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수준 후퇴 주식시장, 거품은 빠졌지만…
김학균 |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경향신문 2018.12.02 21:13:00수정 2018.12.02 21:14:26
한국 경제 ‘위기론’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요즘 한국 경제가 어렵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경기가 나쁘지만 위기까지는 아니라는 입장은 요즘의 경기 하강을 통상적 경기 순환의 과정으로 보는 견해이다. 경기는 좋았다, 나빴다 하는 사이클을 그리는 법인데, 통상적인 경기 하강을 지나치게 과장하면 그 때문에 경기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는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이 뒤따른다.
우리가 경험했던 경제위기를 떠올려보면 최근 상황은 과거와 확실히 다르다. 과거 한국 경제에서는 소위 시스템적 리스크가 반복되곤 했다. 시스템적 리스크는 과도하게 부채를 늘렸던 경제주체들이 경기 하강 국면에서 파산하면서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이 손실을 입고, 그 결과로 발생한 금융시장에서의 신용경색이 다시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1990년대 초 경기 하강 국면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부도가 수반됐고, 1997~1998년 외환위기 때는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대거 도산했다. 이후 2000년 전후 시기에는 대우그룹 파산과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있었고, 2003년에는 가계의 과잉소비에서 비롯된 카드사태가 있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국이 위기의 진원지가 아니었고 미국의 시스템 리스크가 한국으로 전이된 경우였다.
시스템적 리스크의 발생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보면 현재 상황은 과거의 위기 국면과는 다르다. 조선업의 부실이 있었고, 요즘은 자동차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만 과거처럼 대출을 해준 은행의 존폐가 거론될 정도는 아니다. 자영업으로 대표되는 내수 부진도 만성질환이지, 특정 시점에 폭발하는 성격의 위험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한국 경제가 직면해 있는 어려움은 경기의 탄성 자체가 현저히 약화됐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과거처럼 신용위기가 수반된 경기의 급격한 침체는 나타나지 않지만, 경기의 확장력도 매우 약해졌다. 이는 통계청에서 매월 발표하는 경기동행지수의 등락폭이 과거보다 크게 축소됐다는 사실로 확인된다. 경기 하강의 골도 깊지 않지만, 경기 확장 사이클에서도 개선의 강도가 강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 경기 순환의 탄성 저하는 주식시장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은 변동성이 큰 시장으로 유명했다. 1980년대 이후 나타났던 7차례 강세장에서 코스피는 평균 238% 상승했고, 이후에 이어진 약세장에서는 평균 51%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오를 때 3.3배 오르고, 떨어질 때는 소위 반토막이 나는 높은 변동성이 한국 증시에 내재된 속성이었다.
그렇지만 요즘의 코스피 움직임은 높은 변동성과는 거리가 멀다. 2012~2016년에는 사상 초유의 장기 박스권 장세가 나타났고, 반도체 호황을 등에 업고 나타났던 2016~2017년의 강세장에서도 코스피는 41% 상승하는 데 그쳤다.
별로 오른 게 없기 때문에 이번 하락 장세에서 코스피가 과거와 같은 심각한 조정세를 나타낼 가능성은 낮다. 이미 2007년 수준으로 후퇴한 코스피에 거품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 증시에 대한 투자 메리트도 매우 약해진 듯해 걱정이다. 주식이라는 자산은 떨어질 리스크가 적다는 점이 중시되기보다는, 높은 수익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주목받을 수 있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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