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들어 가볍게 인사를 건넨다. 사진에 남았음에. 인사를 받아준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다. 이때, 난 남은 시간을 본다. "거의 끝났잖아"
그럼, 이대로 사라지는 거야. 어느 순간 리사가 나와 함께 걷다가 사라지고 동행하던 개가 사라지더니 나무에 단풍이 들었고 그가 사라진 곳은 여느 때와 같았다. 인물만 사라졌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등장인물이 나오겠지 하며 슬퍼진다. "왜? 슬퍼?"
나무도 나이가 들면 죽는다.
나무는 힘겨울 때 색이 바래 단풍이 든다. 그리고 모두 떨꾼다.
나무이길 바랐다. 단풍이 지는 건 두렵지 않지만 사라지는 것에는 깊은 교감을 나눴다. 잊혀짐이 싫은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살다살다 별스런 일인양 여겨지고 싶은가 보다. 별나서 그러는게 아니야. 살아 뭐하게? 그렇다고 남에게, 하긴 피해를 끼치는데 악역과 선역으로 나눌 뿐, 모를 일이다. 그냥 각자가 받아들 일 뿐. 계속 된다. 인생이 계속 되어 살아지는 것처럼. 나는 지금 사는 연습중이다. 이제 연습생이된 기분이다. 도통 뭘 하다 아직도 이러는지 엄히 땅바닥을찬다. 오랜만에 서충주 대소원초교를 둘러 돌아보았다. 학교는 공사중이었다. 공원이라도 만드려는지 모르겠더라. 가는 길에 아스팔트에 주저앉아 있는 할머니를 보았고 다가가 물었다. "어디 다치셨나요?"
아니여. 쓰레기봉투를 저리 옮기려다가 힘들어 쉬고 있는 중이여. 하신다. 철푸덕 하고 주저앉은 품세가 그게 아닌 듯해서 계속 말을 붙여 이어가니 다행히도 그녀는 아프지 않았다. 정말 길 한 가운데 앉아있었던 거다. "그럼 제가 옮겨드릴까요?"
올랑가 안 올랑가 도대체 며칠은 지난 듯 한데 그래도 내어놔야 가지가지 않겠어? 하신다. 할머니,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할머니가 생각났다.
...
내 존재가 사라짐이 슬퍼 우는 게 아니다.
못다함, 미안함, 후회, 안타까움과 이성을 탓한다. 바보라고 속으로 욕한다. 뭐가 그렇다고 그리도 잡고 있는 거냐구. 긴 긴 기도문이 온다. 월에 1번. 스스로 하고 있는 기부는 처음이다. 성전건립을 한 곳에서 태어나 앞집에서 살았고, 성전을 건립하려고 한 그때는 어려서 그 의미를 몰랐고 이젠 건립코자 하는 곳에 기부를 한다. 아버지는 성전을 지었고 나는 그 성전에서 놀았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
할머니도 보고 싶다.
흥.칫. 하는 듯하다. 너에겐 할아버지도 있었단다. 하긴 기억을 못하니 그래 그렇겠지. 토니가 리사가 한 걸음씩 사라져 간 것처럼 내게 할아버지가 그러했고 할머니가.. 아니다. 오히려 기억에 기억을 덧대어 견고해진다. 기억하려 애쓴다. 살아있으리라고 믿으면서. 내 도리가 기억을 떠올리는 것 뿐이라면서 애쓴다. 그리고 떨어진 종이를 주워준다. 당신에게 관심있는 사람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을 하지요? 멀뚱히 있는 게 아니라, 허리를 숙여서 당신이 떨어뜨린 사과, 사고, 사건, 애정을 모두 주워요. 라는 장면이 스친다.
시즌3. 6부.
애프터 라이프는 참으로 조용하고 소리없이 흘러내리도록 만들었다. 그 시간이 덧없지 아니하도록, 비록 건너뛴 부분이 있었지만 그 또한 그 역할로 구색을 맞추더라. 외롭다. 외로워한다. 아닌 척 해도 그럴 뿐, 모두가 외롭다 라는 걸 전제로 전개를 한다. 소리를 죽인 노크처럼 톡 톡 퉁 퉁 가슴을 울린다. 쾅 하고 크게 퍼지지 않지만 종이를 적시는 물처럼 스며든다. 내내. 구색이 참으로. 그래서 그럴까? 지나친 짜임새는 살짝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여백의 묘로써 빠르게 감기를 사용하면 좋다. 감다 감다 보고싶은 모습이 나오면 감는 걸 멈추고 시선을 고정한다. 빠져든다. 사라짐에 강한 애착을 느낀다. 남김. 이란 말처럼.
여운이 남는다. 그저 살아보라구 전한다. 오늘하루를 열심히 살라고 전한다. 걱정도 근심도 회상도 모두 쉬이 흘러간 흘러갈 것들이니 그저 오늘 (있는) 걸 (감사하면서) 할 걸 하라고 한다. 산다. 한다. 있으니 살고 하라고. 물론 경계는 없다. 남김의 연장선에서 남기고 있는 지금처럼 써도 좋다. 돈을 벌어야만 하는 게 아니다. 기꺼이 하는 게 필요하지. 돈이 먼저가 아니라 기꺼움이 먼저다. 어차피 사라질,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라질 운명들을 만년을 사는 드래곤이 본다고 여기자. 점과 같이 보인다. 길고 긴 것처럼 보여도 지극히 짧은 게 길이다. 그냥 하라고 한다.
그래서 계속 잇는다. (잊지 않으려고 사라지지 않으려고)
함께 사는, 함께 하는 서희야
도대체 우린 몇년도에 어디에서 어떻게 처음 만났을까?
하도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예티 단장중이란다. 미안하더라.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지난 일들이 그저 기록했다고 자신했었나보더라. 머리속을 샅샅이 뒤져도 잘 안 떠오르더라.
서희와 성호는 대학4학년 때 남들 다 면허증 따려는 공부에 열중할 때 광수(?)의 소개로 어디에서 만났습니다. 일곱의 여친들을 차례로 만나보았고 수정못에 갔었으며 대구막창을 자주 튀겨 먹었습니다. .. 투비컨티뉴드
끝이 끝이 아니라 끝을 굳이 자꾸 인식할 필요는 없다. 그저 오늘하루 산 것만 해도 훌륭하니까.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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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自`2022.05.17 07:35
상실감은 왜 내가 살아야 하나요? 라고 묻고 있고 그에 대한 답변으로 그래도 그냥 살아. 뭐가 더 있겠니? 그녀가 그걸 원할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살아. 마지못해 살지 말고 보란듯이. 그중에 의미가 있다면 사라짐에 가슴아픈 사연은 좀 나아지지 않겠니? 라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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