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한감정 때문만은 아냐’…한국 화장품 중국서 안 팔리는 이유
중앙일보 2023.07.19 07:00
한때 한국 화장품을 대량 사가던 따이궁(代工·보따리상)이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중국 번화가에서 볼 수 있었던 한국 로드샵 브랜드도 대부분 사라졌다. 2019년까지만해도 중국 전역에 600여 곳의 매장이 있었던 이니스프리도 올 상반기 중국 매장을 모두 철수했다. 한류 열풍으로 함께 인기를 얻었던 에뛰드하우스, 헤라, 아이오페, 마몽드도 중국 현지 오프라인 매장을 닫았다.
한류가 더이상 통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한중 관계 냉각기가 길어짐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리오프닝 이후에도 실적 회복을 못하는 이유가 단순히 반한(反韓)감정 때문만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 경제매체 제일재경(第一財經) 산하의 빅데이터 분석 뉴미디어 DT재경(DT財經)은 몇 년 사이 중국 화장품의 수준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며 한국 화장품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바로 경쟁력 있는 중국 토종 브랜드의 출현이다. 화시쯔(花西子·플로라시스), 완메이르지(完美日記, 퍼펙트다이어리), 커라치(珂拉琪·컬러키)등의 중국 메이크업 브랜드가 제품력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브랜딩, 마케팅도 영리하게 해낸 것. 이는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글로벌 시장조사 회사인 유로모니터가 발표한 2022년 중국 메이크업 시장 점유율 상위 20개 브랜드 가운데 중국 브랜드는 6곳, 한국 브랜드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3CE는 로레알그룹에 인수돼 한국 브랜드에서 제외함)
최근 몇 년 사이 한듯 만듯 자연스러운 한국식 투명 메이크업이 아닌 화려함을 부각하는 중국식 메이크업이 틱톡에서 수억 뷰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네티즌의 주목을 끈 것도 주효했다. 21세기 중국 최고의 아웃풋인 틱톡(중국명 더우인)을 통한 C-뷰티 확산이 중국 메이크업 제품을 향한 관심에 불을 붙인 것. 중국식 화장의 화려함 때문인지 동일 인물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변화는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중국 틱톡에서 유행했던 메이크업 쇼츠. 비포애프터 차이가 확연하다. 틱톡 @sunnydwk8m3
중국 틱톡에서 유행했던 메이크업 쇼츠. 비포애프터 차이가 확연하다. 틱톡 @sunnydwk8m3
이 무렵 등장한 화시쯔는 화장품에 중국 전통 문양 등을 새겨 중국식 미학을 가감없이 표출했다. 화시쯔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화장품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품으로 통하기 시작했고 이내 중국 색조·향수 분야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완메이르지는 명품 코스메틱 브랜드의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에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을 맡겨 품질은 높이고 가격은 반 이상 낮춰 인기를 얻었으며, 커라치는 중국의 심미관과 중국 여성의 피부타입에 적합한 가성비 제품을 내놨다.
여기에 화장품 주요 소비층인 중국 Z세대의 애국주의 소비 성향이 더해지며 성장에 가속이 붙었다.
중국 소비자의 화장품 선택 기준이 높아진 것도 한국산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가 외면받는 이유로 꼽힌다. 아이미디어리서치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1년 중국 소비자의 53.9%가 화장품을 구매할 때 제품 성분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스킨케어 브랜드는 이 지점을 공략해 기능성에 초점을 맞춘 제품을 두루 내놨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프로야(珀莱雅), 위노나(薇诺娜), 쿼디(夸迪)다.
프로야는 과학적인 스킨케어를 콘셉트로 핵심 성분, 유효 성분을 연구하는 자사 연구소를 통해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안티에이징 라인인 '더블 안티에이징 세럼'과 '루비 안티링클 퍼밍 에센스'는 프로야 매출 성장의 일등 공신이다. 또 아침에는 비타민C, 저녁에는 비타민A가 함유된 아이크림(早C晚A)으로 미백과 리페어를 동시에 잡아준다는 제품도 소비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위노나(薇诺娜)는 민감성 피부를 연구하는 콘셉트로 유명해진 브랜드다. 민감성 피부 문제를 다량 연구한 연구개발(R&D)팀이 활성 성분을 포함한 제품을 출시했다. 이니스프리가 유채, 녹차, 화산송이 등 제주의 자원을 활용한 것처럼 위노나는 청정 지역인 윈난성의 쇠비름, 청과자 등의 식물 자원을 활용한다. 특히 공식홈페이지에 사용 전후 피부 변화를 비교해 보여줌으로써 소비자들의 신뢰를 보강하고 제품력을 강조하고 있다.
쿼디(夸迪)는 히알루론산을 메인으로 향료와 방부제를 넣지 않는 스킨케어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다. 인공눈물처럼 개별 소분된 무균 용기에 1회분을 넣어 판매한다. 유해 성분 노출을 최소화하려는 소비자들에게는 한 번쯤 써보고 싶은 콘셉트의 상품인 것.
지난해 중국 최대 소비 축제인 광군제에서 위노나는 기초화장품 분야 판매액 2위, 프로야는 6위, 쿼디는 8위를 차지했다. 이밖에도 병풀추출물 마스크팩으로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호평받고 있는 푸얼자(敷爾佳), 여드름 피부 증상 완화에 도움을 주는 스킨케어 브랜드 푸칭(芙清)도 다크호스로 떠오른 화장품 브랜드다.
이렇게 중국 자국 브랜드의 역량이 높아지다보니 수분, 보습 등의 기본 기능에만 치중해 있는 한국의 중저가 스킨케어 브랜드의 경우 경쟁력과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워졌다. 중국 화장품 시장의 판도가 달라진데다 해외 명품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며 한국의 고급 스킨케어 브랜드인 설화수(아모레퍼시픽)와 더 히스토리 오브 후(LG생활건강)마저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보장할 수 없어졌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베트남, 유럽 및 북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으나 매출 실적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여전히 중국 시장이다. 한류 찬스가 끝난 지금, 중국 소비자의 니즈를 철저히 분석해 새로운 판을 짜지 않으면 중국에서 더이상 회복할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른다.
임서영 차이나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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