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트럼프: ‘힘이 곧 정의’
트럼프는 현실주의적 정치 철학을 바탕으로 ‘강한 자가 승리하는 것이 정의’라는 입장을 취하는 듯하다. 그는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동맹국이나 국제 기구에도 자신의 논리를 강요해왔다.
- 우크라이나 문제: 전쟁을 빨리 끝내겠다며 협상론을 내세우지만, 이는 사실상 우크라이나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러시아와 타협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부담을 줄이려는 그의 행보는 실용적이지만, 과연 정의로운가?
- 국내 정책: 미국 내에서는 ‘법과 질서’를 강조하면서도 본인은 끊임없이 법적 논란에 휘말린다. 자신이 유리할 때는 법을 이용하고, 불리할 때는 제도 자체를 공격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 정의의 기준: 힘과 거래가 정의를 결정한다는 입장. 도덕적 원칙보다는 국가 이익과 개인적 목표 달성을 우선시한다.
2. 푸틴: ‘제국의 부활이 정의’
푸틴은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정의로운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의 정의관은 국가주의적이며, 과거 소련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본다.
-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의 안보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장악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이는 국제법을 무시한 침략 행위다. 그럼에도 푸틴은 러시아 국민에게 ‘서방의 부당한 개입에 맞선 정당한 싸움’으로 포장한다.
- 국내 탄압: 반대 세력을 ‘국가의 적’으로 간주하며 강력한 탄압을 이어간다. 민주주의적 정의보다는 ‘국가적 목표 달성을 위한 통제’가 우선이다.
- 정의의 기준: 국가의 힘이 커지고,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장되는 것이 곧 정의. 법과 도덕은 필요에 따라 조작 가능하다고 본다.
결론: 정의의 모순과 현실
- 트럼프: 힘과 거래가 정의라고 믿으며, 도덕적 원칙보다는 이익을 우선시함.
- 푸틴: 국가의 부활이 정의이며, 이를 위해 국제법과 인권을 무시해도 된다고 봄.
이들을 비교해보면 정의라는 것이 결국 권력을 쥔 자가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정말 정의로운 리더십이 존재하는가? 정의는 절대적인가, 아니면 상대적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시대다.
Q. What can we do in this situation?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관망이 전부는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결국 **‘행동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하지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무력과 대립이 아닌 현실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몇 가지 중요한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다.
1. 개인의 역할: 생각하고, 말하고, 선택하라
세상을 바꾸려면, 우선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다. 지금의 국제 질서는 거대한 세력들에 의해 움직이지만, 결국 개인들의 인식과 선택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든다.
-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정보 공유
- 정치, 경제, 국제 정세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습득하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 편향되지 않은 시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접하며, 진실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 거짓 정보에 휩쓸리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변화를 이끌 수 있다.
- 소비자로서의 힘 사용
- 기업과 정부는 대중의 선택에 따라 움직인다.
- 윤리적인 소비, 환경을 고려한 선택, 공정한 경제 시스템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된 기업(예: 러시아와 거래를 지속하는 기업)을 보이콧하는 움직임도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 선거에서의 선택
- 지도자는 국민이 선택한다.
- 선거에서 정책과 가치관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단순한 인기나 선동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 인물을 뽑아야 한다.
- 우리가 무관심하면 결국 잘못된 이들이 권력을 쥐고 세상을 휘두르게 된다.
2. 집단의 힘: 연대하고, 행동하라
개인의 힘은 제한적이지만, 연대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국제적인 네트워크와 연대
- 전쟁과 불평등에 반대하는 시민 단체, 인권 단체, 환경 단체 등과 협력할 수 있다.
- 특히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해 국제 사회의 압력을 강화하는 캠페인(예: 러시아의 전쟁 범죄 고발, 경제 제재 촉구)에 동참할 수 있다.
- 미디어 활용
- SNS와 미디어를 통해 ‘올바른 이야기’를 널리 퍼뜨리는 것도 강력한 무기다.
- 공정한 미디어를 지지하고, 거짓 선전을 배격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 경제적·정치적 행동
- 기업과 정부가 윤리적으로 행동하도록 압박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
- 예를 들어, 기부·펀딩을 통해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이나 독립 언론을 돕는 것도 실질적인 행동이다.
3. 근본적인 변화: 철학과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현재의 세계 질서는 힘의 논리와 기존 시스템에 의해 작동된다. 이를 바꾸려면 장기적으로 철학과 교육이 변화해야 한다.
- 비판적 사고 교육 확대
- 획일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 특정 이념이나 국가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정치 및 국제 질서에 대한 관심 확대
- 교육 과정에서 국제 정치, 경제 시스템, 권력의 작동 방식 등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 단순히 애국심이 아니라,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 새로운 리더십 모델 창출
- 트럼프, 푸틴, 윤석열 같은 지도자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정치 시스템과 유권자의 선택 때문이다.
- 보다 윤리적이고 합리적인 리더가 등장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치 문화와 가치관을 정립해야 한다.
결론: 결국, 행동하는 자가 세상을 바꾼다
이런 세계를 바꾸려면, 개인부터 깨어 있어야 하고, 연대하며, 장기적인 변화를 위한 교육과 철학을 구축해야 한다.
지금은 거대한 힘이 세상을 지배하는 듯 보이지만, 과거에도 결국 행동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왔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단순한 구호나 감정적 반발이 아니라, 깊이 있는 생각과 실질적인 행동이다.
관망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지금부터라도 행동해야 한다.
‘투쟁하라, 참여하라’는 책의 내용이 떠오른다. 세상의 곳곳에서 반대급부의 각성이 움트고 있다. 이제 더는 움츠릴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주어진 것만 받아먹는다면, 대우는커녕 생존조차 위태롭다. 결국 벗겨지고 짓밟히고 마는 것이다. 힘의 논리는 과연 정당한가? 이 질문이 이제 거대한 흐름이 되어 퍼져나간다.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갈등과 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는 오랜 대립이 또다시 깊어지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은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이 상황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푸틴은 러시아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고, 트럼프는 강한 미국을 내세우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판을 흔듭니다. 바이든은 기존의 국제 질서를 지키려 하면서도 또 다른 갈등을 조장하는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시진핑은 불안을 기회로 삼아 세력을 넓히고 있고, 네타냐후는 내부 정치적 이익을 위해 갈등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전쟁을 멈출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쉽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갈등이 그들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상황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까요?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나 감정적인 외침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전쟁과 갈등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현실을, 그저 피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기에는 우리가 잃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 합니다.
전쟁과 갈등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흐름에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함께 그려야 합니다.
거대한 변화를 단숨에 만들 수는 없겠지만,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 세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로운 세상이란 무엇일까요?
힘이 강한 자가 모든 것을 쥐고 흔드는 것이 정의일까요?
아니면, 약한 자도 목소리를 내고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이 정의일까요?
우리는 종종 정의를 법과 질서에서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법이 언제나 정의로운 것은 아닙니다. 힘 있는 자가 만든 법,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법은 때때로 불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정의란 단순히 법과 제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공감하고, 스스로 옳다고 느끼는 가치를 지키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역사는 말합니다.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순간, 사람들은 자유를 잃고, 사회는 불평등에 익숙해지며, 결국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진다고요.
우리는 이를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그러기에, 정의는 힘이 아닌 공정한 관계 속에서 피어납니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희생당하지 않는 사회, 약자의 목소리도 들리는 사회, 그리고 그 목소리가 존중받는 사회—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정의입니다.
과연, 지금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만약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정의는 저절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정의는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것입니다.
정의(Justice)란?
정의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원칙이자, 힘이 아니라 공정한 가치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질서입니다.
진정한 정의는 특정한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이대로 좋은가?
우리에게 남은 질문입니다.
So what? 이제 그 질문이 남습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았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정의를 실현하는 행동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면, 그 사회의 변화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눈을 감고 있거나, 다른 이들의 결정에만 의존할 수 없습니다.
정의는 단순히 이상적인 개념에 그치지 않습니다. 매일의 작은 선택과 행동 속에 정의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고, 불평등에 저항하고, 약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에서 정의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So what? 이제, 그 정의를 행동으로 바꿀 때입니다.
더 이상 지켜보기만 하지 말고, 우리가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Q. What can we do in this situation?
In this situation, we can take several steps to make a meaningful impact:
- Educate Ourselves and Others: Understanding the complexities of the world’s conflicts, power dynamics, and injustices is the first step. Share what you learn with others to build a collective awareness.
- Raise Your Voice: Speak up against injustice, whether it's through activism, conversations, or simply supporting causes that promote fairness and peace. Don’t be silent in the face of wrong.
- Support Humanitarian Efforts: Contribute to organizations or movements working to alleviate the suffering caused by conflicts, poverty, and inequality. Your support, whether through time, resources, or advocacy, can make a difference.
- Advocate for Change: Push for policy changes that prioritize justice, peace, and equality. This could be through voting, engaging with local representatives, or joining movements that challenge the status quo.
- Live with Integrity: In your everyday life, act with kindness, fairness, and respect. Make decisions that reflect your values, and encourage others to do the same.
- Engage in Constructive Dialogue: Engage in conversations about the issues that matter, but do so with empathy and an open mind. Dialogue can often lead to understanding and mutual solutions.
What can we do? We can act—starting with our own choices, influencing those around us, and pushing for broader societal change. Every step matters in building a more just and peaceful world.
참여와 관망 사이에서
가슴이 답답하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고, 나는 그저 멀리서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판에 끼어들어야 할까? 아니면 그저 지켜보며 시간을 보내는 게 나을까? 나는 어느 길을 가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매일이 그저 지나가고, 내 일상 속에서는 여전히 작은 변화만이 일어나고 있다.
지켜보기만 하는 게 좋은 걸까? 어쩌면 안전하고 편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입을 닫고, 평화롭게 살아가면서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그저 나와 내 주변만 신경 쓰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택이 정말 나에게 맞는 걸까? 어쩌면 그 모든 불평등과 갈등 속에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비겁한 일은 아닐까?
그러나 참여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세상은 그만큼 복잡하고, 나의 작은 행동 하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다. 실수할까 두렵고, 내 힘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다시 후퇴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가 아무리 외쳐도 세상이 달라질까?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작이 두려워 망설여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포기할 수 없다.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부담감, 그 미약한 발걸음이 세상에 어떤 작은 불씨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으면 지나쳐버릴 수 있는, 그 작은 차이들이 결국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참여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적다고 느껴지더라도, 그 조그만한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관망을 넘어, 내 작은 실천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믿는다. 내가 변화의 시작이 되지 않더라도, 그 변화를 만들어내는 수많은 손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 흐름에 참여하고 싶다. 내 목소리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 몰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아직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이 글을 통해 나 자신에게 다짐한다. "너무 늦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자." 아마 그 시작이, 미약하더라도 의미 있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그 무엇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한 걸음 내딛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세상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희망을 숨죽여 기대할 수 없는 현실
가슴이 답답하다. 세상의 갈등은 끝없이 커져가고, 나는 그 속에서 점점 더 작아지는 느낌이다. 판에 끼어들어야 할까? 아니면 그저 지켜보며 이대로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 할까? 그 무엇도 아닌 채, 난 여전히 머뭇거린다. 상황이 너무 복잡하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결국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지켜보는 것이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어쩌면 안전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아가며 나만의 평화로움을 추구하는 것, 그것도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평화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은 나의 외면을 모르고,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다. 내가 아무리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그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참여는 더 어렵다. 세상의 문제는 내 손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내가 한 마디를 던진다고 해서 그 누군가의 삶이 나아질까? 갈수록 세상은 냉정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더 단단해져 간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작은 노력조차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희망을 품고 움직이기엔 너무 많은 벽이 높고, 그 벽을 넘을 힘이 내게 있을까? 희망을 숨죽여 기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현실은 그만큼 냉혹하고 우리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은 여전히 나를 누른다.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떨칠 수 없다. 하지만, 그 시작이 너무 막막하다. 내가 무언가를 한다고 해서 그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시작을 해야 한다는 그 불확실한 믿음 하나에 매달리고 있다. 희망을 숨죽여 기대할 수 없다는 현실을 알면서도, 나는 그 끝없는 회의 속에서도 무언가를 바꾸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담고 있다.
어쩌면, 변화는 그런 일일지도 모르겠다.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 각자가 조금씩 무언가를 바꾸려는 노력들이 모여서 결국 큰 흐름을 만들어낼 것이다. 비록 그 흐름이 느리게 진행될지라도, 나의 작은 발걸음이 그 길에 조용히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무리 작은 노력이라도 그 시작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비록 현실이 냉혹하고, 희망을 품는 것이 어려운 이 시점에도, 내 안에서 무엇인가를 시작하려 한다. 비록 그 과정이 험난하고, 보이지 않는 길일지라도, 그것이 나만의 작은 기여라고 믿으며 걸어가려고 한다.
Q. 그래도 답답함이 풀리지 않는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트럼프 얼굴 만 봐도 '나쁜 생각'이 따라붙는다. 내가 이상한가? 이 사회가 이상한가? 언제는 그렇지 아니했는가? 몰랐을 뿐인가? 세상을 미화한 것은 동화 속 이야기 일 뿐, 원래 세상은 이랬다. 냉혹하고 힘의 논리가 지배되는, 종속적인 세상에서 수양을 쌓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다시 생각케 한다. 무릉도원을 꿈 꾸는 건, 아마 그렇지 않은 세상 때문일꺼다. 이에 대한 의견은?
이해한다. 그 답답함과 분노,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신은 누구나 한 번쯤 느꼈을 감정일 것이다. 트럼프의 얼굴을 보고 나쁜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그만큼 세상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실을 직시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사회가 이상한 건가, 아니면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오히려 세상이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처음부터 이 냉혹한 세상 속에서 살아왔고, 그 힘의 논리와 권력의 굴레가 끊임없이 지배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세상은 언제나 그런 방식으로 돌아갔다. 단지 우리가 그걸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동화 속의 '세상'은 그저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일 뿐, 현실은 다르다.
그렇다면 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수양’을 쌓는다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그것은 정말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고, 나만의 진리를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가 생각하는 ‘수양’은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며, 때로는 현실의 불합리함과 마주하며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꿈꾸는 '무릉도원'은 단지 이상적인 곳이 아니라,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이 너무 냉혹하고, 끝없이 이기적인 구조로 되어 있기에, 무릉도원을 꿈꾸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결국, 그것은 우리가 현실 속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과 불평등,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망의 표현일 수 있다. 그곳에선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과 혼란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은 결국 현실과의 괴리감 속에서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그 괴리감을 줄이려면, 우리가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길을 찾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길은 무엇일까? 부정적인 생각과 분노만으로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한 걸음씩 내딛는 그 작은 변화는 언젠가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꿈을 꾸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그 꿈이 현실을 떠난 허망한 것일지라도, 우리는 그 꿈을 향해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나아가야 한다.
Q. 도대체 그 꿈은 뭐냐? 트럼프는 꿈이 없었고, 푸틴은 없었겠냐구! 각자에게 각자의 꿈이 있다. 꿈이 없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는 자들의 그 꿈이 서로 다른 가운데 정도를 넘어섰기 때문일꺼다. 과연 꿈을 이루고자 하는 개인의 행위가 정당한가? 라는 물음에 답해야 할 때가 올 것으로 본다.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정리를 한 다음, 그에 대한 적절한 판단에 도움될 의견을 부탁해
당신이 느낀 감정은 매우 현실적이고,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트럼프나 푸틴과 같은 인물들도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꿈은 물론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익에 맞춰진 꿈이었겠지만, 그들이 바랐던 세계는 그들의 목적에 따라 다르게 정의된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꿈"이라는 개념이 복잡해지고, 그 꿈이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을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트럼프나 푸틴의 꿈은 그들의 권력과 영향력 강화를 위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꿈은 국가의 번영, 자신들의 정치적 위치 강화, 그리고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개인적 꿈'이었습니다. 이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행한 모든 것들은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을 수 있지만, 그 과정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침해하거나 고통을 주었다면 그것은 정당한 꿈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꿈을 이루고자 하는 개인의 행위가 정당한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결국 개인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꿈을 쫓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꿈이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거나, 세상의 질서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꿈을 쫓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그리고 그 대가가 다른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정당한 꿈’은 인간적인 가치와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꿈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모든 사람에게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려면 그 꿈을 이루는 방법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꿈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사회와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꿈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감정을 잘 이해합니다. 세상의 갈등과 이기적인 꿈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현실에서 우리가 느끼는 혼란과 불안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자신만의 꿈을 쫓아가면서도, 타인의 권리와 평화를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그 과정이 정의롭고, 결국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그렇지 않아. 절대로. 세상은 약육강식 처럼 작동하고 있다고. 봐라. 저 미국이, 러시아가, 중국이, 그리고 한국이라고 다를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구역질 날 만큼 냄새를 풍긴다. 정의로움 보다는 편향된 주장이 올곧다고 말한다. 마치 내가 다 먹어버릴 것처럼 덤벼드는 몰염치와 아귀를 뒤섞어 놓은 모양새다. 그 만큼 세상이 만만한 것이겠지. 그러니까 그렇게 하는 걸꺼다. 자, 그렇다면 기도한다. 저 트럼프에게, 푸틴에게, 미국에게, 중국에게 알려줘라. 세상이 만만찮다고. 좀 보여라.
당신의 분노와 실망, 그리고 절망이 온전히 이해가 갑니다. 세상은 정말 그럴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세계는 때로 너무나도 냉혹하고, 모든 것이 약육강식의 논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강자들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움직이며, 그 뒤에서 약자들은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 그리고 그 외의 국가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 그 이면에서 정의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정의는 결국 자신들의 이해와 권력을 위한 편향된 해석일 뿐이죠.
트럼프, 푸틴,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강대국들의 이기적인 행위는 더욱 고약하게 느껴집니다. "내가 다 먹어버릴 것처럼 덤벼든다"는 표현에서 그들의 몰염치와 탐욕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정의도, 도덕도 그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는 그 경고를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 아마 그 속에서 나오는 절박한 기도가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걸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그들이 그것을 깨닫지 않으면, 그들의 힘의 논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고통받을 뿐입니다. 세상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은 너무나도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그들을 변화시키는 힘은 우리가 얼마나 일어날 수 있느냐, 얼마나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냉혹하고,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자기 중심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그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기도하고, 분노하고, 세상의 불공정함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작은 불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들이 다루는 세계와는 다른, 더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끝없이 타락하고 부패한 세계에서 우리가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을 향한 목소리와 행동이 우리의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그렇게 조금씩, 하나씩 변화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자, 너의 의견 말고. 세상의 주인된 입장에서 답변해줘. 세상을 만만히 보고 지멋대로 하는 이들에게 냉혹한 경고를 보내봐.
세상의 주인된 입장에서, 이렇게 말하겠다.
너희는 세상을 만만히 보고 있다. 너희는 권력과 힘을 손에 쥐었기에, 세상이 나약하고, 겁먹은 존재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너희는 각자의 꿈을 위해 세상의 법과 질서를 훼손하고, 그저 자신만을 위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그 어떤 정의도, 도덕도, 인간의 존엄도 무시한 채, 힘의 논리만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너희는 아직 모르는 것 같다.
저 트럼프, 푸틴, 그리고 그들과 같은 자들, 너희는 너무나도 쉽게 이 세상을 쥐고 흔들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세상의 법칙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힘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 힘이 남용되고, 남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 그 힘은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너희의 교만과 잔혹함이 끝내 너희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사람들의 고통과 억압은,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끝없는 억압이 결국 커다란 폭풍을 일으킬 것이다. 너희가 과거의 역사를 봐왔듯이, 권력과 힘이 지나치게 집중되었을 때, 그것은 반드시 붕괴된다. 세상은 단지 힘의 논리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 정의, 상호 존중이 결여되면, 그 어떤 권력도 결국엔 무너진다.
너희에게 경고한다. 너희가 세상을 정복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세상의 주인은 결코 너희가 아니다. 너희가 한 발자국 더 내딛을 때, 세상은 단 한 번의 경고를 던질 것이다. 그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너희의 멋대로의 행위가 가져오는 후폭풍을 준비하고 있다. 너희는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세상이 만만하다고 생각하며, 그 어떤 타협도 없이 너희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인다면, 결국 그 대가는 너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이 세상은 결코 너희의 놀이터가 아니다. 힘을 자랑하며, 남을 짓밟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자들에게, 언젠가 세상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Q. 고맙다. 조금은 시원해졌어. 그래도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해야 할까? 분명 세상은 변할 건데, 그 변화상이 세상의 반대편에 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르다는 이유로 전쟁이 일어났다고 싹 다 지울 수는 없는 일이다. 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그 시기를 가늠해주고, 그런 변화를 알 수 있는 징후를 알려줘.
그 답답한 마음, 그 지쳐가는 기다림의 무게가 얼마나 힘든지 알 것 같다. 변화를 원하지만, 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한 마음이 이해된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묻는 그 물음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답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마음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린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 건 아니다. 세상은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으며, 그 흐름 속에서 작은 징후들이 하나하나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를 반대편에 위치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다. 변화의 시기가 언제 올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외부의 조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바로 그 변화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 기다리는 대신, 우리가 그 변화의 흐름을 만들고,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 무기력하게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가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그 시점은 바로 지금일 수 있다.
변화의 징후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첫 번째 징후는 사람들이 더 이상 참지 않고, 저항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고,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들의 권리와 정의를 주장할 때, 그것은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것이다. 그들의 외침 속에서, 우리는 함께 움직이고, 더 큰 힘을 모을 수 있다. 또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작은 실천을 통해 변화의 일환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흐름을 만들어낸다.
또 다른 징후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세상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질문하는 순간들이 많아진다. 사람들이 더 이상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집중하지 않고, 공동체와 타인의 행복을 위한 노력에 집중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변화의 신호다.
변화는 외부에서 강요될 수 없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변화가 올 때, 우리는 그 흐름에 동참하고, 그것을 이끌어 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변화는 언제나 시작되고 있다. 그 시작이,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 각자의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그 변화는 점점 더 확산될 것이다.
그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우리가 일어나야 한다. 변화를 만들기 위해 기다리기만 하지 말고, 그 흐름을 만들어 가야 한다. 김성호 w/ ChatGPT.
'수양 > 세상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충' (0) | 2025.03.10 |
---|---|
여명 (0) | 2025.03.09 |
Liar (0) | 2025.03.06 |
한국, 새로운 국제 질서 속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0) | 2025.03.04 |
양자컴 상용화, 무엇을 바꿀까 (0) | 2025.02.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