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經濟學)은 재화나 용역의 생산과 분배, 그리고 소비와 같은 경제현상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의 한 분야이다. 고대 헬라어 οἰκονομία에서 유래한다.[1]에서 유래한다. 경제학은 복잡한 경제 활동에서 특정한 규칙성을 발견하여 경제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탐구하고 예측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경제학자들은 다양한 전제와 분석 대상을 설정한다. 그중에서도 현대 경제학에서의 주요 연구 대상은 세계의 경제 상태, 개개인과 기업이 노동, 소비, 투자, 고용, 가격 등을 어떻게 결정하는 지에 대한 것이다. 또한 경기의 침체와 호황, 개인이나 국가간에 나타나는 부의 불균형과 같은 것들도 경제학의 주요 관심 분야이다.[2] 정치경제학의 한 영역으로 시작하였다.[3]
기본적으로 경제학은 매우 거시적이고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다른 외적 조건이 동일하다면(ceteris paribus)"이라는 전제 하에서 모든 분석이 진행된다.(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배제를 추상(abstract)이라 부른다.) 그러나 경제학자마다 분석 대상과 전제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주목하거나 과감히 배제해버리는 부분은 모두 각각 다르다. 이러한 전제와 분석대상의 차이로부터 각 경제학파들의 차이가 생겨난다.이중 몇몇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던 문제들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국부의 성격과 원천'(애덤 스미스), '대지에서 수확되는 생산물의 분배를 규율하는 법칙'(리카도), '삶의 일상사에서 인간이 하는 행동'(데번포트), '이런저런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희소한 수단과 목적사이의 관계와 관련된 인간의 행동'(로빈슨)[4], '유효수요의 결정 요인 분석과 국민소득수준과 고용량'(케인스), '근대사회의 움직임에 관한 경제적 법칙을 규명하는 것'(마르크스)
경제학의 학파에는 고전학파, 케인즈주의, 제도학파, 통화주의, 신고전파, 행동경제학, 신제도주의등이 있다. 비주류 경제학으로는 대표적으로 포스트케인지언이 있으며 그 이외에도 신경경제학 등이 있다. 실증경제학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반면 규범경제학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연구한다.[5][6]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년 6월 5일 ~ 1790년 7월 17일)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의 정치경제학자이자 윤리철학자이다. 후대의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저자이다. 고전경제학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스미스는 일반적으로 경제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며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에 대한 이론적 심화를 제공했다.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년 ~ 1823년)는 영국의 경제학자이다. 영국 고전파의 이론 체계를 완성, 애덤 스미스와 함께 그 대표자이다.
유대인으로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고 경제학 연구에 뜻을 두어 경제학과 자연 과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런던 증권거래소의 중개인이어서 증권거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1809년 통화 문제에 관한 <금의 가격>과 <떨어진 곡물값이 자본 이윤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1817년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를 발표함으로써 그의 방법론을 체계화하고 이론 경제학자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이어 지대론을 기초로 하여 노동 가치설, 차액 지대론 등 분배의 여러 법칙을 밝혔으며, 그 밖에도 잉여 가치론, 이윤율 저하 이론, 국제 무역 이론 체계를 완성함으로써 후세의 경제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스미스의 절대 우위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비교 우위론을 발표했다. 1819년 이후 종신 하원 의원이 되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남작(John Maynard Keynes, 1st Baron Keynes [1]of Tilton in the Country of Sussex[2], CB, 1883년 6월 5일 ~ 1946년 4월 21일)은 영국경제학의 대표자이다. 1883년 6월 5일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으며, 이튼을 거쳐 케임브리지의 킹스칼리지에서 수학하고, 수학과 우등시험에서 12위로 합격했다. 졸업 후 한 때 인도성에 근무하다가 대학에 돌아와 금융론을 강의했고, 그 후 약 20년간 마샬(Marshall, A.)의 충실한 후계자로서 피구(Pigou, A.C.)와 더불어 케임브리지학파의 쌍벽을 이루었다. 또 Royal Economic Society의 서기로 있었고 Economic Journal의 명편집자로서 잡지를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경제학잡지로 육성했다.
이전의 학설들을 토대로 하여 '케인스 경제학'이라는 독창적인 이론을 창시해, 경기후퇴와 불황에 대해서 재정정책을 사용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케인스의 이론들은 케인스 경제학의 뿌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거시경제학파들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케인스는 현대 거시경제학의 창시자들 중 한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세기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경제학자로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3]
케인스는 1930년대에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 흔히 일반이론 이라고 불리는 책을 발표하였다. 이 책은 기존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시장주의를 비판함과 동시에 유효수요이론을 제시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 후엔 선진 서양국가들은 케인스의 경제정책을 채택하였다. 후에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그의 추종자들로 인해 대부분의 서양국가들이 케인스의 이론을 채택하게 된다.
1970년대에는 석유파동 등으로 인해 세계경기가 침체하게 된다.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밀턴 프리드먼등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맞아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케인스학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됨과 동시에 그 영향력이 크게 감소하게 된다.[4] 그러나 2007~2010년 금융 위기의 등장과 함께 케인스 경제학도 다시 조명받기 시작한다.
카를 하인리히 마르크스(독일어: Karl Heinrich Marx, 문화어: 칼 하인리흐 맑스;[1] 1818년 5월 5일~1883년 3월 14일)는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 라인란트 출신의 공산주의 혁명가, 역사학자, 경제학자, 철학자, 사회학자,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이다. 1847년 공산주의자동맹을 창설했다. 1847년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공동집필해 이듬해 2월에 발표한 《공산당 선언》과 1867년 초판이 출간된 《자본론》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레닌은 마르크스를 이론적 기반으로 삼았다. 맑스, 막스, 칼 마르크스 등으로 표기하기도 하나, 외래어 표기법에 준하는 표기는 “카를 마르크스”이다.
고전 경제학(古典經濟學, classical economics)은 경제사상사에서 최초의 근대 경제 이론으로 지목하는 경제학의 한 부류이다. 고전경제학을 정립한 주요 학자로는 스미스, 리카도, 맬서스, 밀 등이 있다. 이들 외에도 퍼티, 튀넨, 그리고 마르크스 등도 고전경제학자로 다루어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1776년 출간된 스미스의 국부론이 고전경제학의 시발점으로 여겨진다. 고전경제학은 19세기 중반까지 경제 이론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1870년 시작된 영국의 신고전경제학 발현의 근원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고전경제학은 경제 성장과 발전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였고 일정부분의 성과를 보였다. 고전경제학자들은 중세 사회로부터 자본주의의 발현에 이르기 까지의 사회 변화와 산업혁명의 결과 등 "장엄한 변동"에 대해 설명하였다. 또한 개인 각자의 이윤 추구가 어떻게 이러한 사회 구성의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고찰하였다.
고전경제학은 경제학의 관찰 영역을 지배자의 이해관계에서 계급간의 이해관계로 전환시켰다. 피시오크라트였던 케네와 스미스를 비교하면, 케네가 매해의 국가 수입을 왕의 국고에 한정지어 사고한 것과는 달리 스미스는 토지와 자본 설비를 사용한 모든 노동의 생산물을 국가의 수입으로 파악하였다. 스미스에 따르면 이러한 토지와 자본 설비는 개인에 의해 전유되는 것으로, 전체 국가의 수입은 노동자의 임금, 지주의 지대, 그리고 자본가의 이자로 구성되어 있다.
케인스 경제학(Keynesian economics)은 20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사상에 기초한 경제학 이론이다. 케인스 경제학은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이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혼합경제를 장려한다. 이는 시장과 민간 부문이 국가의 간섭이 없는 상태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고 주장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실제로 케인스 경제학은 여러 경제학자들이 방임주의의 실패로 인한 것으로 여기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케인스의 이론은 거시경제적 흐름이 각 개인들의 미시적 행동을 압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적 과정을 잠재 생산의 지속적인 성장으로 보는 18세기 후반 이후 고전 경제학자들의 관점과는 달리, 케인스는 (특히 불황기에) 경제를 이끌어 가는 요소로서 상품에 대한 총수요를 강조했다. 이런 관점에서 케인스는 1930년대의 높은 실업률과 디플레이션에 대해 거시적인 규모에서 대처하기 위해 정부가 정책적으로 소비를 유도해야 한다고 논했다. 불황기에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보다 많은 돈이 풀려서 시민들의 소비와 투자가 유도되어 경제가 정상 상태를 회복한다는 케인즈의 주장은 공급측면 경제학에 반대되는 의미로서 소비측면 경제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인즈 학파의 주장은 소위 통화주의자들과 많은 논쟁을 겪었다. 특히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장단기 효과에 대해서 두 학파의 학자들간에 많은 논쟁이 있었다. 케인스 학파의 학자들은 재정정책을 선호했지만, 통화주의자들은 재정정책의 구축효과 등을 지적하며 통화정책이 우월하다고 하였다.
케인스는 경제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금리 인하(통화정책)
- 정부의 인프라 투자(재정정책)
케인스는 금리를 낮출 경우, 투자가 활성화되며, 소비가 촉진될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중앙은행의 원칙적인 역할은 다양한 통화정책을 바탕으로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통화주의(通貨主義, monetarism)는 거시 경제의 변동에 화폐 공급량(통화 공급량) 및 화폐를 공급하는 중앙 은행의 역할을 중시하는 경제학 일파와 그 주장을 하는 경제학자를 말한다. 이들은 통화량을 조절하는 정부의 정책 역할을 중요시 한다. 화폐 공급량의 변동이 단기의 실질 경제성장 및 장기 인플레이션에 대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재량적 재정 정책의 성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던 케인즈식 총수요 관리 정책과 반대되는 입장으로 화폐 수량 이론에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재량보다는 규칙에 따라 정책이 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 등의 특색이 있다. 모니태리스트의 이론과 주장 전체를 모니태리즘(monetarism)라고 부른다. 주창자는 밀턴 프리드먼이며, 그의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떠한 경우라도 화폐적 현상이다"라는 말이 유명하다.
화폐 공급량이 단기적인 경제 변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으로 재량적인 화폐 공급 및 금융 정책에 부정적이고, 규칙에 기반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경제 상황에 대한 정부 중앙 은행의 인식 지연과 정책이 실시될 때까지 지연, 그리고 효과가 실제로 파급될 때까지 지연 등 각종 지연의 존재 등으로 재량으로 화폐를 공급하려고 해도 항상 적절한 공급을 할 수 없으며, 그 괴리가 거시 경제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오히려 경제에 불필요한 변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화폐 양이 단기적으로는 실질 경제에 큰 영향력을 가진다고 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실질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없어 인플레이션에만 작용한다는 생각이나, 재량보다는 규칙을 중시해야한다는 주장은 뉴 케인지안을 포함한 현대 거시 경제학에 널리 포함되어 있어 많은 모델이 어떤 의미에서 모니태리즘이다. 따라서 예전과 같은 케인지안 또는 모니태리스트에 대한 구분은 의미가 없어지고 있으며, 오늘날 거시 경제학자 중 전통적인 모니태리스트를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모니태리스트가 옹호하고 있는 화폐 수량 이론은 어빙 피셔의 화폐 수량 방정식의 변형 판이다.
- M :화폐 공급량
- v :화폐의 소득 유통 속도
- P :가격 수준
- Y :산출물의 수량
에 따라 화폐의 소득 유통 속도(v)가 일정할 때 산출물의 양(Y)이 일정하다면 화폐 공급량(M)에 의해 가격 수준 (p)의 명목 가치가 결정되는 것, 즉 물가는 발행되는 화폐의 양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화폐 수량 방정식은 상태 방정식이므로 본래는 그런 인과 관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모니태리스트는 인과 관계를 나타내는 식으로 해석하고 화폐 공급량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중시한다. 이것은 화폐의 소득 유통 속도(v)가 경기 확장 국면에서는 상승하고, 수축 국면에서는 하락하는 추세에 있는 등 단기적으로는 변동하지만, 장기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는 관측 결과에 근거한다.
행동경제학(行動經濟學, behavioral economics)은 이성적이며 이상적인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를 전제로 한 경제학이 아닌 실제적인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여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규명하기 위한 경제학이다.
애덤 스미스 이래 경제학은 많은 이론적 발달이 있었음에도 실제의 경제에서 현실과의 괴리를 보였다. 이는 사람이 갖는 여러 사회적, 인지적, 감정적 이유와 편향에 의해 일어나는 심리학적 현상에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특히 실험 심리학의 발달이 행동경제학의 발전에 깊은 관련이 있는데 이상적인 경제인을 전제로한 종래의 경제학 모델이 실제에서 맞지 않는 이유를 다양한 인간의 심리에 관련된 실험 연구를 통해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였다. 대니얼 카너먼은 행동경제학의 발달에 대한 공로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미시경제학(微視經濟學, 영어: microeconomics)은 크게 봤을때 거시경제학과 더불어 경제학을 이루는 분야중 하나로, 가계와 기업 등의 개별경제주체들 간의 행위와 상호영향 등에 의한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과 거래량, 각 시장구조에서의 균형점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설명하고 연구하는 분야이다.
시장은 수요자(재화나 용역을 필요로 하는 사람)와 공급자(재화나 용역을 제공하는 사람)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들 수요자와 공급자는 특정한 시장구조내에서 상호작용 한다. 따라서 미시경제학의 주된 분석대상은, 1. 수요자 2. 공급자 3. 시장구조이다.
주류경제학(신고전파 경제학)의 미시 분석에 따르면, 소비자는 소득(예산)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효용(상품 소비로부터 얻는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비량을 결정한다. 또 생산자는 가능한 기술수준에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산량을 결정한다. 소비와 생산에서의 두 가지 결정이 만나는 점에서의 상품량과 가격이 각각 균형상품량과 균형가격이 된다. 미시경제이론에서는 이 균형점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거시경제학(巨視經濟學, 영어: macroeconomics)은 크게 봤을때 미시경제학과 더불어 경제학을 이루는 분야중 하나로, 모든 개별경제주체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인해 나타나는 한 나라의 경제전체 현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 국민소득, 물가, 실업, 환율, 국제수지등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의 결정요인과 이러한 변수들간의 상호관련성, 국민소득의 변화를 설명하는 경제성장이론과 단기적으로 실업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경기변동이론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거시경제학은 미시경제학과 분리되어 있다. 이는 개별 경제주체나 시장의 미시적인 의사결정을 집계하는 이론이 존재하기는 하나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시경제학은 크게 봤을때, 시장은 안정적이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 불필요하다고 보는 고전학파와 시장은 불안정하므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경제안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케인즈학파로 나뉜다.
- 고전학파는 시장경제체제는 흔히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라는 자체교정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정부개입은 경제를 왜곡시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상은 1970년대 통화주의학파이론으로 이어졌고, 새고전학파또한 이를 계승하고 있다.
- 케인즈 학파는 1930년대 경제대공황이 발생하면서 시장경제체제의 자체능력으로 불황을 극복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대두되면서, 정부가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등을 통한 총수요 증대를 통해 시장의 불안정성을 보완해야한다고 주장한 케인즈에 의해 발전되었고, 새케인즈학파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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