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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이슈/협동조합

“한국적 ‘경쟁’ DNA 극복해야 협동조합 성공”

by 큰바위얼굴. 2014. 8. 19.

“한국적 ‘경쟁’ DNA 극복해야 협동조합 성공”

 

한겨레 2014.8.18

 

 

 

지난달 30일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열린 ‘2회 협동조합 경영 오픈포럼’에서 후안호 마르틴 몬드라곤대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제공

[싱크탱크 광장] 몬드라곤이 본 한국 협동조합 현실

‘몬드라곤’은 세계 협동조합의 살아있는 신화다. 1956년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산골 마을에서 출발한 이 협동조합은 어느덧 8만여 조합원이 출자한 110개에 이르는 협동조합이 연대를 통해 이루는 생태계적 복합체가 되었다. 몬드라곤 그룹은 연매출 30조원으로 스페인 기업 중 7위를 차지하며 지역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산업·금융·유통·교육·연구·서비스 부문에서 활동하는 협동조합 중에는 대학도 있다. 몬드라곤의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1997년 설립된 몬드라곤대학이 바로 그것이다.

몬드라곤대학은 지난 2월 한국의 노동자협동조합인 해피브릿지와 함께 ‘에이치비엠(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를 서울에 만들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60년 노하우와 경영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국에 맞는 경영 방식과 협동조합 모델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몬드라곤대에서 협동조합경영연구소로 파견 나온 이가 후안호 마르틴 교수다. 지난달 30일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열린 ‘2회 협동조합 경영 오픈포럼’(한국협동조합경영자포럼·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대안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 주최)에서 마르틴 교수의 특별강연이 있었다. 지난 반년 해피브릿지 조합원들을 교육하고 한국의 여러 협동조합을 방문하며 현장을 지켜본 그가 한국 협동조합에 의미있는 진단과 조언을 건넸다.

마르틴 교수는 한국 협동조합이 취약한 원인 중 하나로 유사 협동조합의 존재를 지적했다. “한국의 협동조합을 연구한 결과, 형태는 협동조합임에도 운영은 자본주의적인 기업처럼 운영하는 협동조합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농협, 수협, 축협과 같은 대형 협동조합이 협동조합의 법적 틀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협동조합처럼 운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2년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한국 협동조합은 왜곡된 법적 제약으로 인해 농·수·축산 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만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농·수·축산 협동조합과 신용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익에 복무하기보다 정부의 효과적인 경제 통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그는 “이런 유사 협동조합의 존재는 한국에서 협동조합이 발전하는 데 큰 장애물”이며 “한국 협동조합 역사에 노동자 조합원을 포함하는 협동조합이 없었다는 것은 큰 약점”이라고 말했다. 노동자협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주식의 대부분이나 적어도 51% 이상 보유하고 있는 협동조합이다. 노동자가 회사의 주요 지침을 결정하고 본인의 대표인 경영자나 이사회 등을 지명하게 된다.

마르틴 교수는 “노동자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와 책임을 완벽히 이해하고 어떻게 이행할 수 있는지 숙지해야 한다”며 “유사 협동조합이 협동조합에 대해 많은 오해를 부른 탓에 한국 노동자협동조합에 조합원의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협동조합 내부의 교육뿐만 아니라 외부에 대한 홍보도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자본주의적 기업들과 차별화되는 노동자협동조합만의 문화와 가치를 외부로 적극적으로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2회 협동조합 경영 오픈포럼’

형태는 조합, 운영은 일반기업인
농협 등 유사 조직이 발전 걸림돌
조합 주체인 노동자들 교육 중요
협동, 참여, 사회적 책임 가르쳐야
개별 조합은 약하나 뭉치면 강해져
좌파든 우파든 정부와도 협동해야

자본주의적 기업과 노동자협동조합의 차이는 무엇일까? 마르틴 교수는 몬드라곤의 차별화된 가치를 세 가지로 소개했다. 협동, 조합원의 참여, 사회적 책임이다. 사회적 책임은 부를 지역에 잘 분배할 책임, 환경에 대해 책임 등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 중 첫번째 협동에 대해 긴 시간을 할애하며 특별히 강조했다. 그는 “한국 사회를 경험해보니 유럽보다 훨씬 경쟁적이라고 느꼈다”며 “경쟁 위주의 사고방식으로는 협동조합을 활성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한국 협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는 것”이라며 “한국적 디엔에이(DNA)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중들로부터 한국적 디엔에이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박강태 한국협동조합경영자포럼 대표가 보충설명에 나섰다. “한국적 디엔에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시장적이고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 매몰되어 있는지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라며 한 가지 예를 들었다.

마르틴 교수가 해피브릿지 조합원을 교육할 때 모의 역할극을 진행했다. 해피브릿지와 같은 연합회에 소속된 협동조합이 경영난으로 모든 노동자 조합원의 일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일부를 1년 동안 대신 고용해달라고 해피브릿지에 요청해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역할극에 참여한 조합원들의 토론은 1년 동안 부담한 급여를 누구한테 어떻게 보상받을지에 집중되었다. 이어서 자금 지원까지 요청해오는 상황이 주어지자 ‘투자냐 대출이냐’, ‘몇 % 이자로 받을 것이냐’, ‘정상화될 경우 어떻게 회수할 것이냐’ 등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이 모의 역할극을 지켜본 마르틴 교수는 “‘고용연대의 원칙’이 작동하는 몬드라곤에서는 조건 없이 급여를 부담한다”고 말해 해피브릿지 조합원들을 놀라게 했다. 다른 협동조합에 자금을 지원할 때도 어떠한 대가나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파산한 몬드라곤의 ‘파고르 전자’ 조합원은 단 한 명도 해고되지 않았다. 파고르 전자는 한때 몬드라곤 전체 매출의 약 8%를 차지할 만큼 규모가 컸으나 스페인 경제 위기와 가전 시장의 불황으로 경영난에 처했다. 몬드라곤 경영진은 다른 협동조합에 손실을 계속 부담하게 하는 것보다 파고르 전자를 정리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리고, 모든 조합원을 다른 협동조합들로 이동시켰다. 이처럼 경쟁이나 불평등이 아니라 서로 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조직이 협동조합이며, 이런 협동의 원칙은 내부 조합원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더 많은 협동조합이 필요하고, 협동조합끼리 더욱 협동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다다익선’이라는 표현이 스페인에도 있다. 하나의 협동조합은 약하지만 여러 협동조합이 뭉치면 강하다. 당장 한국에 몬드라곤처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지난 4월 출범한 대안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 안에서 협동조합끼리 관계를 강화하고 작은 향상을 이뤄내면 시작할 기회는 있다.”

협동은 정부와의 관계에도 필요하다. 그는 “몬드라곤이 지난 60여년 동안 좌파든 우파든 가리지 않고 지방정부와 협력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 예로 ‘바스크 협동조합법’을 들었다. 마르틴 교수는 “바스크법이 협동조합과 관련된 법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세밀하고 강력한 법일 것이다. 하지만 “바스크법도 한 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의 필요에 기반을 둬 여러 번에 걸쳐 수정되었다”고 설명했다. 협동조합과 지방정부가 긴밀한 유대관계 속에서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법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노동자협동조합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련 법률에 여러 가지 맹점이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라며 “한국의 협동조합 연합체들도 몬드라곤처럼 정부의 색깔과 상관없이 적극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협동조합에 필요한 법률로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르틴 교수는 자신의 강연을 한 문장의 한국어로 압축하며 마무리했다. “우리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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