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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강의/양돈

삼겹살 유례(추측)

by 큰바위얼굴. 2015. 6. 1.

 

 

금값 삼겹살, 서민 주름살

 

경향신문 2015.5.28

 

 

말이 되는 꼴로 하면 세겹살이 맞는데 왜 ‘삼’겹살이냐,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가 이 부위를 좋아하게 됐느냐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먹는 일에 대한 관심이 요즘처럼 치솟는 때가 따로 없었으니, 임금님 밥상도 아니고 서민들이 먹는 삼겹살에 대한 기원과 풍속사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원래 삼겹살을 좋아했던 개성 사람들이 그쪽의 주산물인 ‘삼(蔘)’을 넣어서 그렇게 불렀다는 설도 돈다.

고기 산업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1970~1980년대 대일 수출 때문이라고 한다. 산과 바다에서 잡고 기른 것도 많이 수출했는데, 그 중 돼지고기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이 경제호황기를 맞으면서 고기 소비가 급속도로 늘었고, 이때 한국과 이해가 맞아떨어져 등심과 안심 부위의 수출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돈가스용으로 이 두 부위를 선호한다. 그런데 삼겹살과 족발 부위가 남더라는 것이다. 족발집이 늘어나고, 삼겹살이 구이용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원래 우리는 돼지갈비를 주로 먹었지 삼겹살을 굽지는 않았다. 과거의 돼지는 사육방식이 달라서 지금처럼 층층이 기름과 살코기가 엇갈려 쌓이는 삼겹살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삼겹살 구이라는 게 존재하기 어려웠다는 말이다. 어쨌든 삼겹살이 시중에서 인기를 끈 것은 1970년대 후반이라는 게 정설이다. 일부 산지 인근의 도시에서 삼겹살을 굽기도 했지만, 다량으로 남는 삼겹살이 도시에 뿌려지면서 값싸게 구워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때 알려진 대로 연료의 보급도 한몫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연탄불 시대에는 얇게 뜬 간장 갈비가 잘 어울렸는데, 삼겹살은 연탄과 상극이었다고 한다. 기름이 불에 떨어지면 석유냄새가 나고 그을려서 먹을 수가 없었다. 기름기 많은 부위이기 때문이다.


그 무렵 프로판가스가 도시에 보급되고, 식당에 기구가 식탁마다 설치되면서 자연스레 삼겹살을 구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철판구이기는 직화로 불이 고기에 닿지 않기 때문에 기름기 많은 부위도 연기가 별로 나지 않게 구울 수 있다. 삼겹살 불판은 외식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관련 제조산업이 확대되고, 고기 굽는 외식이 보편화됐다. 갈비를 굽자면 양념과 숯불 등이 필요한데, 삼겹살은 기술이 필요치 않고 휴대용 부탄가스 조리기구 하나면 오케이이기 때문이다. 솥뚜껑형, 그릴형, 기름배출형 등 신제품이 나왔다. 노회찬씨의 유명한 ‘불판갈이론’ 창조(?)의 배경이 된 건 물론이다.

삼겹살이 다시 금값이라고 한다. 시장은 뉴스에 반응하는데, 금세 더 많은 수입 삼겹살이 쏟아져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국내산이 비싸 좀 덜 먹으면 가격이 조절돼 자연스레 시장에 의해 값이 안정될 수도 있다. 어쨌든 삼겹살 한 점 맘 놓고 굽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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