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양/궁극에의

그래서, 기꺼움에 감사하며 사랑한다.

by 큰바위얼굴. 2024. 7. 11.

하찮다고 여기지 않는다. 하찮다.
연민으로 여긴다. 관조한다.

한가롭다. 바쁘게 살고 싶지는 않다.
평화롭다. 치열하고 싶지는 않다.
궁극에의. 쏠리고 싶지는 않다.

바란다. 바라지 않는다.
원한다. 원하지 않는다.
이룬다. 이루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의미를 찾는다. 없이 내려다본다.
걷는다. 흔적에 반갑다.
멀리 바라본다. 초라해짐에 부끄럽지 않다.

소박한 꿈이 있다.
거대한 우주, 만물이 흘러가메 티끌 만도 못함에 의미와 쫒음, 기대와 이룸, 비교와 감정을 관조한다.



티끌 만도 못함에 억울하지는 않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죽어감에 덧없는 받아들임을 욕심이 아닌 티끌 만도 못한 존재, 있음이 없이 머문다는 것에 허한다.

속이 후련하다.
통한다.
흐름에 격이나 턱이 없다.
내가 아닌 듯, 만물과 둘로 나뉘지 않음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기꺼움에 감사하며 사랑한다.

있게 해 준 님에게, 재회의 기쁨을 안고, 헤어짐이 결코 끝이 아니라 만나기 위한 과정임을, 한 걸음 한 걸음 정처없이 걷는 길에 마주한 이들에게 정이 묻어난다.

외롭다. 외롭지 않다.
하나로, 둘로,
둘이 하나로 통하는 걸 배웠듯,
하나가 둘로, 둘이 다시 하나로 이어짐을 알겠기에 오늘 하루 지나온 면면을 너그럽게 바라본다.

없이 있게 되었으니 감사할 따름이요,
있어 살아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더한 감사요,
이룬 것 보다는 이루려는 면면에 채색이 되는 바탕에 의의를 두게 되니 한 방울의 시작이요, 덧없이 바라본 바탕이 흘러가게 되니 이도저도 아닌 둘이 분리되지 아니한 하나로 받아들인다.

있어 존재케 된 만물이 곧 없이 있게 된 근원으로 이어지고 면면을 맞대고 평행하니 이 또한 순환의 이치라, 우주의 반대편에는 없음이 있다.

팽창하는 우주는 티끌이 모인 집합체일 뿐,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시작이요 끝은 없이 있게 된 그 찰나와 같다.
살아가는 숙명은 이유와 방향에의 의지와 달리 펼쳐진 스토리에 불과하다.

없이 있게 되었다.
이러 함은 선언이요, 이야기의 시작이요, 만물을 구성하고 이루기 위한 움직임일 뿐, 선언과 시작과 만물과 움직임이 언어적 표현이 다를 뿐 하나를 칭한다.

없이 있게 됨을,
있어 살아감을,
다시 없이 있게 됨을,
어떠한 형태나 구성으로 이루어진들 만물이 소생하고 명멸하는 순간 이어지리니.
어쩌면 이 끝에는 없이 있게 된 그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연속일 뿐, 나아가고 나아감에 이룬 기술문명은 바탕을 바꿀 뿐 살아가는 자의 숙명일 뿐, 결코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없이 있게 되어 살아간다 함은,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만물을 구성하기 위함이요, 덧없음이 없이 있게 된 까닭을 알게 하려함이니 놓아버린다거나 비운다거나 허무하다고 여기거나 공과 몽, 망을 칭한들 바뀌는 건 없다.

모두 유리알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고로, 감사하다.

없이 있게 해 준 소생의 시작이요, 순환의 역사요, 만물의 근원에게. 성호.

아멘.

20240709_070313.jpg
2.30MB




관련 글
https://meatmarketing.tistory.com/m/7318

이야기: 소중한 순간, 함께 하는 여정

[prompt] 아래는 [그래서, 기꺼움에 감사하며 사랑한다]라는 글이야. 이 글을 자연스럽고 문맥에 맞게 다듬어줘. 반어법을 사용했는데, 한 단어, 한 문장, 하나의 반어에도 의미를 

meatmarketing.tistory.com

'수양 > 궁극에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식의 한계를 넘어: 진리를 향한 길 +  (0) 2024.07.21
인식의 한계를 넘어: 진리를 향한 길  (0) 2024.07.21
관계론  (0) 2024.05.18
알고 싶은 것인가?  (0) 2024.05.01
그래서 당신의 속도는?  (0) 2024.04.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