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나선다. 눈이 내린다.
눈이 온다. 많이. 달리니까 기분이 좋다. 오늘은 혼자 나왔다. 해나와 예티, 그리고 서희 영록 영탁 치형이는 잠을 잔다. "미끄러우니까 조심해" 라는 서희의 말. 뽀드득 뽀드득 눈이 쌓인 길은 미끄럽다기 보다는 그 소리가 더 정스럽다. (음성 듣기)
https://youtu.be/LNVsOGU3dns
어제는 선배 부친상을 다녀 왔고, 얼렁뚱땅 시간이 흘러간 것처럼 짧은 찰나의 시간, 그를 매개로 이야기를 전했다.
별이 사멸할 때 주변을 빨아들여 공, 무. 있다와 없다의 개념이 아니라, 있는 것 중에 사라지는, 집어삼키는 개념을 재탄생을 위한 블랙홀의 흡입처럼, 죽음이라는 소통 창구가 어쩌면 교신하는 창구가 아닐까! 지금도 물론 일상이 기록되고, 누군가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그런 모습이지만, 어쩌면 죽음이야말로 우리를 기리고 우리가 떠난 일을 기리고, 그의 이야기를 일단 정리하는 시점으로 볼 수 있겠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면면히 이어지는 그의 존재감. 간직하고 어제는 많은 일이 있었다. 휴가를 냈고, 아이들 라식 수술을 했고, (영록이가 아르바이트 하는) 반포 그릴에서 저녁을 먹었고, 노래방을 갔다.
어느 순간 어둑어둑한 다리 밑, 다시 다리를 지나 나서면 토닥토닥 눈이 점퍼에 맞는 소리. 그리고 쌓인 눈에 뽀드득거리는 소리. 길에 나흘로 발자국을 남기면서 나아간다.
멈춘다면, 그리고 불현듯 온 길을 되돌아간다면, 태엽이 감기는 마냥 팽팽한 긴장감이 하나를 알았고, 둘을 알기를 원했고, 셋을 얻으니 넷을 원하게 되고, 어느 순간 다섯의 위치에 있더라. 잃고 보니 여섯이 있었고, 다시 그때 하늘을 보니 일곱이 보이더라. 손을 뻗어 다시 기지개를 켜고 '별거 없구나' 하는 여덟. 그윽한 눈매는 어느새 아홉을 닮았더라. 손가락을 하나씩 하나씩 꼽아 처음부터 되돌리니 찰나와 같이 열이 되더라.
팔을 쭉 펴고, 달리는 중에 팔을 쭉 펴고 비행기가 된다.
배경이 날리는 눈에 점점 하얗게 변해가고, 내뿜어진 입김에 일부 눈으로 안경에 낀 눈들이 떨어져 내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환희에 젖는다. 이야기를 듣고 보고 떠올리면서 빠져들면 어느 새 동화가 되어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그 상황에 놓이기도 하며, 다시금 감정을 잡아낸다. "좋다."
매일같이 자전거를 끌고 가는 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변함이 없이 반복한다.
목의 뻐근함조차 좌우로 펴고 뿌드득 뿌드득 시원하다.
하얗게 눈이 덮인 세상, 지금 나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See U.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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