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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궁극에의

지향(志向)' 위에 지양(止揚)을 덮어 씌우는 일

by 큰바위얼굴. 2024. 7. 27.

[날 것 그대로 작성]

'지향'은 하고자 하는 것, '지양'은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향(志向)' 은 '~로 향하려는 것', '지양(止揚)' 은 '~를 멈추려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지양(止揚)

제대로 알아보거나,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이미 경험한 사람에게 배웠거나 어울린 것이 아니면서 갑작스런 결정을 내리는 건 지양한다. 가령, 시골생활 혹은 전원생활, 전원주택 또는 전원카페, 캠핑장 등 여럿 모습을 그린다. 알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과연 제대로 알아보았는지, 사전 경험했는지, 이미 경험한 사람에게 배웠는 지, 어느 것 하나 충족된 것이 없이 바라기만 했다. 시골생활이 지닌 치명적인 단점, 이와 대비되는 아파트 생활이 지닌 단점, 시골생활이 아닌 여가와 일 목적에서 전원카페나 캠핑장, 임야를 가꾸는 삶을 그렸다면 그에 따른 소망 못지않게,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 구비할 것, 준비할 역량 외에도 막장 실행할 곳에서의 생활 외에도 위치, 입지,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과연 상품이 팔릴 것인가와 사람이 기꺼이 오겠는가 라는 소통 부분에 이르기까지 사전 준비할 부분과 막상 실행할 곳의 운영 부분, 그리고 바라고 원했던 초심과 이를 통해 바라고 원한 미래를 위해 얼마나 준비했는가!

이 모두를 구비해서 진행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의 준비에는 자격을 요한다. 

가령, '시골생활, 왜?' 라는 질문에 답을 정리하던 중, 크루즈 여행에 가 닿는다. 
https://meatmarketing.tistory.com/7349

 

시골 생활, 왜?

전원주택 : 병원 30분 거리(+ 마트, 학군), 토지 가치(+ 건물 가치하락), 경제적 여유(+ 관리비용), 그리고 커뮤니티 활동 https://youtu.be/oeW0wMqX_FM?si=ecc3GM68aFRiAXG8 볼 줄 알고, 미리 대비할 줄 아니 토지,

meatmarketing.tistory.com

 

지향(志向)

 

지양을 지향한다.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을 지향한다.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을 하고자 한다. 

위 셋의 의미는 각기 달라 보인다. 지양을 지향하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을 지향한다 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을 하고자 한다 라는 건 뭔가 아리송하다. 이처럼 지양과 지향은 가분 관계다.

김제행

 

지양이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라면, 지향은 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양이 경계하고 관리되며 통제해야 하는 부담처럼 느껴지지만, 지향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지향이 무한정 달리고자 하고 앞을 내다보려고 할 수록 상대적인 박탈감과 무력감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성공의 단 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끊기 보다는 더 더를 원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향 또한 지양처럼 다루어야 한다.

지향은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노력을 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하고자 할 수록 미래는 뻔하다. 성공할수록 고달프다. 심지어 갈증조차 강해질 지도 모른다. 하고자 할 수록 원하면 원할수록 바라면 바랄수록 그에 수반된 심성이 갈고닦아지지 못한 만큼 균형을 잃고 치우친 생각과 치우친 신체를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지향은 지양은 아니더라도 지양의 1/2 만큼은 마음가짐을 갈고 닦는데 써야 할 노릇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의 예

바닥이다.

시작이다.

없이 태어났다.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시작되었고, 이때 바닥이었는지 아닌지는 각자의 생각에 달려있다. 

나이 50을 넘어선 순간 때때로 평화로운 가운데 바닥을 치거나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없이 있어도 없는 듯이 어떠한 맛도 멋도 시간도 할 일조차 의미를 잃어버리는 순간을 느낄 때, 그 때 의문이 든다. 지향한 삶에 회의감을 느낀다. 그래서 지양이 중요하구나 느낀다.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 첫번째요, 지향은 두번째, 아니 저 만치 아래 두어도 충분히 제노릇할 것이구나를 깨닫는다.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 없이 태어나 있게 된 상황에 부합한다. 

"여러분, 모두 쓸모없는 일을 하세요." 라며 되새긴 날을 돌이켜 보게 된다.

https://meatmarketing.tistory.com/7113

 

철학이 필요한 순간

삶의 의미를 되찾아보려 한다."새로운 무리의 사람이 나오고, 다시 휩쓸려가면, 또 새로운 무리가 나오는 식으로 인류의 삶은 계속 이어지죠. 그저 이런 과정이 특별한 목적도 이유도 없이 계속

meatmarketing.tistory.com

 

쓸모를 찾아 부던히 달린다. 이제 나이 들어 쓸모없는 일을 하라고 한다. 나아가, 쓸모없음, 쓰잘데 없음, 쓸데없음을 찾아본다. 쓸모라는 건 뭘까 고민해본다. 쓸모라...

갖고자 하는 만큼 실망을 하게 되고, 갖은 만큼 더 한 '원함'을 갖는다. 여기에서 '원함'은 희망, 소망, 성취욕, 욕망, 야망 등으로 불린다. 갖고자 한 인생이였어! 라는 후회를 하게 될까? 나름 잘 살아온 인생이었어! 라는 조용한 돌아감을 맞이할까?

그래서, '지향'을 관리해야 하며 통제해야 하고 엄격히 대해야 한다. 하고자 하는 것의 피상이나 피조물(흔히 성과물, 결과물이라고 칭한다) 따위를 얻기 위한 노력이라기 보다는 그 과정에 의의를 두듯이, 하고자 하는 것이 지향하는 건 과정에서의 마음가짐이라고 본다. 언제나 바닥이요, 시작이며, 없이 있어 하게 되었듯이, 하나를 얻거나 한 명의 이웃을 만나 어울리거나 행하는 과정 모두가 피상이나 피조물에 불과하다면 마음을 다스리고 갈고닦는 바탕으로 여겨야 마땅하다.

살게 된 건 피상이나 피조물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피상이나 피조물이라는 바탕 위에 마음의 흐름에 귀기울이면서 지향 위에 지양을 덮어 씌우는 일이라고 판단된다.

없이 태어나 있게 되어 하게 되었듯이, 가고하다 육신은 쓸모로 두어 되돌아가듯이

언제나 바닥이요, 시작이며, 없이 있어 하게 되었듯이

그래서 살아가는 건가 라고. 김성호.

 

[prompt] 다음 글은 [지향 위에 지양을 덮어 씌우는 일]이란 주제로 작성한 글이야. 문맥을 읽기 편하도록 수정해주고,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코자 하되 읽는 사람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 문체로 작성해줘.

지향 위에 지양을 덮어 씌우는 일

'지향'은 하고자 하는 것을, '지양'은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향(志向)은 '~로 향하려는 것', 지양(止揚)은 '~를 멈추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지양(止揚) 지양은 어떤 일을 제대로 알아보거나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결정을 내리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골 생활이나 전원주택, 전원카페, 캠핑장 등 여러 가지를 그리며 꿈꾸지만, 실제로 그것들을 제대로 알아보았는지, 사전 경험을 했는지, 이미 경험한 사람에게 배웠는지에 대한 검토 없이 막연히 바라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시골 생활의 치명적인 단점과 아파트 생활의 단점을 비교하며, 여가와 일의 목적에서 전원카페나 캠핑장을 운영하려는 소망을 가졌다면, 그에 따른 준비와 계획이 충분히 되어 있어야 한다. 준비는 사전 조사와 경험뿐만 아니라 실제로 실행할 곳에서의 생활, 위치, 입지, 이웃과의 관계, 상품이 팔릴 가능성 등 많은 부분에서 필요하다. 최소한의 준비와 자격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의 실행은 지양해야 한다.

지향(志向) 지양을 지향한다.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을 지향한다.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을 하고자 한다. 이 셋의 의미는 각각 다르다. 지양을 지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을 하고자 한다는 것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이처럼 지양과 지향은 서로 연관된 개념이다.

지양이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라면, 지향은 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양이 경계하고 관리해야 하는 부담처럼 느껴지지만, 지향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지향이 무한정 달리고 앞을 내다보려고 할수록 상대적인 박탈감과 무력감이 수반될 수 있다. 성공의 단맛을 더 원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지향 또한 지양처럼 다루어야 한다. 지향은 단순히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노력이라고 해석해야 마땅하다.

지향과 지양의 균형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미래는 뻔해지고 성공할수록 고달프다. 심지어 갈증조차 강해질 수 있다. 하고자 할수록, 바라면 바랄수록 그에 수반된 마음이 갈고닦이지 않으면 균형을 잃고 치우친 생각과 치우친 신체를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지향은 지양의 절반 정도의 노력으로 마음가짐을 갈고닦는 데 사용해야 한다.

지향은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노력이다. 그리고 하지 않고자 하는 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다룰 때, 우리는 보다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삶의 본질 삶은 피상적인 성과나 결과물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갈고닦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바닥에서 시작하며,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해간다. 지향 위에 지양을 덮어 씌우는 일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과 하지 않고자 하는 것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보다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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