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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세상보기

반가움이 살아 있는 한

by 큰바위얼굴. 2023. 1. 6.


반가움이 살아 있는 한 한국은 영원하다.

소멸이 과연 있는 세상에서 사라질지언정 없어졌을까? 없는 세상으로 갔을까?

이롭게 한다는 건 나아감에 있어 이어달리게 하기도 하며 되돌아보게도 한다.

미국의 어느 대학 강당에서 한국의 놀랄만한 발전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출근길에. 성호.


출근길 하천변 반환점에 거의 도달한 시점
정자에 앉아



2023년 1월 6일 7시 18분.

하천변으로 출근하는 중이다. (음성 듣기) https://youtu.be/01rSVGiihUE



자, 지금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이롭게 한다. 널리 이롭게 한다. 이롭게 한다라는 방향은 밖으로 향해 있다. 모든 원자는 광자와 원자핵으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핵과 광자의 거리는 태양과 목성까지의 거리만큼 멀다. 놀랍지 않아? 하나의 점의 세계가 그만큼 넓고 크고 원자핵과 광자 사이의 공간만큼이나.

원자핵과 광자 사이의 공간은 비었다라고 할 수 있을까?

비었다. 없다라고 할 순 없지. 원자라는 울타리 안에 어떤 것이라도 있다. 원자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어떤 것이라도 있다. 없지 아니하니 뭐라도 있다.

원자 밖의 공간은 다시 원자가 이루는 분자. 좀 더 진화를 하는 거지. 다시 분자들끼리의 어떤 조합으로 생명체 혹은 어떤 물질을 만들어낸다. 보이는 형상 질감의 형태에 따른 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살아있다라는 생명력의 여부에 따라서 보는 게 아니라, 원자 자체는 살아있다.

바위와 모래에 있는 원자가 죽었다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잠재되어 있다. 살아있다 라는 의미를 달리 봐야한다. 원자는 살아있는가? 만약 원자를 살아있다고 본다면 세상 모든 만물은 살아있다.

자, 사람이 죽어 흙으로 흩어져 혹은 불에 태워져 공기 중에 분해되어 날아간다. 죽었다. 분해되어 원자로 분자로 섞여 들어간 현상을 소멸로 볼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더구나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주 만물은 형태나 생명력의 유무가 아니라 원자가 분자로 분자끼리 조합된 형태로 다시 흩어져 원자로 이어지는 순환 중에 쌓이고 쌓인 원자 하나 하나의 기록 혹은 정보는 다시 어느 원자와 만나게 됨에 따라 시간이 걸릴 뿐 새로운 형태로 나오게 되어 나아간다.

결국 우주는 나아간다.
나아가지 못하거나 멈추거나 원자핵과 광자의 거리 만큼 유지하지 못하거나 끊임없이 에너지가 생성되지 아니하면 죽는다. 사라진다. 없어진다.



소멸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고, 이롭게 한다. 감정에 대한 문제. 남을 이롭게 한다. 선택적 남을 이롭게 한다.

이렇게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롭게 한다라는 것이 주구장창 이롭게 했더니, 그중에 하나는 뒤로 오더라 이거야. 앞으로 쭉쭉 뻗어 나가 어떤 영향들이 그들에게 미치고 다시 또 받아서 또 달리고 이어달리기가 가능하다는 거지.

그런데 바톤을 터치했는데 거꾸로 온다 이 말이야. 거꾸로 자기가 뛰면 상관없는데 거꾸로 와서 나를 밀치거나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준다. 이것 또한 이롭게 한다 라는 작용으로 봐야 할 거 같애서 얘기를 꺼낸 거지. 앞으로만 나아간다라는 게 과연 앞으로 나아가는 걸까 되짚어본다.

뒤돌아 뛴다. 이것 또한 나아가는 방향에서의 행위들. 살아가는 기록들이 남겨져 있고 안에 해답이 있다. 물론 짧은 지극히 짧은 기간을 정하여 그걸 전부로 보면 안 되겠지만, 잘게 쪼개면 하루만 해도 모든 일들이 일어난다.

자, 소멸에 대한 이야기, 이롭게 한다는 이야기, 짧지만 단 하루만이라도 우리가 알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

생각이 이렇게 널뛰듯이 이리저리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이 생각들이 연결되어 있다. 동떨어져 있지 않다. 잠시 보이는 광경을 마주하는 순간 생각을 하던 스쳐 지나가던 광경들이 좀 더 뚜렷이 보여 엠브리지에 다달은 지금 자연스럽게 나왔겠지.

혹은 서희와 거느렸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고 훈훈한 미소와 함께 좋았다 라고 여긴다.

요즘 본사에 들어와 주변으로부터 많은 얘기를 듣는다.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밝아졌어요.

대뇌이고 혹은 대뇌이는 어떤 흐름이 헤집거나 상처를 주기보다 반성을 하고 받아들이고 비우고 관여치 않는다. 예전처럼 아니면 말고 라기보다는 조금 다르게 했으면 좋겠다 라는 걸 건넨다. 어떤 건네는 거에 대해서는 망설임 가운데 의견을 낸다.

시간의 유무에 상관없이 지금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이 광경은 찰나에 지나지 않은 영원할 것만 같지만 어느새 사그러지고 다시 세워지고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았다라는 흔적이 사진으로 남는다. 그 사진조차 전달하기 위해 쓰일 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미국의 한 대학에서 교수가 말한다.

놀랄 만한 한국의 변신,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걸 알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싸우고 잃지 않는 것은 나아간다라는 거. 그중에 어떤 영웅이 탄생을 하고 어떤 간신의 역할로 인해서 힘들어진 때가 있다 하더라도 다시 반면교사 삼아 다시 끊임없이 나아간다. 지금은 찰나에 불과할 뿐 긴 시간 속에 단지 한순간.

새가 머리 위를 날아갈 때 이제 똥이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미 한번 생각해봤기 때문일까? 그저 찰나에 지나지 않는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싶기 때문일까? 어두컴컴한 가운데 불이 켜진 몇몇의 공간들을 보면 반갑다 이 반가움이 살아있는 한국은 영원하다. See U. 성호.


새가 도망가지 않는다. 비워서 한결 자연스러워져서 일까!
날아간다. 인지하여 바라본 순간. 전에 만난 까치와 두루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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