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판 돈, 전북 고창, 1978년, ⓒ김녕만
농부는 이른 아침부터 장에 갈 채비를 했다. 그동안 가족처럼 지내온 정든 소를 팔러 가는 길은 언제나 그렇듯이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괜히 헛기침하며 중절모까지 찾아 쓰고 돋보기와 우산까지 챙기고도 선뜻 집을 나서지 못한다. 그러나 10리 길은 족히 걸어야 할 판이니 다시 소를 몰고 집에 돌아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나절이 지나지 않아 다행히 제값을 받고 소를 넘겨주었다. 이별을 아는지 슬픈 눈을 하고 서 있는 소를 애써 등지고 소 판 돈을 챙기고 있는 농부. 돈다발을 양말 속에 넣고 대님을 묶으면 은행금고처럼 안전하다. 물론 오늘 같은 날은 막걸리 한 잔도 입에 대지 않고 쏜살같이 귀가해야 한다. 큰아이 대학 등록금을 낼 귀한 돈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70년대에는 대학을 ‘상아탑’이란 말 대신에 ‘우골탑’이라고도 불렀다.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유학 간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농촌에서는 농부도 소도 농사짓느라 등골이 휘었고, 때로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안의 보물인 소를 팔기도 해야 했으니 우골탑이란 말도 과장은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우시장에서 이 농부를 보았을 때 오래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겨우 중학교 2학년인 늦둥이 막내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신 나의 아버지는 막내의 대학 등록금에 쓰라며 암송아지 한 마리를 나의 몫으로 남기셨다. 잘 키워서 어미소가 되면 또 송아지를 낳을 테고, 그렇게 막내의 등록금을 해결해보라는 애틋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집안 형편상 해를 넘기지 못하고 송아지를 팔아버리는 바람에 아버지의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나에게 대학은 상아탑도 우골탑도 아닌, 변변한 무기조차 없이 무조건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가 되었다. 우시장에서 정든 소 고삐를 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린 아들을 두고 가시며 애잔했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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