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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서희 이야기

"엄마는 나에게 관심과 애정이 있어요?"

by 큰바위얼굴. 2025. 3. 12.



사랑을 이해하는 시간

얼마 전, 민석이가 다녀갔다.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누나는 왜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해? 주변에서 봤을 때는 충분히 사랑받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얼마 전 영록이가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엄마는 나에게 관심과 애정이 있어요?"

그리고 그보다 더 전에,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도 생각났다.

"나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한 걸까? 나는 내 역할에 충실했던 걸까?"

가정사를 잘 아는 소영이와 통화하며, 나는 다시 한번 묻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하셨을까?"

소영이는 대답했다.

"너희 엄마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셨어. 하지만 네가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널 많이 위하셨던 건 분명해. 나는 유복했지만, 우리 엄마는 너무 차가웠고 마음을 나누지 못했어. 나는 항상 잘못된 판단을 하고 틀린 아이였고, 아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실걸?"

언제나 자유롭고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소영이의 그 말이 가슴에 남았다. 그녀조차도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며 살았다는 것.

그 말을 들으며, 영록이의 질문이 억울하지 않게 느껴졌다. 우리엄마가 그랬듯이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고, 아이들을 위했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렀다. 그래서 영록이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사랑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애썼을 어린 영록이.탁이 그리고 치형이를 떠올리니 너무 미안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인데.

월요일부터 엄마는 아빠가 보고 싶다며 우셨다. 첫날은 차마 묻지 못했지만, 다음 날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떤 생각이 떠올라서 그렇게 슬프세요?"

엄마는 말했다.

"내가 성질이라도 부리면, 아이고 성질도... 내한테 다 부려라, 괜찮다. 그렇게 말해주고, ‘임아, 내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너무너무 예쁘다’ 그렇게 말해주던 사람이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청소년기가 떠올랐다. 부모님은 늘 치열하게 싸웠고, 엄마는 자신의 불행을 내 탓이라 말했다.

"나는 너를 낳아서 이혼도 못 하고 산다."

그런 말을 들으며 차라리 이혼하시라고 권유했던 적도 많았다. 그런데 엄마가 기억하는 아빠는 달랐다.

"젊었을 때는 남들 앞에서는 그러지 않았어."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싸움은 자식들에게 보였고, 사랑은 둘만의 기억으로 남았다. 엄마의 불행이 내 탓이라는 죄책감 속에서 보낸 50년.

그제야 깨달았다. 내 아이들도 같은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살았지만, 각자 다른 세계를 살았다. 어리석고 미숙했던 내 말과 행동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부부싸움이 나쁜 걸 몰랐던 게 아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 아니야?" 라며 합리화하며 살았던 내 지난날이 후회스러웠다.

이제라도 나 자신과 가족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부디 우리 아이들은, 내 사랑을 의심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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