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양육 ‘진짜 고기맛’의 비밀은 ‘대장균 발효 물질’ 효과
경향신문 2019.1.20.
주목받는 미생물 대사공학
최근 일부 미국 업체들에서 육류에 가깝게 맛을 재현한 배양육이 개발되고 있다. 비밀은 헤모글로빈의 색소 성분인 헴(HEME)이라는 물질에 있다. 철분이 풍부해 악성빈혈 치료에도 사용되는 이 물질을 첨가한 배양육에서는 ‘진짜’ 고기와 비슷한 색과 맛이 난다. 현재 식물 뿌리에서 소량 얻을 수 있는 이 물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진다면 소나 돼지를 고통스럽게 하는 공장식 사육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헤모글로빈의 색소 성분인 ‘헴’
대장균 대사회로를 조작해 생산
배양육에 넣으면 육류 색·맛 구현
카이스트, 대량 생산 가능성 확인
이 물질의 가장 효율적인 생산기술을 개발·보유하고 있는 곳은 바로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이상엽 특훈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다. 지난해 8월 네이처카탈리시스(Nature Catalysis·촉매작용)에 대장균을 발효시켜 환경적·윤리적 문제 없이 다량의 헴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대장균의 대사회로를 조작해 대장균이 헴을 생산한 뒤 세포 바깥으로 분비하도록 만들면서 헴이 대장균 세포 내에 축적되는 기존의 문제를 해결했다.
18일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만난 이상엽 교수는 “미생물을 그냥 배양하면 우리가 원하는 물질을 효과적으로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의 대사회로를 인간이 필요로 하는 물질을 얻을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디자인해서 조작하는 것이 대사공학”이라고 설명했다. 박테리아부터 인간까지 모든 생물을 대상으로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윤리 및 안전성 문제 때문에 미생물만 대상으로 삼고 있다. 대사공학 가운데서도 이 교수가 창시한 시스템대사공학은 기존 대사공학을 다른 학문과 융합시켜 보다 체계적으로 미생물의 대사를 재설계하고, 목표로 삼는 화학물질의 대량생산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학문이다. 시스템대사공학은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떠오르는 10대 기술’로도 선정된 바 있다.
대사공학이 학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인류의 미래를 플라스틱 쓰레기에서 해방시킬 열쇠이기 때문이다. 수억년 동안 많은 에너지가 농축돼 생성되는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서 기반한 플라스틱은 분해 미생물이 없기 때문에 한번 생산되면 수만년, 수십만년 이후에나 사라진다. 하지만 미생물을 통해 만든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다시 미생물을 통해 분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교수가 2016년 네이처바이오테크놀로지에 발표한 고분자 물질 PLGA를 만드는 미생물 사례처럼 환경에 부담 주지 않는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한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 교수의 연구진이 최근 네이처카탈리시스에 발표한 ‘바이오 기반 화학물질 합성 지도’는 대사공학의 발전을 더욱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제자들을 포함한 연구진 10명이 7년에 걸쳐 집대성한 이 지도는 잡초나 폐목재, 옥수숫대 같은 비식용바이오매스를 미생물에 투입함으로써 기존에 석유화학공정을 통해 얻었던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공정을 물질, 단계별로 총정리했다. 이 교수는 “대사공학에서는 미생물들이 거대한 화학공업단지 역할을 한다”며 “화학공장에서 원유를 투입해 제품을 생산하듯 미생물에 바이오매스를 넣어 얻고자 하는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지도에는 각종 화학물질의 전구체(물질대사나 화학반응에서 최종 물질이 되기 전 단계)를 생산하기 위한 미생물의 대사작용과 화학물질에 대한 반응 등 과학적 정보뿐 아니라 각 화학물질의 생산효율, 산업화 현황 등 산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정보들이 담겨 있다. 이번 연구성과의 중요성을 인정한 네이처 측은 이 지도를 대형포스터로 제작해 전 세계에 배포할 예정이다. 관련 학계와 산업계의 연구자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원하는 물질을 만들 수 있는 최적의 합성 경로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포도당을 미생물에 투입해 숙신산을 만들려는 경우 이 지도에 따라 포도당을 PEP(포스포엔올피루브산염)로 변환시킨 뒤 이산화탄소분자 2개를 결합시키는 화학반응을 거쳐 OAA(옥살로아세트산)로 변환하면 된다.
대사공학의 연구성과들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을 살찌우려면 사료에 아미노산 성분이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한다. 기존에는 이 성분을 많이 생산하는 미생물의 후손을 계속해서 추려내는 돌연변이 기법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미생물 발효를 통해 더욱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필수 아미노산을 얻고 있다. 국내 기업 중 대상, CJ제일제당 등이 이 물질을 생산해 해외 수출도 한다. 항말라리아 치료제에 쓰이는 알테미시닌도 마찬가지다. 기존 방식대로 식물에서 이 물질을 추출하려면 나무 수십그루가 필요했지만 효모를 이용하면서 대량생산이 용이해졌다. 현재 프랑스 제약사인 사노피가 이 방식으로 치료제를 만든다.
일상 속에 미생물 공학 성과 많아
분해되는 플라스틱 개발 등 ‘기대’
이 교수의 2006년 성과인 숙신산을 생산하는 세포 역시 대사공학의 산물이다. 이 교수는 한우의 반추위로부터 분리한 균의 대사회로를 조작해 세계 최고 효율로 숙신산을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으며 관련 특허도 100개 이상 취득한 바 있다. 숙신산은 음료수나 조미료에 사용되는 첨가제인 동시에 플라스틱의 원료로 사용되는 물질이다. 숙신산은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우는 세포호흡 과정 가운데 TCA회로의 중간생성물이다. 크렙스회로, 또는 구연산회로라고도 불리는 TCA회로는 세포가 영양분을 흡수해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세포호흡 가운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대사과정이다.
이상엽 교수는 “인류 문명 발전에 필수적인 발명품이었던 플라스틱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원료로 삼는데 이들 자원은 언젠가 바닥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에 먼 미래에는 석유화학 기반의 플라스틱은 제조할 수 없게 된다”며 “미래 후손들이 편리하면서도 친환경적인 플라스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대사공학 연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석유화학산업은 국가기간산업이자 수출 효자 산업이었는데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대사공학을 통한 친환경 화학산업으로 바뀌는 트렌드를 따라잡고, 관련 기술도 꾸준히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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