럼 닮아 어느새 그렇게 나이가 들었다는 이야기에서 "나 또한 그럴 것 같아" 하고 동화를 보았을 때 설마 내 얼굴이 큰바위얼굴이 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난 큰바위얼굴처럼 '닮고자 한 모습'을 닮을 줄 알았는데, 어쩌다보니 큰바위얼굴을 닮아버렸는지 모르겠다.
아마 고흐거나 쇼팽일 것이라 봐. 고흐에 가깝겠지 한다. 한 사람은 그림을 그렸고 한 사람은 음악을 했다. 그렇게나 메모를 광적으로 했단다. 수많은 애피소드가 있었던 것 같지만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큰바위얼굴에서 "어느사이엔가 닮아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 것처럼 메모광 또한 어느사이엔가 내 삶 그 자체가 되어 있더라. 쓰고 지우고 낚서하는 기분으로 끄적끄적이던 일들이 일터에서는 기획이라는 이름으로 편집능력이 커지더니 맥을 잡아 이리저리 재고 다듬고 디자인하며 문서를 가꾸고 편집하며 나아가다가 기고를 하다보니 남들 시선을 보게 되고, 더구나 블로그를 통해 글로써 나를 마주하다보니 조심스럽게 대중성, 혹은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일이 많아지더라. 이처럼 하나의 동화 '메모광'은 내게 삶, 그 자체의 의미로써 다가와 '기록하는 삶'을 권하도록 만든다. 참으로 감사하다. 내게 큰바위얼굴이 지향점이었다면 메모광은 삶을 지탱하는 동아줄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유리알 유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화두이면서 끊임없는 상상을 만들어낸 산물이리라. 유희, 즐거움, 극쾌에 가까운 진실로 바라는 바 도대체 유희라는 개념을 어찌 설명하여 느끼도록 해줄 수 있을까마는 유희라는 자체는 소설 속에서 교육이라는 전달방식으로 등장한다. 상당히 어려운 개념이다. 그럼에도 유희를 모르느냐? 그건 또 아니다. 대충 아하 그런 느낌으로 안다. 그런데 여기에 '유리알'이 붙는 순간 헐, 헉 하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깨지기 쉬운 그래서 조심스러운, 쉽고도 어려운, 가꾸어나가야 하는, 살짝 접근해야 하는, 마치 너의 유희는 너희가 유희를 즐기려면 유리알 이라는 속성을 알고 해야해 하고 하는 듯하다. 혹은 유희는 유리알처럼 깨지기 쉬우니 유희를 즐기지 말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아니면 반대로 유리알처럼 깨지기 쉬우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말로도 들린다. 유리알 유희, 즐거운 가운데 슬픔 가운데 아픔 가운데 고통 가운데 끊임없이 갈구하는 가운데 바라고바란 가운데 그 안에 유희를 두었으니 이 어찌 행복해마지 않느냐마는 유리알 이라는 태생적 아픔이 그렇게나 힘겹고 아팠나 보다. 삶을 다시 살고 싶다거나 되돌이키고 싶다거나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고 바란다거나 에이 뭐 그래, 아무렇지도 않아 그냥 그런거야 하면서도 자꾸만 끄집어당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거나 어쩌면 이다지도 깔끔하지 않냐며 핀잔하다가도 그저 pc앞에 앉아있는다거나 하는 것 자체가 '유리알 유희'인 것처럼 우린 그냥 유리알 유희인 생을 살고 있다고 본다. 때론 그렇고 때론 저렇고 그렇든 아니든 담당하게 혹은 아프게 고통스럽다가도 넘어서면 그 고통조차 추억이 되는 그런 이어짐 속에 하루하루 나이를 들어가는, 그리고 어느 순간 큰바위얼굴을 마주한 자신을 인정하게 되고 삶을 기록했던 기록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메모광으로서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는 내 모습을 흐뭇하게 여긴다.
이번주 가족회의 숙제는,
큰바위얼굴과 메모광을 읽어보고 참석하기.
큰바위얼굴과 메모광을 떠올린 건 앞서 이야기한 내용이라기 보다는 가족회의 주제로서 함께 나눌 주제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아주 찰라에 지나지 않게. 충주시에서 다시 세종시로 가는 오늘 금요일 저녁을 기대하면서 말야. 꼭 좀 읽어보고 우리가 함께 하는 그 시간을 '기대'하면서 기다리면 좋겠다 하는 바램. 내 바라고바라는 것은 이거야. 훌륭하길 바라지 않아, 뛰어나길 바라지 않아, 그저 지금 생각하고 고민하고 아파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그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서 자신을 바라보거나 마주한 자신을 아끼면서 대면하길 바라지. 그리고 그것을 가족에게 한 사람 한 사람 아빠, 엄마, 동생, 동생 각각의 면면과 마주하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가볍게 하면서 충고나 지도 혹은 가르침이라기 보다는 그저 경험담을 들려주는, 마치 앞서 이야기한 큰바위얼굴의 동화처럼 이야기하는 '그런 시간'을 함께 하면 좋겠다는 그걸 바란다. 내 죽음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내 가족의 누군가, 내가 정을 준 누군가와의 이별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충분히 간절하고 간절하다. 그저 너가 할 일은 자신을 마주하여 기록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것만 해도 좋겠다. 그게 시작이요 어쩌면 이승의 삶을 정리하면서 갖게될 가장 큰 선물이 될꺼라고 믿는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블로그를 꾸미려고 혹은 내가 아는 것이 맞나 찾아보려고 큰바위얼굴과 메모광 이미지를 찾아보았는데, 큰바위얼굴은 바로 찾은 반면, 메모광은 도대체 찾기가 어렵다.
메모광
메모광 수필 (메모광이 소설이 아니었던가? 키워드에 뜨길래)
메모광 교과서
이렇게 키워드를 넣어봐도 내가 보았던 학창시절 읽었던 메모광이 딱 이거다 라고 발견하기 쉽지 않다. 찾아줘~
이는 오늘아침 일어나 생각했던 미션, '4가지 이야기 찾아내기' https://youtu.be/hEGxm1Do6ZI 중 하나의 주제였고 가장 마지막에 찾아낸, 정말 포기한 순간 찾아내어 더욱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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