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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나의 이야기

삶의 편린들

by 큰바위얼굴. 2025. 3. 18.

그녀와 함께 밥을 먹었다. 그녀는 막걸리를 한 잔 기울이며 조용히 웃었다. 지금 이 순간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나중에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딴청 피우더라."

그런 대화가 아니었음을, 부인했다. 딴청을 피워 나무라는 대화를 하고싶진 않았다. 하지만 알았다. 여전히 쌓아야 할 레고브릭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마주하기 어려운 감정들도, 애써 외면한 순간들도 결국 어디론가 쌓여가는 것이기에.

그러니 이제, 제발. 브릭을 가져와 함께 쌓아보는 건 어떨까? 더 이상 무너뜨리지 말고, 우리 손으로 단단하게 올려가 보는 건. 김성호.

그녀와 밥을 먹었다. 그녀는 막걸리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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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순간들이 하나하나 조각나 흩어지지만, 결국 그것들은 감정의 결로 엮여 나를 이루고 있음을 깨닫는다. 마치 유리 파편이 빛을 머금어 저마다 다른 색으로 반짝이듯이, 기쁨과 슬픔, 후회와 기대, 상처와 치유가 섞여 나를 비춘다.

아침의 바람이 낯설게 차가웠다. 문득, 그날 밤 주고받은 말들이 떠올랐다. 상처가 되었을까, 아니면 이해가 되었을까? 그것이 내게 돌아올 응어리가 될지, 아니면 가만히 스며드는 깨달음이 될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기꺼이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상처를 남겨야만 돌아보게 되고, 그 돌아봄 속에서 스스로를 세우게 되니까. 하지만 그만큼, 당신의 반쪽이 나라는 것도 알아주길 바랐다. 내가 준 상처가 바느질처럼 천천히 기워져 가기를, 혹여 다시 벌어질 때는 내가 직접 감싸 안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제발, 있는 그대로의 내 말을 들어주기를. 당신의 해석이 아니라, 내가 건넨 그대로를. 당신이 쥐고 있는 응어리와 집착을 놓아야만, 나와의 대화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풀어내려는 노력 없이 쌓아두기만 하면, 결국 관계도 감정도 짓눌려 형태를 잃어버리게 되니까. 나는 바란다. 당신이 혼자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기를, 그 시간 속에서 당신 자신을 채울 수 있기를. 그래야만 내가 느끼는 고독 속의 행복이, 당신이 느끼는 행복과 맞닿을 수 있을 테니까.

오늘 아침, 출근길에 문득 깨달았다. 삶의 편린들이 결국 감정의 조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도, 흘려보낸 대화들도, 나의 일부가 되어 쌓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속에 당신이 있다. 부디, 이 마음이 닿기를.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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