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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나의 이야기

'맑음'

by 큰바위얼굴. 2022. 9. 15.

길을 나서메 밤새 양압기를 끼고 이리저리 뒹굴면서 뒤척였던 무거움을 털어낸다.

하늘이 맑다. 푸르르다.

하늘을 보메 마음이 포근해진다. 딱히 바라는 것도 욕심내는 것도 원하는 것도 한 줌 바람에 스쳐 떨어져 나간다.

이제 달리자.

조금 더 텐션을 높혀서 손끝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구르는 발에도 힘을 주어 내딪는다. 거친 숨소리가 달리고 있음을 알려준다. 노래를 바꾼다. 들려오는 소리에 맞춰 발을 구른다. 

앗!

냄새가 구리다. 저만치 멀리서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퇴비작업 중이다. 바람을 타고 냄새가 다리 밑까지 다다랗다. 과연 이 길을 뚫고 가야만 하는가!

마스크를 끼고 걸어온 자의 뒷모습을 좇아 뛰면서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저 냄새를 뚫고 오지 않아 너무 다행이네"

뉴스를 들으면서 걷고 있는 자를 앞지르고 뚝방길을 되돌아 달리고 있는 중이다. 

앗!

냄새가 구리다. 이번엔 도축장 폐기물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잠깐이니까 뚫고 지나갈까? 내가 정한 실크로드로 되돌려 갈까?

길을 되돌려 실크로드라 명명한 오솔길을 내달린다. 내리막이니 조심조심 걸어 내려갔다가 막판에 내려가는 힘에 맞춰 발을 빠르게 구른다. 좋구나!

땀이 벤 등줄기에 바람이 스치니 시원하다.

사무실로 돌아와 vpn에 다시 접속을 시도하니 "현재 사용자 ID로는 접속할 수 없습니다."

헐, 10여차례 같은 메시지를 확인한 후 동료들과의 카톡방에 이를 알린다. 확인하기 까지는 누군가의 출근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다 보니 심심해지고 심심하다보니 하늘 사진이 떠올라 이를 남기면서 시간을 쓴다.

시간은 보내는 게 아니다.

시간은 쓰는 거지. 이를 다시 생각하면서,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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