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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이슈/시장상황

계란찜은 서비스고 수플레는 만원이냐?

by 큰바위얼굴. 2017. 6. 22.




계란찜은 서비스고 수플레는 만원이냐?


경향신문 2017.6.21



“밤은 짧은데 말이 길면 듣기가 너무 지루하다(夜短語長, 聽之太遲).” 정말 할 말이 있는 사람은, 할 말이 분명한 사람은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상대의 중언부언을 참지 못한다. 허생은 할 말이 분명했다. 야심해서 찾아온 나라의 신임을 받는 신하 이완에게 천하를 뒤집어 병자호란의 수치를 씻을 세 가지 방도를 설파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박지원이 남긴 <허생전>의 한 장면이다. 그러나 초야의 인물을 찾아왔다는 이완은 인재를 발탁하고, 특권 세력을 누르고, 해외에서 새 길을 찾자는 허생의 말에 “어렵다(難矣)”는 말만 되풀이한다. 허생은 참지 못하고 칼을 뽑는다. “신임받는다는 신하가 정말 이렇다고? 너 같은 놈은 목을 베어야 해!(信臣固如是乎, 是可斬也)” 


여름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이런 장면이 자주 펼쳐진다. 요리사, 제과사들의 퇴근길 술자리는 강렬하고 함축적이다. 내일 제대로 된 식료를 구입하려면 전철 첫차를 타고 시장에 나가야 한다는 걱정은 잠깐이다. 직업 예의상 하게 마련인 걱정을 마치자마자 요리사는 단번에 막소주 한 잔을 해치운다. 그러고는 허생으로 빙의해 분을 터뜨린다. “솁솁거리지 좀 마라, 천하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동네 요리사 겸 주방장의 대답이 단호하다. “직업으로 요리사가 있지. 그럴 필요가 있는 주방에서 업무를 총괄하는 직위로 주방장이 있지! 언제부터 솁솁이야.”


셰프, 영어로 치프(Chief). 장보기와 맛내기에서 결정권이 있는 요리사, 제과사다. 본격적으로 빙과를 다루는 업장에서 아무나 온도계에 손 못 댄다. 냉동고와 쇼케이스 온도의 미세조정이 또한 제과사의 몫이다. 이쯤 되는 제과사가 셰프다. 서민대중의 한 끼를 감당하고 있는 백반집, 찌갯집에서 장보기와 맛내기는 단연 찬모가 도맡는다. 우리가 어제도 봤고, 오늘도 만날 셰프는, 실은 백반집, 찌갯집, 고깃집 찬모다.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면, 탁자에서 넘겨본 주방 안, 막 찬통 콩나물, 오뎅에 파와 마늘과 깨소금을 듬뿍듬뿍 끼얹는 그분들이야말로 정말 셰프다. 


셰프. 텔레비전과 인터넷과 온갖 매체에서 먹방과 맛집 사냥이 넘치고, 솁솁거리기가 울려 퍼지면서 너도나도 이 말에 감염되었다. 셰프란 말은 한순간에 요리사 또는 제과사, 찬모, 주방장이란 말을 지워버렸다. 동시에 새벽 첫차를 타고 장 보러 가기부터 실제로 하루 12시간은 업장을 지켜야 하는 고된 일의 세계를 가렸다. 주방은 늘 불이 활활 피어 있고, 늘 유증기가 가득하며, 늘 날서고 뾰족하고 달아오를 대로 달아 있는 도구가 가득한 위험한 공간이라는 점을 지우며 대중을 감염시켰다. 그러면서 청소년들 사이엔 어느새 셰프만이 끝내주고 멋있고 ‘힙’한 직업으로까지 떠올랐다. 매체에서 보기만 한 셰프만 남았다. 일은 모른다. 


“계란찜은 서비스고 수플레는 만원이냐!” 동네 요리사의 두 번째 분이 터진다. 누구나 자주 먹기 때문에 쉽게 생각하는 음식이 계란찜이다. 수플레는 계란찜의 프랑스판, 오븐 요리판쯤으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계란찜이든 수플레든 중간은 없다. 서구 요리판의 우스개로, 한 음식점 망하게 하려면 수플레를 주문한 다음 악평을 달면 된다는 소리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재료에 가장 기본적인 조미 방식만의 승부다. 최상의 상태로 내놓은 수플레를, 대중은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뒤집어서, 계란찜도 그런 음식이다. 그가 정말 ‘셰프’라면 눈에서 실핏줄 터질 듯한 집중력으로 계란과 온기와 수분을 상대로 승부를 낸다. 그러나 익숙한 계란찜은 손님들에게 서비스일 뿐이다. 수플레 한 쪽에는 1만원을 붙여도 불평 없는 손님일수록 계란찜은 서비스다. 


“음식을 안다는 손님이 정말 이렇다고?” 요리사는, 제과사는, 찬모는, 또는 주방장은 여기까지 분통을 터뜨릴 뿐이다. 이 세계의 칼은 주방 밖에서 뽑는 게 아니다. 칼은 칼판 위에서만 쓸 수 있다. 짧고 강렬하고 박력 있는 순간은 퇴근길에 소주 한잔하는 그때뿐이다. 


한 직업의 세계를 단박에 이해하기가 만만찮은 노릇임은 또한 어쩔 수 없다고 하겠다. 그야말로 어렵다! 알면서, 다 알면서 굳이 요리사의 한마디를 2017년 한국어 일간지 지면에 남긴다. 100년 뒤에 음식문헌으로 떠오를 것만 같다. “계란찜은 서비스고 수플레는 만원이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6212122015&code=990100#csidx325cfae889908aca526aefcd11c52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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