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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할미 이야기

할머니께 바치는 노래

by 큰바위얼굴. 2025. 3. 10.

 

샤워를 한 이후, 고양된 기분에 한껏 젠체 한다. (할미 생각하며 눈물이 맺히는데 대문을 선택하며 무심코 이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잘 있다고 전하고 싶었던게지)



그리고, 그녀를 떠올리며, 그녀와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그녀에게 그리움이 가득 담긴 노래를 부른다. 목이 터져라, 하늘에 닿을세라.  김성호.


.


그에게 바치는 노래

무심코 부르는 노래
할머니, 그때 그 방에서
곰팡이 스민 벽과
이불장 틈 사이로 새어 나오던
햇살이 기억나나요.
숨바꼭질 하던 그 때,
나 찾아봐라 하며 할미를 그렇게도 놀라켰던 일.
이놈아, 간 떨어져 라며 나무라셨지만,
오히려 부모께 혼이 났었죠.
할미 건강을 생각해서 그러면 안돼.

맞아요.
할머니, 
저 할머니가 보고 싶어요.

“어여, 너만 먹어라.”
손바닥에 쥐여 주던 작은 사탕,
다른 누구보다 먼저
나를 찾던 목소리.

기침 소리 너머
가만히 엿듣던
당신의 깊은 숨소리.
그 소리가 자장가처럼
밤을 감싸 안았죠.

할미 냄새에 때론 쾌쾌하다고 여겼어요. 
솔직히, 이제 고백해요.
그래도 할미 냄새가 이젠 그리워요.
이젠 맡을 수가 없어요.

냄새도 기억도 흐릿해져요
그래서, 다시 되살리려 해요.
당신이 내게 해준 만큼에는 못 미치더라도
이렇게 나마 기억하고 만들어서
내곁에 여전히 함께 함을 건제함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나는 장남이라며
모두의 축복을 받았지만
당신의 마음은 아팠나요.
손에 남아있던 주름과
작은 손톱 끝이 아려옵니다.

이제 나는 당신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당신이 기억 속에서 떠날까 봐
잊히지 않도록
바람 소리에도 이름을 부릅니다.

할머니,
나는 여전히 그 방을 살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리운 날에는
곰팡이 내음 가득한
서랍장 앞에 서서
무심코 당신을 부릅니다.


그때 그 방

1980년대 한국의 기와집.
마루를 지나 방으로 들어서면
어둡고도 따뜻한 공기가 감싼다.

방구석에는 오래된 이불장이 놓여 있고
그 위로 손때 묻은 작은 보자기가 포개져 있다.
이불장 문을 열면
할머니가 아끼던 홑이불과
묵은 세월의 냄새가 퍼진다.

방 한쪽에는 서랍장.
나무 손잡이가 닳아 반질반질해진 서랍.
그 속에 숨바꼭질하던 어린 손자의 발소리,
장롱 뒤에 웅크려 숨죽이던 웃음소리,
할머니가 문을 열며 “거기 있냐?”
웃음 섞인 목소리가 맴돈다.

한쪽 벽에는 곰팡이 얼룩이 번진 종이장판.
비 오는 날이면 습기가 배어들고
할머니는 그 앞에 앉아
쓱쓱 장판을 문지르며 기침을 삼켰다.

작은 창문 너머 바람이 스며들고
그 바람 사이로
할머니의 체온이 배인 냄새가 남아 있다.
그 방은 이제 기억 속에서만 머물지만
어쩌다 문득,
그때처럼 바람이 불면
나는 그 방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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