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길을 나선다.
세상의 부속인 양, 하나하나 들이맞는다. (음성 듣기) https://youtu.be/MriwDgYPPE0
길을 걸어가며 잔상에 떠오르듯이 솔질하는 그가 있기를 기대한다. 어느 새 나타나 어슬렁거리던 그. 자전거를 끌고 가는 그. 가로등 불빛이 밝히는 어둠이 아직은 많은 부분을 차지한 이 길. 어쩌면 이조차 구색을 갖춘 일부가 아닐까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해나와 예티를 데리고, 오늘은 옷을 입혔고, 생각 만큼 춥지 않다.
하나 하나의 면들이 인물과 물건과, 환경, 바탕, 배경,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어우러져서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를 기대하게되고, 마치 그랬던냥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릴 거다.
해나와 예티는 이제 곧 1년이 다 되어 가고, 나는 50을 넘어선 첫 해를 맞이할 지 모르겠다.
이 길을 걸으면서 생각나는 건, 참으로 많은 고려를 했구나! 생각을 했구나. 당초에 어떤 계획과 달라졌을지언정 쭉 쭉 그려 내린 길의 모양은 처음의 의도를 잘 나타냈다고 본다. 얽히고 섥히고, 다시 만나고, 오르고 내리고, 길과 길이 만나 쭉 쭉 뻗어 나간, 그물 모양의 어느 한 점. 그 중에 길 하나. 길 위에서 나는 지금, 이어가고 있다. 뚜벅 뚜벅, 또각 또각.
이정표에서의 갈림길.
다리 밑에서의 반사된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자 했고, 저 멀리 청사의 이동 통로는 어떤 구조물인 양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고, 다리는 금세 보수가 되어 페인트가 마를 날을 기다리고 있다.
길의 왼쪽, 오른쪽. 시야에 들어오고 그리고 이 냄새. "흠.. 아~ 흠.. 아~ 좋다."
나무나무, 불빛 불빛, 저 멀리 불이 켜진 건물들.
"(웃으면서) 또? 아이구야, 해나. 세 번째야. 와우! 어떻게 너무 많이 줬나?"
세 번째다. 어제는 6번의 강의. 그 중의 마지막.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돼지나 키우고 잘 키워내면 돈을 벌고 잘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세상은 변하고, 자기는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이게 아니었네 라고 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이니 최소한 그런 상황에 대해 고려는 하고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그래야만이 그런 징후, 징조, 어떤 상황에서 좀 더 판단을 통한, 어떤 나아가는 걸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한 치 앞도 보지 못한 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라는 한탄 보다는 이럴 때는 이렇게, 그럴 때는 그렇게, 미리 할 요량을 정해 놓으면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라는 거지.
그를 위한 판단, 경영 마인드, 문제 해결, 문제 의식. 그걸 느끼게, 알게 해주고 싶었고, 실무자가 아닌 경영자로서 살아가는 삶의 자세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느끼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한 번 읽어볼 만하지 않겠는가 라고 기관에 제안을 했지.
부속이다. 구색이다.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일종의 톱니바퀴다.
징검나리를 건너면서 예티는 오리를 쫓는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잡으려고 하는 건지, 계속 바라보고. 그런데 오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 위에 떠 있지. 예티의 마음과는 달리, 또 그런 옆에 있는 시쿤둥한 해나의 표정과는 다르게, 예티와 해나와 우리, 그렇게 조화로울 수가 없지.
단연 압권은 오리에 무신경함.
자, 이제 거꾸로 봐보자. 주고자 했던 건, 나를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야. 그저 활용되길 바라는, 혹시나 나 여기 있소 하는 제스춰? 오늘의 시작이 구색, 톱니바퀴, 하나 하나의 역할, 조화로움.
직장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승진을 해서 은퇴을 한다.
이건 그저 묘사된 모습일 뿐. 지금 걷고 있고, 해나가 왼쪽 앞에, 예티가 내 뒤에서 함께 걸어가고 있지. 조금은 환해진 이 길. 평소와 달리, 하나 더 길을 올라선다. 컹 컹 운동기구 소리가 새벽의 적막을 깨뜨렸던 이 자리. 나란히 걷고 있는 그를 피한 거지. 짜임새. 마지막 던져진 메시지는 짜임새.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일을 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거다' 라는 문장. 과거라고 듣지 못했을까? 알지 못했을까? 다만, 달라진 건, 같은 문장이 내게 의미를 부여했다는 거지. 걷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살기 위해 걷는다. 그러면서 뛰면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선후와, 앞뒤와, 전후와, 위 아래를.
출발점에 되돌아온 이 시점에, 이제 일곱이 되었다. (출발점에 이르러서 마주한 사람의 수가 일곱이다)
그럼 이제 구색이 갖추어졌다 할 만한가? 남겨진 숙제가 있는 것 마냥, 어느 새 지팡이를 짚고 어슬렁거리며 마주오는 그와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희끗희끗한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그. 내 모습이겠거니 한다. See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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