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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궁극에의

● (Guide) 꿈은 이루어진다

by 큰바위얼굴. 2022. 1. 3.

1막.

다 함께 잘 살자! (공동부유)

이 말이 산책길에 영향을 주어 돌아와 생각을 정리한다.

 

옛날에는 혹은 지금도 인류는 자기수양을 통하여 극의 혹은 선의에 도달코자 한다.

과거에는 더욱 뚜렷했다. 먹고 사는 거 외의 대부분 시간을 자기수양으로 보냈으며 그 겉으로 드러난 힘이 발달하여 예로써 승격됨에 따라 무예 혹은 무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점차 평생을 수양해야 하는 굴레(?) 혹은 활력을 다른 곳, 즉 외부로 시선을 돌렸고 그 결과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 평생 수양하는 삶이 누구나 바라는 삶일까!

더구나, 개 중에 한 명 혹은 몇 명 일부만이 영웅으로 대접받는, 난 중의 난 만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약육강식의 대표적인 사례로써 쌓은 수양은 표출하기 마련이니 이해갈등이 끊이지 않고 말 보다는 힘이 앞설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한 평생 수양하는 걸 바라지 않게 되었고 그 바람은 외부로 시선을 돌렸고 다른 방식의 입신양명을 꾀하게 되니 그게 바로 등 따시고 배불리 먹는 의식주 문제로 연결되었다.

 

바란다. 누구나.

 

수양하는 삶을 벗어나 손 재주와 발 재주, 말 재주, 재치 등 세상살이와 사회현상에 눈을 돌리니 자연의 흐름은 일정한 법칙이 있음을 깨닫게 되고 각종 동식물의 생태를 연구하니 인류의 삶이 윤택하게 변하였다. 중간에 튀어나온 물물교환의 대체품인 화폐는 물질만능주의를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고 행복감이 먼저인지 물질이 먼저인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른다. 더구나, 2022년 1월에 들어선 지금 가상화폐라 이름 붙여진 비트코인은 삐죽이 솟은 산 마냥 등락을 거듭하면서 인류의 욕망을 거침없이 표현중에 있다. 이런 마당에 메타버스 라는 신 용어가 등장하여 현실을 극복 혹은 벗어나려는 걸 공식화 하였다.

 

옛날 인류는 자기수양을 통하여 극의 혹은 선의에 도달코자 하였으나, 현재 인류는 금, 달러, 원유, 가상화폐로 이어지는 교환가치를 통하여 극의 혹은 선의에 도달코자 하는 듯이 보인다. 살아있는 동식물의 삶이란 결국 경험이 축적되어 그 에너지가 세상만물에 흐르는 것을 말함인데 인류는 자기수양을 통한 직접 에너지 발생으로부터 이제는 기술개발을 통한 외부물질을 통한 간접 에너지를 발생시키면서 경험을 축적하고 그 에너지를 세상만물에 뿌리고 있다.

 

에너지의 흐름에서 벗어날 존재는 없다.

 

나 또한 지금 PC모니터를 보면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 또한 생각을 더듬어 기록을 통하여 활동하고 있음은 결과적으로 에너지를 씀과 동시에 생각과 기의 흐름, 그리고 감정의 변주가 활력(흐름 = 에너지)이 되어 블로그를 통해 세상에 전파되고 전파된 기록(생각과 기의 흐름, 그리고 감정의 변주 = 활력)은 세상만물에 속하여 흐르게 된다.

 

문득 아침 산책길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옛날 자기수양을 통한 극복, 극기, 지향으로 인한 경험(= 에너지)이 세상에 힘이 되었다면, 현재는 각종 기술개발과 협동을 통한 경험(= 에너지)이 세상에 힘이 되었다고. 그렇다면, 세상에 힘이 되는 에너지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환될까?

 

자기수양을 통한 경험(= 에너지)은 너무 효율이 낮다. 성공하지 못한 경험 또한 에너지를 생산했겠지만, 성공한 에너지만 못하고 그 감정의 변주는 우하향하게 되니 결코 큰 흐름에 좋지 못한 결과로 나타나게 되니 결과적으로 자기수양이라는 방식의 경험(= 에너지)은 점차 줄어들다가 종국에는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바야흐로 인류는 직접 자기수양을 통한 경험을 통한 세상만물을 움직이는 에너지 생산으로부터 외부 기술개발과 협동을 통한 경험을 통한 에너지 생산방식으로 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왜 중국 시진핑은 공동부유를 내세웠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다 함께 잘 살자.

 

옛날 자기수양을 통한 경험 에너지가 소수, 즉 일부만이 그 혜택을 누렸음을 볼 때 종국에는 사라지게 되었듯이 현재 기술개발과 협동을 통한 경험 에너지 또한 일부(= 재벌)가 그 혜택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대부분의 인류가 쌓아야 할 경험을 제한하기 때문에 노동관점으로 접근하든 자본주의 관점에서 접근하든 사회주의 관점에서 접근하든 민주주의 관점에서 접근하든 결국 동일한 결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그 형식이 다를 뿐 결국 기본소득 개념이나 공동부유는 인류가 해야할 역할, 기술개발과 협동을 통한 경험 에너지 생산을 조금 더 잘 할 수 있도록 열어주는 기능을 할텐데 이 또한 선각자 혹은 선도자가 이끄는 메타버스의 탄생으로 기존 생태계가 아닌 아예 다른 생태계에서 그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것은 자명해졌다.

 

옛날 자기수양은 오늘날 기술개발과 협동으로 경험 에너지를 생산했다면 앞으로 미래에는 경험 에너지를 어떤 방식으로 발생시킬 것인가? 이는 자기수양처럼 극히 일부만이 실현가능한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며, 또한 기술개발과 협동처럼 자본(= 화폐주의)만이 누릴 혜택이어서도 안 될 것이다. 이는 이미 경험이 말해주고 있다.

 

미래 인류는 세상만물에 요구되는 에너지를 어떤 방식으로 생산할 것인가?

 

앞서 꿈을 통한 경험은 스스로를 치유함과 동시에 활력을 부여하고 있음을 살펴본 적이 있다.

 

첫번째 이야기. 메타버스에 관한 내 정의와 지향점을 살펴보았다.

https://blog.daum.net/meatmarketing/5179?category=2005839 

 

메타버스의 내 정의와 지향점

김국현의 경우, 메타버스의 현실의 재구성이라는 측면에 주목했다.[11] 「메타버스 내 게임형 가상세계와 생활형 가상세계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그는 『웹 2.0의 경제학』에서 메타버스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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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이야기. 10년후 오늘을 통하여 구운몽이 현실이 됨을 인지하였다.

https://blog.daum.net/meatmarketing/5180?category=2005839 

 

10년후 오늘 *****

구운몽이 현실이 된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5948 구운몽(九雲夢)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 작품의 기본설정은 주인공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뜻을 꿈 속에서 실현하다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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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이야기. 잠을 기준으로 세상을 구분하여 잠이 든 꿈과 잠이 들지않은 가상현실의 차이를 살펴보았다.

https://blog.daum.net/meatmarketing/5200?category=2005839 

 

생각, 꿈, 상상의 세계를 잠이 들고 들지않은 세상으로 구분해본다.

메타버스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내가 접근하고 있는 것은 메타버스가 만들어 낼, 혹은 우리가 메타버스를 통해 만들고자 하는 그 궁극적인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이다. 기기를 이용한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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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이야기. 잠이 들든 들지않든 진전된 정신세계는 영원하다면 그 세상에서 당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며 삶의 진의를 되묻게 되었다.

https://blog.daum.net/meatmarketing/5206?category=2005839 

 

영원한 정신세계에서 너가 바라는 건 뭐니?

정신세계에 접속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내용을 이해하려면 이전 것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어느 순간 어떤 식으로든 육체에 기반을 둔 현실세계로부터 정신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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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이야기. 그래서 도대체 바라는 게 뭐냐 라는 물음에 답하려고 했더니 엄습한 기운에 멈췄다.

 

https://blog.daum.net/meatmarketing/5207?category=2005839 

 

바라는 게 뭐니?

어디에 다달을지 모를 궁리의 끝은 과연 있을까? https://youtu.be/0Np1p4bRe9A 그래, 나두 갖고싶고 욕심낸다구. 엄습한 기운에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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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번째 이야기. 그리고 잠시, 기록을 통한 벌이를 생각해보다는 기록이 문화라구! 하는 걸 생경스럽게 받아들였다.

https://blog.daum.net/meatmarketing/5216?category=2005839 

 

그리고, 지금.

공동부유(다 함께 잘 살자)라는 외침이 내가 고민중에 있는 궁극에 어떤 힌트를 주더라.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원인이 뭘까? 그 흐름이 지향하는 건 도대체 왜 일까? 그래서 세상은 어찌 변한다는 건지, 변해 갈 것인지.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라는 물음이 튀어나왔고 걸음마다 계속 궁리를 더한다.

 

옛날 인류는 자기수양을 통한 기의 흐름이 세상만물에 직접 연결가능한 에너지 형태였다면, 오늘날 세상만물은 전파, 전기, 파장, 흐름 등 대부분이 전자기적인 에너지 형태를 띄고 있고 그 에너지는 이제까지 원유를 통해 얻어왔는데 이제곧 전기를 직접 생산하는 방식(배터리, 수소, 태양열, 원자력)으로 바꾸려고 한다.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면에서 최근 유럽의회는 원자력 또한 친환경에 포함하였다. 물론, 친환경이냐 아니냐라는 논점은 결과물이 친환경적이냐의 문제와 생산 혹은 가공중에 발생한 오염은 어찌 바라봐야 하느냐의 문제로 나눠 볼 수 있겠지만 지금 난 환경적인 측면에서 에너지를 다루는 것이 아니니 생략하겠다.

 

세상만물은 흐름이 있어야 생장가능하다.

연결됨을 말한다.

옛 기의 흐름이 그러했고, 현재 전자의 흐름이 그러하며, 앞으로 파동, 파장, 혹은 사념(= 기의 흐름)의 흐름이 그러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자기수양 방식에서 기술개발 방식으로 다시 메타버스든 가상현실이든 꿈을 통한 정신세계든 그 경험은 결국 흐름을 만들어야 할테고 그 형태는 현재의 전자의 흐름방식에서 기의 흐름 방식으로 전환될 여지가 커졌다.

 

그렇다면 자기수양을 잘 한 인류가 유리한 것이 아니냐 라는 물음이 가능하다. 물론 그렇다.

정신세계에서의 활략은 현실세계에서의 육체와 재능을 가져갈 수 있을 수 있고, 물론 난 그런 제약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현 게임은 대부분 합리적인 생각에서 최대한 그렇게 만들고 있고 만들려고 한다. 공평, 공정이라는 가치를 반영하여.

 

어찌 되었든 공평, 공정이란 가치는 논외로 치자. 복잡해지니까. 이해관계가 얽히고 섥혀 본질을 흐리니까.

미래 정신세계에서는 현실에서 눈으로 보듯이 '뚜렷함'(1)이 가장 먼저 요구되며, 더구나 꿈을 통한 정신세계로의 진입은 꿈에서 깨어나서 잊혀져버리는 망각을 잊지 않도록 '저장'(2)하는 것 또한 요구된다. 일상의 기록처럼 경험이 실시간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가고 싶은, 죽기전에 가봐야 할 명소를 정신세계에서 다녀왔다.

그 경험은 세상만물을 흐르게 한다. 그런데 그 경험치는 현실세계에서 수고한 이동시간, 참여, 계획, 함께한 사람들과 주고받는 추억, 감정의 변주 등 이런 것과 비교할 때 너무 적다. 결국, 여행을 많이 가서 그 만큼의 경험을 쌓거나 현실에서 해당하는 경험만큼 힘든 여정이 되도록 하거나, 나아가 여행이 아닌 제작의 범주로 넘어서서 경험을 막대하게 쌓게 한다.

 

미래 정신세계에서 인류는 제작을 한다.

과거에 기반하여 빠르게 선별하여 가장 합리적인 답을 내는 A.I.와 명확히 구분된다. 인류는 세계를 만든다. 우주를 만들고 도시를 만들고 거기에 게임을 하듯이 게임을 보듯이 즐거움을 넣는다. 다 함께 참여가능토록.

 

어제, 치형이는 생일선물로 마인크래프트를 노트북에 설치했다. 그리고 잠시 화면을 보니 옆에서 영탁이가 알려준다. 뭔가를 만든다고. 앞으로 인류는 레고블럭이든 마인크래프트 피스든 연습을 통하여 세계관을 갖추게 되고 나아가 정신세계에 진입하면 이미 만들어 놓은 세상을 탐험하거나 종국에는 자신이 평생 만들어 나갈 역작을 꿈꾸게 되며 그걸 정신세계에서 구현코자 노력한다. 애쓴다.

 

꿈은 이루어진다.

 

 

... 2막.

 

자, 그렇다면 나이 50을 바라보는 나는 무엇을 할까?

자본의 축적이 어느 수준 이상에서는 의미가 없음을 안다. 연결된 관계에서 효도하고 어울리고 함께 하는 것에 의미가 있음을 안다. 자본, 물질. 이런 것은 살아가는데 필요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너무 매몰되었다. 일에.

 

인류는 일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경험을 하고 에너지를 생산하는데 있어서 삶이 너무 고달픈 건 하향수준에 있음이다. 우리 인류는 A.I.와 로봇을 통해 일을 나누고 삶의 질을 상향수준으로 전환할 수 있음이다. 이를 위해 부의 분배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먹고 살 만큼, 즐길 만큼 벌면 족하다. 더 애쓰고 더 노력하여 이룬 성취는 타의 모범이 되긴 하다만, 너무 뻔하다. 식상하다.

 

식상한 나머지 그만둔다.

식상하지 않도록 흥미진진이 넘치는, TV를 '바라보고', 유투브를 '넘겨보고', 웹툰을 '읽고' 하는 간접경험은 점차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게 하거나 직접 그 배우가 되어 보거나 되는 경험을 쌓아보거나 그 배우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실제 그렇게 느끼는 '체감'(3)이 무척 중요하다.

 

앞서 살펴본 정신세계에서 현실에서 눈으로 보듯이 '뚜렷함'과 꿈에서 깨어나서 잊혀져버리는 망각을 잊지 않도록 '저장'하는 것과 함께 실제 그렇다고 느끼는 '체감'. 이렇게 3가지 요소는 정신세계 진입에 필요하다.

 

그런다음, 정신세계에서 서로 연결되는 파장, 파동, 기의 흐름과 같은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그 에너지원은 서로 느끼고 함께 하며 실제 그렇다고 느낄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뭐가 있을까? 뇌파로 가능할까? 연결은 가능해 보이지만 뇌파와 뇌파가 연결된 세상이 꿈으로도 연결가능할까? 뇌파가 아닌 내가 지금 기록하며 생각하는 그 생각의 흐름이 곧 연결된다는 건데 그렇다면 내 생각이 곧바로 연결가능하도록 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어떤 빗장을 빼야 하는 것일까?

 

연결. 연결이 핵심이다.

 

정신세계조차 우린 연결되어 서로 존재감을 느끼고 뚜렷이 알며 함께 하고 대화하듯 주고받음이 편안하다. 여행이 갖는 의미는 장소 외에 남다르지 않다. 다만, 직접 그 속에서 살아보는 건 다르겠지만. 급속한 방문이 목적이 아니라면 경험은 살아보는 것에서 더 쌓인다.

 

일단, 지금 기록하며 생각하는 그 생각의 흐름이 곧 연결된다는 건데 그렇다면 내 생각이 곧바로 연결가능하도록 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어쩌면, 지금 내 생각을 연결짓는 방식 하나와 잠을 통한 꿈에 연결짓는 방식. 이 둘을 궁리하면 될 듯하다. 배고프다. 밥 먹으로 가야 해서. 이만. 김성호.

 

 

 

  • 스스로 `自`2022.01.03 11:17

    석유 원료로부터 전기로 전환됨에 있어 자동차부터 시작한다. 이동이 중요함이다.

    그렇다면 정신세계로 진입하면 이동이 우선될까?
    인터넷은 이동인가? 증식인가?

    자동차는 이동수단이다.
    다만 이동수단은 목적지를 연결함에 의미가 있지, 자동차 자체에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동차는 이동이 아닌 연결로 봐야 한다.

    이는 인터넷 또한 마찬가지다. 홈페이지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볼 수 있는 연결된 세상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정신세계에서 연결됨은 어떤 형식일까?

    무척 궁금하다. 궁리하자. 궁리~

    답글
  • 스스로 `自`2022.01.04 08:08

    생각은 감정을 통해 연결된다.
    갑작스럽고 강렬한 두려움은 잠을 자는 사람조차 깨울 만큼 강하다.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충주시 산책길에서 세종시에 잠든 아내를 깨운 경험으로 볼 때 생각은 감정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감정이라 함은 면면히 흐르는 시냇물처럼 잔잔하다가도 강렬한 느낌은 즉시 전달되는 속성이 있다. 강렬한 느낌을 상시 주고받을 수 있다면 생각은 거기에 편승하여 연결지어 함께 할 수 있다.
    다만, 강렬한 느낌을 상시 주고받는다는 건 상당히 피로한 일이며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강렬한 느낌을 신호로서 보내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강렬한 느낌을 상시 보내면서도 피로하지 않으면서 에너지 소모조차 적게 드는 그 상태에 있어야 한다.

    강렬한 느낌, 혹은 사념, 또는 생각을 보낸다. 누군가를 특정해서 보낸다. 강한 사념을 보내는데 도움을 주는 장치, 서로가 연결된 상태, 강한 사념을 상시 주고받는 상황, 그러면서 피로하지 않고 에너지 소모가 거의 없는, 바라는 바가 크다. 강한 사념에는 큰 에너지가 필요함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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