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농의 꿈을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곳에서 실현한 사람들을 모아보았다. 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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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농 체험으로 억대소득 일군 60대 농군
[뉴시스, 2012. 10.22]
【무안=뉴시스】송창헌 기자 = 낙농체험 프로그램 운영으로 억대 부농을 일군 농가가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전남 무안군 현경면 청정바닷가에 위치한 '파도목장' 대표 전남(62)씨.
전씨는 깨끗하고 냄새가 나지 않으며, 일조량이 풍부한 송아지 운동장을 확보해 젖소 130여 마리를 기르고 있다.
부인, 딸과 함께 세 가족이 사료주랴, 축사 청소하랴, 새끼소 관찰하랴, 젖짜기까지 하루 24시간이 짧기만 하다.
여느 농장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지만, 전씨 농장에는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한 일'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낙농체험. 올해로 13년째 낙농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전씨의 야심작이기도 하다. 3300㎡ 크기의 축사에 2000㎡에 달하는 널따란 운동장을 조성한 전씨는 이 곳에서 1주일이면 평균 4∼5일 가량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유치원생과 초·중·고생은 물론 가정주부들까지 찾는 이들도 다양하다. 전씨는 이들에게 건초먹이기, 우유먹이기, 치즈만들기, 갯벌달구지 타기 등 다양한 낙농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연간 1만 명의 체험객을 유치하고 있다.
1인당 체험비는 1만원 수준. 낙농진흥회에 1일 1.6t의 우유를 공급, 연간 5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그에게 낙농체험은 1억원 안팎의 농외소득을 가져다 주는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전씨 부부에게 딸(36)은 늘 든든한 버팀목이다.
2005년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란히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바닷가 목장으로 내려온 전설씨. 소가 인생의 전부가 된 그녀는 부모를 대신해 낙농체험의 안내자 역할도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
전씨 가족의 낙농철학은 바로 녹색축산. 그 덕에 파도농장은 최근 전남도로부터 '친환경 녹색축산농장'으로 지정받는 등 축산농가에게 새로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낙농분야의 우수농장 모델로 우뚝 섰다.
전씨는 "제 이름과 딸의 이름을 따 '전남의 전설'이 되는게 바람이지만 수지 타산에 어려움도 많은 게 사실"이라며 "우유로만 승부하는 건 한계가 있는 만큼 기회가 되는대로 치즈공장 등 가공업에 진출하고 싶은 게 남은 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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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 사료로 돼지 길러 ‘맛있다’ 입소문 … 연 매출 12억원
[중앙일보, 2013.4.2]
부농의 꿈 일군 사람들] 김범진 도고양돈 대표
“유황돈은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적고 육질이 고소하며 씹을수록 깊은 맛이 일품이죠.”
이날 오전 11시. 김 대표는 자신이 키우는 돼지들을 보여주며 유황돈의 특징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그는 2년 전부터 일반 돼지가 아닌 유황먹인 돼지를 출하하고 있다. 유황 돼지는 아산시 농업기술센터에서 2년간 지속해온 육성지원사업이다. 도고온천을 중심으로 아산 관광먹거리 개발을 위해 여러 평가를 거쳐 관내 7개 축산농가를 선정했다. 7개 축산농가에는 일반사료가 아닌 법제 유황을 첨가한 ‘유황사료 지원 사업’을 해오고 있는데 도고양돈이 이 중 한 곳으로 지정된 것이다.
“처음 사업제의를 받았을 때는 사실 반신반의 했어요. 사람으로 따지면 식습관이 완전히 바뀌어지는 거니까 불안하기도 했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유황사료의 효과가 나타났어요.”
유황을 먹인 돼지는 일반돼지보다 발육이 더 좋았다. 그러다 보니 각 부위별 활용도도 더 높았다. 면역력 강화에도 효과가 있었다. 김 대표는 돼지들에게 출하하기 전까지 항생제 주사를 거의 놓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 돼지에게는 출하 전까지 보통 2~3회 정도의 항생제 주사를 투여했습니다. 유황 사료를 쓰다 보니 성장속도가 빠르고 건강상태가 좋아지는 것을 느껴 시험 삼아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어요. 오히려 돼지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죠.”
현재 그는 아산지역 10여 개 음식점에 유황돈을 납품하고 있다. 아산시농기센터에서의 꾸준한 홍보와 유황돈을 먹어본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주문량은 계속 급증하고 있다. 또한 농가 인근에는 정육점도 함께 운영하며 부위별 생고기와 2차 가공식품(뒷다리 훈육 등) 판매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농업의 경우 실천하기가 어렵죠. 하지만 시작만 한다면 성공률은 다른 사업보다 훨씬 높아요. 농업은 진정한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성공가도를 달리는 농업인 치고는 아주 앳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그는 지금까지 만나온 부농인들 보다 훨씬 어렸다. 그의 나이는 불과 35세. 김 대표가 어떻게 사업을 시작했는지, 왜 많은 일들 중 농업을 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그의 꿈은 원래 변호사였다. 법학을 전공한 뒤 몇 년간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농업인이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부모님께서 원래 돼지 농가를 오랫동안 운영하셨어요. 근데 늘 일손이 부족해서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 역시 안타까웠죠. 그러던 어느 날 저에게 ‘농장 경영을 맡아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 하셨어요. 고민 끝에 귀농을 하기로 결심했죠.”
그는 부모님의 권유를 받아드려 비교적 이른 나이인 31세에 돼지 농가를 운영하게 됐다. 그는 자신만의 경영방식으로 돼지 농가를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전산시스템을 도입해 타 농가와의 수입을 비교분석하기도 하고 돼지의 건강상태를 꼼꼼히 체크해 추후 매출 목표를 정하기도 했다. 영농후계자들끼리 모임을 갖고 여러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유황돈 생산 역시 그로 인해 시작된 사업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경영을 시작하면서 가장 큰 변화를 준 것은 바로 ‘무창돈사’였다. 기존 축사는 돼지들을 한 우리에 모아 놓고 함께 사육해왔었다. 하지만 무창돈사는 방을 나눠 비슷한 나이의 돼지들만 모아 키우는 것으로 위생적이고 관리가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창문 역시 여러 개로 나눠 환기에도 도움을 줬다. 돼지들이 스트레스 없이 활동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넓은 공간에 적은 수의 돼지를 풀어놓은 ‘배려(?)’ 역시 김 대표의 새로운 경영방식이었다.
“돼지는 원래 활동적인 동물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함께 있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죠. 축사를 운영하며 ‘돼지 역시 사람의 정성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건강해진다’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지금은 손이 많이 가지만 추후 잘 정착되면 오히려 더 편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인내심 갖고 2년 꾸준히 노력하세요”
새로운 경영방식을 도입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는 김 대표. 하지만 그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얘기한다. 최종 목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바로 ‘복지 농장’이 그것이다. 복지 농장은 농업산업이 활발한 유럽에서 쓰이고 있는 경영방식이다. 돼지들을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키운다. 넓은 울타리 안에서 돼지가 자연을 벗삼아 더 건강하게 성장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돼지들의 분뇨를 퇴비로 사용할 수 있어 채소나 과일 등의 밭농사를 함께 할 수 있다고 한다.
“자연순환 농법입니다. 유기질 비료를 사용함으로써 친환경 농업을 할 수 있는 거죠. 분뇨 처리와 동시에 비료 값을 줄일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생산해내는 작물이 로컬푸드로 확대되길 원한다. 로컬푸드는 지역 내 생산된 농산물을 외부로 유출시키지 않고 자급자족하는 방식이기에 중간 유통마진을 없앨 수 있다. 주민들은 신선한 재료의 농산물을 먹을 수 있어 좋고 농가는 소득을 올릴 수 있어 좋다.
“새로운 사업을 시도한다는 것은 언제나 위기가 따르기 마련이죠. 하지만 할 수 있다는 ‘확신’과 ‘도전정신’이 있다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최근 들어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그런 분들께 한 가지만 말씀 드리고 싶어요. 귀농이 부농이 되기까지 인내심을 갖고 2년 정도만 꾸준히 노력하시라고요. 그럼 성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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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항생제 계란으로 억대부농 일군 송홍주씨 부부
[뉴시스, 2009.4.26]
【광주=뉴시스】
유기.무항생제 계란 생산으로 억대 부농을 일군 부부가 있어 화제다.
질병과 판로 부족 등 어려움속에서도 10여년 넘게 유기농만을 고집, 전국 최초로 유기농축산물 인증을 획득한 ‘다란’과 무항생제 인증을 획득한 ‘VIPS란’을 생상한 전남 담양 무정면 영천리 송홍주.박주희씨 부부(한다란농 경영)가 그들.
광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송씨(55)는 순천에서 유정란 생산을 하는 부친 송창무옹(81)의 가업을 잇기 위해 지난 1995년 담양으로 이농해 고서면에서 닭 사육을 시작했다. 질병관리를 잘 하지 못해 폐사가 많아 어려움을 겪었고 친환경 계란을 생산해도 고정적인 판로를 확보하지 못해 헐값으로 파는 설움도 맛봤다.
하지만 우직하게 유기농만을 고집, 유기농 토양에서 자라는 야생 산초와 식수로 검증받은 1급수를 숯으로 여과해 직접 재배한 뽕잎과 녹차잎 등을 숙성 발효시켜 만든 유기농 사료로 닭을 사육했다.
특히 사람과 환경, 가축이 잘 조화될 수 있는 새로운 축산문화를 열어간다는 신념으로 1만㎡에 달하는 넓은 사육장을 확보, 4500여마리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휴식을 취하고 높은 곳에서 잠을 잘 수 있는 횟대, 1m 높이의 깜깜한 장소에 알을 낳을 수 있는 자동난상 등 닭이 살아가는데 최적 여건을 제공해줬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이렇게 키운 닭이 낳은 알이 바로 ‘다란’. 2005년 ‘도울나라 유기인증 코리아’로부터 개인으로는 최초로 유기농축산 인증을 획득했고 이어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마크에도 도전, 2007년 ‘VIPS란’을 인증받았다.
‘다란’과 ‘VIPS란’은 항생제나 유해색소, 산란촉진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안전한 먹거리인데다 비릿 냄새가 없고 향긋하고 고소한 맛을 자랑, 소비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리면서 계란 1개에 450원에 거래돼 일반 계란(150원)에 비해 무려 3배나 비싸다.
특히 유기농 ‘다란’과 무항생제 ‘VIPS란’은 자체 브랜드로 특허청에 상표등록이 돼 있는데다 대형 마트와 생협 등 자체 판매망을 구축, 판로도 안정적이어서 지난해 하루 평균 3000여개씩 총 109만5000여개의 알을 생산, 4억9200여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순소득만 2억7000여만원에 이르는 억대 부농의 반열에 올랐다.
농장에서 생산되는 유기닭도 한 마리당 2만원씩에 거래 돼 일반 토종닭 (1만1000~1만5000원)에 비해 가격이 높다. 송씨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3월 행정안전부로부터 ‘신지식인 상’을 수상한데 이어 올해는 농식품부장관상도 수상했다.
송씨는 “앞으로도 미래가 있고 꿈이 있는 아름다운 농장을 가꿔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 고객의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등 명품 브랜드 육성에 최선을 다해나가겠다”며 “다가올 미래에 아름답고 스토리가 있는 유기생태 관광농원을 가꿔 우리 전통문화 체험농원을 운영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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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범벅’으로 억대 부농의 꿈 이루다. 가공식품 판로 구축 김종철씨
[세계일보, 2012.7.26]
농사꾼 김종철(51)씨는 몇백원짜리 옥수수로 억대 부농을 일군 ‘강소농’이다. 자기만의 아이디어와 도전으로 희망을 뿌리고 가꾼다.
그는 강원도 홍천에서 찰옥수수 농사를 짓는다. 외환위기 여파로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 홍천으로 내려와 부모님에게서 옥수수 농사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초보 농사꾼이 보기엔 수입이 너무 불안정했다. 출하 물량이 몰려 제 값을 못 받는 일이 허다했다.
“한 개 300∼400원 하던 찰옥수수가 50원까지 뚝 떨어져 밭을 갈아엎을 수밖에 없었죠. 살길이 막막했지요.”
찰옥수수로 억대 부농을 일군 김종철씨가 25일 강원도 홍천 자신의 옥수수밭에서 귀농 경험을 털어놓고 있다. |
그는 먹을 게 부족했던 어린 시절의 ‘옥수수 범벅’을 떠올렸다. 강원지역에서 옥수수에 팥과 강낭콩을 등을 활용한 옥수수 범벅이라면 가공도 용이하고 소비자 입맛에도 맞을 것이란 판단이 섰다. 결단을 내린 그는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범벅을 만들기 위해 각종 시식평가회를 따라다니고 재료의 배합 배율을 달리해 수백차례나 실험을 했다.
3년간의 산고 끝에 그는 2008년 범벅 제품 시판에 들어갔다. 특허출원도 냈다. 첫해 판매는 200만원에 그칠 정도로 부진했다. 이듬해에도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기업처럼 홍보를 많이 할 수도 없고,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 판매한 게 전부여서 한계가 있더라고요. 한두 해만 더 해보자라는 오기로 버텼습니다.”
2010년부터 그의 사업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농촌진흥청의 농업인 기술개발사업으로 뽑혀 4000만원의 연구비까지 받았다. 농진청이 추진하는 강소농으로 선정된 것이다. 이 돈으로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용기 등을 개발하면서 사업에도 탄력이 붙었다. 인터넷을 통해 소문이 퍼져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칼로리가 낮고 기능성 식품인 옥수수는 최근 트렌드와도 맞아떨어졌다.
김종철씨가 개발한 ‘옥수수 범벅’(왼쪽)과 ‘수리취떡’. |
김씨는 시래기를 이용해 간편식으로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을 연구 중이다. 조만간 옥수수 체험마을도 열 예정이다. 수도권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관광산업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농업은 어느 산업보다도 비전이 있어요. 땀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잘사는 농촌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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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하다 4개월 전 귀농 … 버섯 재배로 월 1억 매출
[부농의 꿈 일군 사람들] 이진성 유린버섯농가 대표
농사를 시작한지 불과 4개월 만에 억대 매출을 바라보는 농사꾼이 있다. 아산에서 새송이 버섯 농가를 운영하는 이진성(46)대표가 그 주인공.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도심에서 떨어진 아산으로 귀농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그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직 첫 걸음마를 뗀 것뿐입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멀어요. 지금은 새송이 버섯으로 시작했지만 추후 새로운 종균 개발로 버섯 시장의 새 바람을 일으키고 싶습니다.”
지난달 27일 오전 11시. 이 대표는 자신의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현재 아산 배방읍 수철리 4300㎡(1300여 평)의 대지에서 유린버섯농가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농장 바로 앞에는 조그만 저수지가 있고 뒤에는 푸른 산들이 우거져 있었다. 빼어난 경치를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힐링’이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귀농을 시작한 시점은 올해 2월. 아직은 ‘초보 농사꾼’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불과 4개월 만에 억대 매출을 가능케 하는 생산라인을 갖췄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버섯은 월 평균 40t 정도. 월 매출은 1억원 정도다. 근무하는 직원도 5명이나 된다. 현재 그는 자신의 농가에서 생산되는 버섯을 갖고 직접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으로 나가 판매를 하고 있으며 지역 농협과 축협 등의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농사일을 막 시작하는 농사꾼이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락동이 가장 수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부분을 알려주는 주변인들이 있어 도움이 많이 됐죠. 모르는 부분은 세심히 가르쳐주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이웃들 때문에 별 무리 없이 정착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도움을 받을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 목표를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가야죠.”
서울대 출신의 농업인 귀농의 ‘새 바람’
“환경부 연구소에서 근무했을 당시 버섯에 관심이 많아 여러 연구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의 공간에서 버섯만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군요.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싶었어요.”
직장생활에 지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직장생활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싶었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귀농을 결심했고 주말에는 마땅한 대지를 찾기 위해 여러 지역을 둘러봤다. 생각보다 비싼 대지 가격에 고심도 했지만 오래 걸리지 않아 자신의 농가가 위치해있는 배방읍 수철리에 비교적 싼 금액으로 지금의 대지를 구입할 수 있었다.
남들은 귀농을 시작할 때 언제 다시 도시로 돌아갈지 모르니 대지를 임대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라고도 했지만 이 대표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 대지를 구입했으며 그곳에 2300㎡(700여 평)의 버섯재배동(건물)을 지었다. 그가 귀농 정착에 들인 돈은 어림잡아 10억여 원. 그 중 이 대표의 돈은 4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주변인들이 그를 믿고 투자를 해준 것.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빨리 돌아갔지만 귀농을 하는데 있어 그에게 그리 큰 시련은 없었다.
“새송이 버섯을 재배하는 과정이나 방법 등은 미리 알고 있었고 공무원 재직 당시에도 사전조사가 철저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이제 제대로 된 유통망을 갖추면 대지 한 켠에 저만의 연구소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귀농을 한 뒤 이 대표가 찾은 가장 큰 행복은 바로 ‘가족사랑’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의 부인과 두 자녀에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더욱 가정이 화목해졌다고 한다. 현재는 그의 장인어른과 장모도 이곳에 내려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저희 아버지가 얼마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진작에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제가 모시고 살았다면 암을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죠. 저희 장인어른 역시 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죠. 병원에서는 6개월 정도밖에 못사신다고 했는데 이곳에서 거주하면서 암세포가 눈에 띄게 줄어드셨죠. 현재는 거의 완치된 상태라고 해요. 저에게 있어 이곳 아산은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고마운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귀농과 귀촌은 전혀 다른 의미”
최근 정년이 빨라지면서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덩달아 늘고 있는 추세다. 이 대표는 이런 이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남겼다. 바로 사전조사를 통해 목표를 설정한 뒤 귀농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귀농과 귀촌은 전혀 다른 의미라고 힘줘 말했다.
“귀농을 생각한다면 농촌에서 어떤 작물을 재배할 것인지, 수익은 얼마나 되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돈이 목표라면 그만큼 열심히 하고 꾸준히 연구해야죠. 귀촌은 자신이 벌어놓은 돈을 투자해 농촌에서의 행복한 전원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맞는 지역은 어디인지 집은 어떻게 지을 것인지가 우선적으로 생각돼야 합니다.”
그 역시 귀농을 하면서 뚜렷한 목표가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만의 특허 버섯을 개발해 시장으로 내보내고 나아가 우리나라 버섯 시장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는 농업인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잖아요. 저의 존재가 버섯 시장에 큰 도움을 준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죠. 뿐만 아니라 버섯 농가에도 뭔가 큰 활력소를 불어넣는 그런 농사꾼이 되고 싶어요. 저와 같이 은퇴 후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고요. 그러기 위해선 제가 일단 성공가도를 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제 모든 바람이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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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몸으로 부농의 꿈 일군 '억척 여성 농군' 이영숙씨 경북도 생활개선회원 대상 수상 | ||||||||||||||||
[매일신문, 200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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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및 사료 파동 등 숱한 곡절이 많았지만 하면 된다는 긍정적 사고로 열심히 일해 온 덕분인 것 같습니다."
2005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4년간 칠곡군 생활개선회 회장을 역임했던 이영숙(50·칠곡군 가산면)씨가 최근 경상북도로부터 '2009년 생활개선회원 대상'을 수상했다. 성공한 여성 농사꾼으로 불리는 그는 생활기술 보급과 과학적인 영농기술을 선도 실천해 농촌 여성의 지위 향상과 지역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씨가 남편 장금현(54)씨와 함께 짓는 농사는 벼농사 13만2천㎡, 복숭아 등 과수 2천640㎡, 한우 220마리 사육 등이다. 영농 규모가 이렇게 크지만 이들 부부는 상용 인부를 따로 두지 않고 순전히 부부 힘만으로 일을 한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올린 조수입은 4억원이나 된다. 이들 부부가 부농의 꿈을 이루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이 많았다. 28년 전 시집을 와서 시작한 농사 규모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알뜰살뜰한 생활과 억척 같은 정신력으로 차츰 농사 규모를 늘렸다. 한우 역시 1990년 집 마당 한쪽에 작은 우사를 지어 6마리로 시작해 220마리로 늘리기까지 한우 파동과 사료값 파동 등 숱한 시련이 있었지만 한우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과 뚝심으로 위기를 매번 기회로 바꿨다. 친환경 농업에 대한 의지도 누구보다 높아 한우 축사에서 발생하는 분뇨를 생균제 처리로 퇴비를 만들어 논으로 환원, 자연생태를 보전한 것은 물론 땅심을 높여 화학비료 및 농약 사용량을 줄이면서 영농비용 절감 등 1석3조의 효과를 거뒀다. 1992년부터 생활개선회 활동을 해온 이씨는 이 같은 노력 등으로 경북도 내 1만2천여 생활개선회원들 중 1명에게 주어지는 대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씨는 현재 민주평통 자문위원과 경북도 체육협회 이사 등 15개 부문 각종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칠곡지역이 인정한 여성 지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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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2012.10.12]
함양 산양삼 재배 김경회 씨 年 2억 수익 넘어 산양삼 명장 꿈꾼다
- 건축업 부도 뒤 낙향해 농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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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오이 재배로 성공가도 "정성 들인만큼 결실 주렁주렁
[중앙일보, 2013.9.3]
부농의 꿈 일군 사람들 - 임성희 대성농장 대표
천안 병천에서 친환경 오이 재배로 연간 1억5000여 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농사꾼이 있다. 임성희(56) 대성농장 대표가 그 주인공.
임 대표는 4463㎡(1350여 평) 대지, 총 11동의 하우스에서 연간 20여 t의 오이를 생산해내며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29일 대성농장에서 임 대표를 만나 그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글·사진=조영민 기자
“오이는 다른 농산물보다 많은 정성이 필요합니다. 여름에는 매 시간마다 하우스에 물을 틀어서 일정온도를 맞춰줘야 하고 줄기가 많이 뻗어나는 시기인 7월 말부터 8월까지는 순이 한꺼번에 엉기기 때문에 자라는 줄기를 과감하게 제거해줘야 하죠. 그리고 오이는 덩굴식물의 특성상 세워둔 지지대 위로 여러 개의 줄기가 엉겨 붙어요. 이때 줄기가 너무 엉기면 햇빛에 가려져 오이 열매가 잘 자라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줄기도 부실해지기 때문에 세심한 정리가 필요하죠.”
이날 오후 2시. 임 대표는 그의 부인과 함께 오이 수확에 한창이었다. 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도 오이를 수확한 뒤 솎아내고 박스에 차곡차곡 담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병천 오이는 천안의 대표적인 농산물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수확 철이 되면 주문이 밀려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고 임 대표는 말했다.
“바쁘긴 하지만 오이 농사를 지으면서 행복을 느끼죠.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에요. 세심히 관리를 해주고 정성을 쏟는 만큼 좋은 열매를 선물해주기 때문이죠.”
임 대표는 지난 1993년 대전에서 천안으로 귀농했다. 원래 그의 직업은 공작기계제작자였다. 중학교 때부터 기술을 익힌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철강소에 취업했다고 한다. 그리고 서른 살 중반까지 남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자신의 일에만 매진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농사에 눈을 뜨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동생 때문이었다.
“제 동생이 이곳 천안 병천에서 오이 농사를 짓고 있었어요. 주말마다 일손을 거들어주기 위해 동생 농가를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힐링’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죠. 이 때문에 주말만 손꼽아 기다렸어요. 제 손길이 닿은 덩굴이 부쩍 자라 오이라는 열매를 선물해 줄때마다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그때 결심했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오이 농사꾼’이 되겠다고.”
주변인들은 만류했다. 어렸을 때부터 배운 기술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데 굳이 서른 다섯의 젊은 나이에 귀농을 하겠다는 임 대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임 대표는 확고했다. 가족들을 대전에 두고 홀로 천안 병천으로 와 대지를 임대하고 하우스 시설을 꾸렸다. 그리고 오이 재배방법과 기술, 특성 등을 파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모아놨던 돈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대지를 임대한 뒤 소규모로 농사를 시작했죠. 하지만 일손을 거들며 어깨너머로 오이 농사를 배운 것 말고는 지식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여러 기관에서 농사 기술을 배웠죠.”
그는 농사를 시작하며 농사와 관련된 공부도 함께 시작했다. 단국대학교에서 농어민 경영자 코스(3년)를 수료했으며 천안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유기농 농법’ 과정 등도 함께 수료했다. 그가 그동안 취득한 농사 관련 수료증만 해도 50여 장이라고 하니 그의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한다.
“대전에서 몇년간은 출퇴근을 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수입은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끝까지 도전하기로 했죠. 가족들도 이런 저의 열정에 반해 함께 이곳으로 와 일손을 거들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가족에게 고맙고 또 미안하기도 해요.”
시련까지 이겨낸 그의 열정
여러 기관에서 교육을 수료한 그는 남들과는 다른 오이를 생산해내기 위해 유기농법으로 오이를 재배했다. 유기농법은 오이를 재배하는 과정에서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기 때문에 건강에 좋아 소비자들에게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유기농법으로 오이를 생산해내기에는 여러 제약이 따랐다. 오이 덩굴에 병충해가 생겨 계속 농사를 실패하는 시련을 겪었던 것.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곧바로 친환경 농법으로 전환해 오이를 재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기농법으로 오이를 재배하는 농가는 없었어요. 농사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좋지만 계속 실패하니 고집을 꺾고 유기농법보다 한단계 낮은 친환경농법으로 오이를 재배했죠. 실패가 거듭되면 빨리 다른 방법을 찾는 것도 성공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요.”
임 대표에게 운도 따랐다. 병천은 고지가 높은 지역이다 보니 오이를 생산하는데 있어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런 지역적 특성을 파악한 천안시는 2000년도부터 병천 오이를 ‘아우내 오이’라고 이름 붙이고 천안 특산품으로 지정했다. 그간 오이를 생산하던 농가들은 무리를 지어 작목반을 결성해 공동 이익을 창출해냈다. 유통 판로가 넓어지자 병천 지역에 오이 농가는 계속 늘었고 현재는 200여 곳 정도가 오이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흙을 자식 다루 듯 해야 성공할 수 있다’
1993년 귀농 당시 소규모로 농사를 지었던 임 대표는 이제 어엿한 친환경 농사꾼으로 거듭났다. 매출이 증가하면 그 수익으로 대지를 넓혔고 시설 투자도 꾸준히 했다.
이런 임 대표에게 농사를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꼽아 달라고 하니 ‘흙’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흙은 어떤 농사를 짓던지 간에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신에 대지에 있는 흙이 어떤 영양소를 갖고 있는지, 어떤 작물을 재배하면 이 흙에서 잘 자랄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는 1년에 두 번씩 토양정기검사를 빼놓지 않고 실시한다. 농업기술센터에 자신의 대지에 있는 흙을 채취해 검사를 의뢰하고 ‘토양시비처방서’를 받는다고 한다.
그는 최근 귀농에 관심을 두는 이들에게도 뼈 있는 조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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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귀촌해 하수오 재배로 '부농 꿈' 일군 김충식씨
[뉴시스, 2013.4.4]
【보은=뉴시스】김기준 기자 = 무일푼으로 귀촌한 한 임업인이 끈질긴 집념과 노력으로 5년여 만에 억대 부농의 꿈을 이뤄 화제다.
충북 보은군 내북면 두평리에서 고랭지 약초를 재배하는 김충식(51)씨는 2006년 청주에서 무작정 고향인 보은으로 귀촌했다.
고향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다 청주로 이사해 학업을 계속한 김씨는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나 전공을 살리지 않고 사업을 선택했다.
실내장식과 식당 운영 등 여러 가지 일을 해보았지만 실패만 거듭했다.
그는 5년 전 고등학교 축구선수인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살림살이 때문에 점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김씨는 이때 힘든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과감히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했다.
화전이 많은 고향으로 이사를 온 뒤 지역 특성을 살려 고랭지 약초를 재배하기 시작한 그는 한방에서 3대 명약으로 꼽는 하수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수오는 신장 기능을 강화하고, 흰머리를 검게 만들 뿐만 아니라 탈모 방지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찾는 사람들이 많다.
김씨는 귀촌 첫해 두평리 넓지 않은 땅에 하수오를 처음 재배해 수확하는 데 성공했다.
자신감을 갖게 된 김씨는 이 지역 농민 20명과 함께 2010년 하수오 작목반을 구성하고, 산림청과 군에서 개최하는 각종 약초 재배교육에 참여해 재배기술을 체계적으로 익혔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하수오 시범 묘포지로 선정돼 2년간 군으로부터 5000만원의 영농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하수오 재배를 시작한 김씨는 재배면적을 1만6500㎡까지 늘려 지난해 1억원의 소득을 올렸고, 올해도 1억원 이상의 수입을 예상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 4월부터 현대백화점에 약 200㎏의 하수오를 납품한다.
김씨는 요즘 하수오뿐만 아니라 잔대, 삽주 등 여러 가지 약용식물을 시험재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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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판·CCTV로 젖소 관리 "좋은 우유 나올 수밖에 없죠"
[중앙일보, 2013.9.13]
[부농의 꿈 일군 사람들] 방병운 성보농장 대표
방병운 성보농장 대표가 지역 낙농업계의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천안 성남면에서 젖소 70여 마리를 키우며 우유생산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꾸준한 연구와 노력으로 연 평균 매출 3억5000여 만원을 기록하며 이웃 농가의 귀감이 되고 있다. 특히 좋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젖소를 양성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농장 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 젖소의 상태를 꼼꼼히 파악하고 있다. 10일 성보농장에서 그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건강한 젖소에게 좋은 우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전광판은 임신한 젖소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축산 과학원의 도움으로 농가를 운영하던 초기에 설치했어요. 농장 전체를 수시로 살피기 위해 CCTV도 주변 농가 중에서는 제일 먼저 달아놨죠.” 방 대표는 자신의 농장에 설치된 전광판과 CCTV를 가리키며 이렇게 얘기했다.
그는 지난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낙농업에 뛰어들었다. 주변 농가보다 비교적 시작은 늦었지만 특유의 세심함과 성실함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젖소들을 송아지 때부터 정성껏 키우면서 꼼꼼히 관리하기 때문에 꾸준히 질 좋은 우유를 생산해내고 있다. 현재 그가 생산해내는 우유는 모 대기업에 납품되고 있는 상태다.
“다른 농장에 품질 좋은 젖소가 있다고 해서 그 소를 매입한 적은 없습니다. 송아지 때부터 자식처럼 정성껏 길러서 좋은 젖소를 양성해내죠. 자식처럼 길러진 젖소는 당연히 좋은 우유를 생산해냅니다. 이것이 바로 농장을 잘 운영하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죠.”
귀농 후 직접 축사 설치 … 송아지 6마리로 시작
그는 원래 천안의 한 공장에서 선반 부품 등을 깎는 일을 했었다. 특유의 성실함을 인정받아 많은 돈은 아니지만 가정을 꾸려나가는데 부족함 없이 월급을 받으면서 살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점점 각박한 사회생활에 지쳐갔다.
“유능한 젊은이들이 입사하면서 제 입지가 작아지는 것을 느꼈어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그렇게 치열하게 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죠.”
이리저리 타 직종을 알아보던 방 대표는 가까운 농촌으로 눈을 돌렸다. 천안 농업고등학교 출신이었던 그가 마흔 다섯의 나이에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농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부인도 그런 그의 생각을 적극 지지했다. 여느 아내라면 갑자기 잘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귀농에 뛰어들겠다는 남편을 잘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누구보다 그의 성실한 성격을 알기에 단숨에 허락한 것이었다.
“저를 믿고 따라와준다고 하니 농사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저희 어머니께서 홀로 사시면서 논농사를 짓고 있는 이곳 성남면에 젖소 농장을 꾸리기로 했죠.”
그가 낙농업을 선택한 계기는 그 당시 전국에 우유소비량이 늘면서 낙농업 붐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성남면 일대는 지리적으로 소를 키우기 적합했으며 주변에 젖소 농가가 많았던 것도 그가 낙농업을 선택한 이유가 됐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듯 했지만 방 대표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논이었던 땅을 평탄하게 하는 작업부터 축사를 직접 설치하는 것까지 모두 혼자 진행했다. 시설 투자비용은 5000여 만원이 들었다. 모아놓은 돈 중 남은 돈 200여 만원으로 송아지 6마리를 분양 받아 키우면서 성장과정을 꼼꼼히 살폈고 틈만 나면 천안농업기술센터에 들러 농사 방법·기술을 배웠다. 전국 곳곳의 유명한 젖소 농장을 견학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농업도 연구와 꾸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다른 농가를 방문해서는 축사를 어떤 식으로 지었는지도 유심히 살폈죠. 사는 곳이 편해야 젖소들이 잘 자랄 수 있잖아요.”
그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앉으나 서나 ‘어떻게 하면 젖소들을 잘 관리하고 좋은 우유를 생산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했던 방 대표는 축산 과학원도 방문해 전문가들로부터 여러 조언을 들었다. 그리고 한 연구원으로부터 ‘젖소의 번식’에 대한 공동 연구를 제안 받았다. 축산 과학원에서는 농장에 전광판을 설치해 임신한 젖소의 자궁상태, 출산일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지원했다. 젖소의 상태를 꼼꼼히 살필 수 있게 되자 좋은 우유도 생산할 수 있었고 입소문이 퍼져 거래처도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었다.
방 대표가 낙농업으로 한창 승승장구 하던 2002년 정부에서 ‘우유 쿼터제’를 시행했다. 우유 쿼터제는 우유대란으로 수급불안이 야기되면서 도입됐다.
유가공업체가 농가에 납품 받을 수 있는 원유의 양을 정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제도다. 이 때문에 여러 농가들은 생산해내는 우유를 팔 수 없는 경우가 생겨 많은 불만을 초래했었다.
방 대표에게도 피해가 있었다. 대기업과 거래를 했지만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성보농장의 납품량을 줄였던 것. 이 때문에 방 대표는 거래처에 납품하는 우유를 제외하고 남은 우유로 치즈, 요구르트 등의 가공 식품을 만드는 ‘유제품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 해 청천벽력과 같은 사실을 접했다. 방 대표의 아내가 유방암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놓였던 것. 유제품 사업은 잠시 접고 아내의 병간호에만 힘썼다.
“유방암 2기였어요. 아내를 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죠. 낮에는 병간호를 했고 저녁에는 농장으로 와 새벽까지 일했어요. 하루에 거의 3시간밖에 못 잤던 것 같네요.” 다행이 그와 가족들의 노력으로 아내의 상태는 비교적 빠른 시일 내 호전됐고 그 역시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쿼터제를 원망해봤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그는 농가의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수입에 맞게 농가를 운영했다. 또한 축사 내부를 다지고 관리를 철저히 해 더욱 좋은 우유를 생산해내기로 했다. 노력하는 자에 운이 따르듯 거래처에서는 ‘저지방 우유’ ‘고칼슘 우유’등 새로운 우유 브랜드로 사업을 다시 확장하면서 성보농장의 납품량을 예전보다 더 늘렸다. 그가 현재 꾸준히 연 매출 3억원 이상을 기록하는 이유다.
“실망만 하고 남을 탓하다 보면 자연히 도태될 수 밖에 없습니다. 힘든 시기일수록 철저한 관리와 경쟁력 있는 우유 생산만이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어떤 시련이 오던 최선을 다해 제 역할을 충실히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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