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간’ 방귀, 다비드상은 맡았을지도
한겨레 2018.8.15.
간은 맛있습니다. 생간도 맛있고 익혀 먹어도 맛있죠. 순대에 딸린 돼지 간은 익숙해 저평가받는 음식. 같은 돼지 간도 테린으로 만들면 고급스러운 느낌. 송아지 간을 스테이크처럼 구운 음식을 정말 맛있게 먹은 적이 있어요. 간에 한번 맛 들리면 왜 계속 간이 먹고 싶을까요? 부드럽고 고소하고, 특별한 향기가 나기 때문이지요.
맛있기로 소문난 간은 거위의 간. 파테로 만든 것이 그 유명한 푸아그라입니다. (오리의 간을 쓰기도 하죠) 그런데 우리는 이제 푸아그라를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없어요. 식재료를 만들 때 동물 학대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간을 고소하게 만든다며 거위를 가둬놓고 억지로 사료를 먹여 지방간을 만든다지요.
그렇다면 고민해봅시다. 푸아그라의 맛을 잊게 할 맛있는 간이 무엇이 있을까요.
거위 대신 물고기는 어떨까요. 먹어본 가운데 인상 깊은 물고기 간은 홍어의 간이었어요. 이른바 ‘홍어애’라 불리는 부분입니다. 삭혀서 탕으로 끓이면 홍어애탕. 홍어 특유의 향기가 엄청나죠. 삼합을 즐겨 먹어도 홍어찜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홍어찜을 좋아해도 홍어애탕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어요. 그런 만큼 한번 맛 들이면 영영 사랑하게 될 음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삭히지 않은 신선한 홍어의 간을 생으로 먹어본 적이 있어요. 전혀 다른 느낌의 음식입니다. 아주 진한 맛의 크림을 떠먹는 것 같았어요. 고소하기로는 먹어본 간 가운데 으뜸을 달렸답니다.
홍어의 간이 너무 마니악하다면 아귀의 간을 추천해 드릴게요. 아귀는 찜으로 많이 먹지요. 바다 깊은 곳에 사는 물고기라서 간도 무척 크다고 합니다. 고급스러운 일식집에서는 살짝 익힌 아귀의 간을 작은 조각으로 잘라 폰스 간장과 실파 고명을 곁들여 내놓기도 하지요. 제법 비싸죠. ‘언제 한번 원 없이 아귀 간을 먹어볼까’ 생각했는데, 몇 해 전에 커다란 접시 가득 아귀 간을 쌓아놓고 먹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먹다 먹다 느끼해서 더 못 먹을 정도로 아귀 간으로 배를 채운 호사스러운 경험이었어요.
물고기의 비린 맛을 원하지 않는다면 가금류인 닭의 간은 어떨지요. “꿩 대신 닭”이 아니라 “거위 대신 닭”.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에는 닭 간 크로스티니라는 요리가 있어요. 닭의 간을 모아 익히고 갈아서 올리브 기름에 버무립니다. 이것을 빵조각 위에 얹어서 먹어요. 원래는 식전에 내어 식욕을 돋우는 전채요리. 그런데 먹다 보면 어찌나 고소한지 이것만 먹고 싶어요.
옛날에 정말로 이것만 먹었다는 사람이 있어요. 피렌체의 미술가 청년 미켈란젤로가 유명한 다비드상을 만들 때의 일. 밥 먹고 작업만 했는데, 그 기간 내내 닭의 간만 먹었다고 합니다.
이 일화를 접하고 생각나는 세 가지. 첫째, 자기 천재성을 자랑하기 바빴던 천하의 미켈란젤로도 작업할 때는 밥을 못 넘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사실. 그 맛있는 피렌체의 고기요리를 먹지 못할 만큼 입맛이 떨어진 것이죠. 둘째, 그런 상황에서도 닭 간은 술술 넘어가는 밥도둑이었다는 사실. 셋째, 천재의 방귀 냄새는 좀 고약하지 않았을까. 한 세대 앞선 피렌체 화가 중에는 달걀을 수십 알씩 삶아 먹었다는 사람도 있으니(폴라이우올로라고도 하고 피에로 디 코시모라고도 합니다), 천재의 주변 사람 노릇(?)이 쾌적하지만은 않았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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