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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발전연구/유통시각

삼다수에 얽힌 마케팅 시장분석 및 검토방향

by 큰바위얼굴. 2015. 11. 8.

 

 

마케팅의 궁극은 무심코 집는 행위를 만들어내는 것일테다.

 

1. 고속버스를 타려할 때 시간이 많건 많지않건 삼다수를 집는다.

 

2. 만약 삼다수가 내 눈앞에 없다면? 당연히 목이 마르니 다른 걸 산다.

 

3. 삼다수는 눈 앞에만 있으면 절대강자다. 말이 필요없다.

 

4. 삼다수는 3가지가 많은 걸까? 의미가 중요치 않다. 무의식적인 선택이다. 이는 반복적인 이용에서 비롯되었다. 특별히 다른 것보다 나은가? 라고 묻는다면 "글쎄" 하면서도 여전히 삼다수를 집는다. 익숙하기 때문이고 굳이 다른 모험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물을 먹는데 불안할 필요가 뭐 있으며 이미 이용해본 경험에서 비롯된 믿음은 선택의 시간을 줄인다. 그렇다. 난 물을 선택하기 위해 살지 않기 때문에 삼다수를 선택하는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5. 의미를 부여하려고 무척 마음을 쓴다. 삼다수면 돼~ 하는 초심을 잡고자 한다. 이미 굳건한 아성은 물량 증대와 접점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은 각인된 삼다수를 그저 아무 생각없이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럽나? 부럽다. 흔히 우리는 삼다수를 부러워하고 삼다수의 현재 가치를 논한다. 어떻게 시작했지 하고 처음부터 사례로서 뜯어본다. 사실 이미 다 알고있는 사실이면서 미련을 부린다. 물은 사람이 살아갈 때 계속 소요되니까 시장을 키우는게 맞다고 본다.

 

6. 생수시장에서는 삼다수가 최고다. 마트, 휴게소, 편의점 등 삼다수는 물을 사는 곳에는 거의 다 있다. 여기에서 잠깐!

"생수시장에서"와 "물 사는 곳의 거의 다"라는 무심코 던진 말에 주의를 기울이자. 정말 물 장사하는 곳에 삼다수가 다 있을까? 양주 마시러 호브집에 가지 않는 것처럼, 삼다수가 어느 곳에서나 누구나 원할 때 있으리라 기대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더하여, 지하수가 과연 언제까지 이용가능할까? 수도물로 될까? 페트병에 굳이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며 한강물을 모두 정제하겠다 라는 위기의식도 조금 가미할 필요가 있다.

물놀이하고 유난히 몸이 간지럽다거나 자꾸 긁적이는 건 이유있는 반응이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멀었다고 여긴다. 소수만이 발빠르게 그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 소수여야 할 필요가 있다. 뭐 거창하게 대의니 지구환경이니 할 필요도 없다. 경제는 유한한 자원을 얼마나 잘 효용성있게 쓰느냐의 관점이기 때문에 다른 개념, 가령 절대주의(환경파괴는 안돼)가 탄생되지 않는 한 유한한 자원을 다 쓰고 차라리 대안을 찾아 바다속으로 가거나 돔을 짓거나 우주기지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거의 숙명이다. 경제적인 한.

 

7. 가끔 생산회사에 돈을 듬뿍 안겨주고 삼다수를 팔지 않게하면 어찌되는지 궁금해한다. 답은 뻔한데도 불구하고.

 

8. 무의식은 의식의 반복적인 사용에 따른 결과이다.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이 그런 방향을 유지해왔다. 사람들이 편리해하면 할 수록 그 사용시간 만큼이나 널리 애용되고 일확천금을 얻겠지만 삼다수만 못하다. 무의식에 닿지 않는다. 아니, 닿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사람들의 의식이 연결되는 속도가 상품의 반복적인 사용에 따른 무의식에 뿌리내릴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혹할 편의성만 갖춘다면 삼다수조차 아성이 무너질 것이다. 매우 쉽게. 때론 너무 어처구니없게.

 

9. 무의식이 아닌 눈앞에 보이는 또는 내손에 있는, 아니 내가 주문하는, 아니 내가 주문할 때 바로 내앞에 올 수 있는, 그것이 비록 유전자재조합(물질조합= 지금의 완성품 요리)이라고 하더라도 때론 텔레포트(전송= 지금의 택배)라는 방식일지라도 내 앞에 내가 원할 때 올 수만 있다면 내가 가야할 공간들은 의미를 잃을 것이고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시간과 공간에 구애됨이 없는 마치 IT세상같은, 그런데 인프라가 통제불가능한 또는 재조합된 세상에서 구현될 수 있으리라고 보는 (이 말을 쓰는 순간 이미 구현될 가능성을 부여했다. 유기체인 사람의 존재의미처럼, 이름 붙여주기), 멀지않았다. 우리는 공상과학 영화 속에 살고 있다. 원하건 원하지않건.

 

10. 세상은 등가교환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줘야한다. 그런데 시공간적인 경계가 깨진다면 이 또한 의미를 잃는다. 세상의 법칙이 바뀐다. 뭐 내 살아생전 볼 수 있겠냐마는 등가교환조차 깨질 날만 기다리고 있다. 아니, 당연히 깨져야한다. 그래야 조금은 더 넉넉한 삶을 영위하지 않을까. 안 줘도 되니 아웅다웅하지 않겠지.

 

11. 삼다수는 유한하다. 비교하거나 목표가 될 수 없다. 그 유한함 너머를 선점하면 된다.

 

12. 물조차 유한하다. 변화일지 진화일지 뭐든지 유한한 물에 맞춰 조금씩 변해갈 것이다. 이미 코딩되었으니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물이 유한하지 않다고 해야 공식이 깨진다. 과학이 이를 극복해낼까?

 

13. 우주 너머, 과연 기대할 만 한가? 미지인지, 아님 이미 꿈 속에서 가본 확인일런지, 내가 사는 것이 꿈이 아니듯이, 만약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만약 꿈이 새로운 세상이라면, 마치 매트릭스처럼, 아니 꿈의 접속이 현 육체를 매개로 하지않는다면, 이 또한 한계를 정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모든 뭐든 생각의 범주 속에서 꾸려지는 '보여짐'(just one vision)이라면 그 또한 반복이라고 보기 보다는 '끊임없다' 보는게 보다 타당할 것이다.

 

14. 사고의 발견, 생각, 경계, 한정짓는다는 건 안정이나 인정에서 오는 산물이다.

 

15. 사는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물질에 대한 초점은 반대급부의 멘탈에 대한 성장을 원할 것. 성장의 이분. 유한하다는 생에 대한 개념이 끝날때까지 지속될 족쇄. 자기실현과 꿈의 실현의 차이(경계)가 없어진다면 과연 어떤 생이 거듭될까?

 

 

... 2015.11.25일자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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