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향점을 담았다. 이전에 사용한 '경험'이란 단어는 굉장히 넓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서 왠지 어색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주고자 하는 지향을 담아 '실천'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순간, 그 속에 속한 테마들도 살짝 바뀌었다.
'실천'은 보고듣고, 읽고, 쓰고, 분석하고, 참여하고, 전달하며, 문제풀이 하는 과정을 말한다. 아직 표현하기 라는 코너를 더하여 유머를 넣는 작업을 시작하진 않았지만 그걸 알고 있다는 사실과 앞으로 해나갈 무엇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수양'은 '실천'과는 사뭇 영역이 다르다. '실천'이 주로 행동에 어울린다면 '수양'은 내면 혹은 마음에 가깝다.
미래를 탐구하고,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나아가 꿈과 현실을 연결할 방법은 무엇인가? 를 궁리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궁리를 하면 할수록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 오류가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물음으로 답하려니 나를 알아야 하고 나를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며 나의 역량과 재능이 그에 미치지 못함을 느낀 순간 우울해지기 까지 한다. 그걸 거꾸로 돌려서 나 중심을 너로 바꾸니 모든 사고의 방향이 시원스레 해소된다. 세상에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하여 궁리하면서 그 속에서 내가 할 일을 찾는 방향으로 궁리하니 이처럼 편안할 수가 없다.
또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물음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살긴 뭘 어떻게 살아. 일해서 밥 먹고 쓰고 즐기고 사색에 잠기고 수양하면서 사는 거지. 답은 단순했다. 어떻게 라는 질문 보다는 그런 고민할 시간에 Just do it 이란 말이 튀어 나왔다. 맞아. 그냥 해. 뭘 그리 고민해. 앉아있지 말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그냥 해. 지금 하고 싶은 걸 그냥 해.
그러면, 궁극에 도달할 수 있을 꺼야. 니가 진정 바라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꺼야. 살아뭣해? 사실 답은 정해져 있잖아. 죽음. 죽기 전까지 이승에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착하고 부지런하며 인자하고 너그러우면서 예의바르고 냉철하면서 엄격하며 엉뚱하면서도 유쾌한 자기만족을 알며 남을 인정할 줄 아는 신사 혹은 군자로서의 삶. 성인의 가르침을 본받는다. 잘 되기를 바라고바라는 만큼 잘 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걸 그렇게 실천하면서 수양을 쌓으면서 살아가는 모습. 일의 경중이 아니라 일의 귀천이 아니라 일은 지금 머물러 있는 작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걸, 일은 그저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순간 묻게 되더라.
우린 있잖아. 잠을 자잖아. 그런데 잠을 자면 죽은 거야. 산거야. 아니, 잠을 자면 그건 나야 아니야. 혹은 잠을 자면 그 삶은 내 삶이야 아니야. 잠은 잠이고 현실은 현실인 게 맞긴 한데 잠은 내가 자는 것이고 현실 또한 내가 사는 거잖아. 물론, 현실에서 생각이 그대로 되지 않으니 잠과 같이 무의식에 가깝게 꾸어지는 꿈을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꿈을 꾼다는 게 멋지잖아. 심지어 꿈 속에선 죽지도 않아. 얼마나 판타스틱해. 그런데 현실에선 죽어. 그럼 잠을 자는 나는 육체가 있어야 하고 그 육체는 튼튼해야 하며 그 육체는 현실에서 경험을 얻어야 하잖아. 그럼 잠에 들어 꾸게 되는 꿈은 그걸 또 신나게 드라마로 만들어 버리고. 상상이란 혹은 마음이 잠, 꿈, 현실, 생각, 이성, 감정을 모두 연결하는 셈. 일단.
그렇게 꿈과 현실을 연결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무리 봐도 이는 뇌파의 연결이나 양자의 파동과 같은 기술적인 요소 보다는 깨달음에 가까워 보이니까. 물론 나중엔 기기의 도움을 받으면 좀 더 편안한 꿈나라로 향할 수도 있고, 꿈이 투영되어 현실에 나타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핵심은 꿈이 현실에 투영되는 모습이 아니라 꿈과 현실이 연결된 세상에서 살아갈 때 느낄 그 감동 그 자체에 있다고 본다. 상상이 현실이 된다. 이를 체감한다. 우와,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더구나, 그 상상이 무한대로 뻗어나가서 새로운 세상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그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축적된 경험 만큼 우린 성장한다. 어디로? 어디까지? 솔직히 요건 모르겠지만, 다만 우주개척이 그 방향 같지는 않다. 그냥 누구나 품고 태어나서 수양을 통해 닿을 수 있을 그 영역처럼 보인다. 어쩌면 신의 영역일 수도 있겠고. 그렇다면 마냥 좋아보이진 않아. 신 또한 신망과 신앙이 요구되며 그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하잖아. 과연 신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만년을 사는 드래곤을, 하루를 알차게 산 하루살이를, 어찌 비교할까? 각자의 역할에 따라 돌고 돌아가는 삶. 때론 망부석이 되어보기도 하고, 때론 하루살이가 때론 드래곤이, 때론 바람이, 때론 행성이 되어 보이는 면에서 활보한다손 치더라도 그 각자의 모습이 만들어 낸 '지금'의 그 모습을 어찌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까! 모든 건 지금 이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 내일은 상상 속에 있는 것. 우리에게 가장 큰 무기가 있으니 그건 바로 반복이라는 것. 지루해 하지 말고 꾸준히 하다보면, 그것도 싫다면 바라고바라다보면 이루어진다 라는 단순한 진리. 즐거웠네. 재밌었네. 보람찼어. 그래 다행이야. 잘 살았네. 기다리쇼, 곧 따라갈테니. 사랑하고 믿고 따르고, 그렇게 만든 세상이 이 보다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꿈이나 상상조차 이 벅찬 감동을 따라올 수 없으니. 좇고 좇는 것이 반복을 위해 필요하다손 치더라도 우리가 궁극적으로 나아갈 길은 가만히 느껴보는 거. 사라짐에 대한 강한 애착이 사라질 때 쯤 아마도 Great! 하고 손가락 척 내밀고 미소짓겠지 싶네. 미안하고 안타까운 면면을 씻어주어 앙금이 남지 않아야 해. 화와 욕이 저만치 살짝 맞닿은 정도만 있으면 족해. 그렇다고 버리진 말고. 모두 필요한 거다. 아프고 슬프고 눈물을 어찌 비난할 수 있을까! 다 필요한 거다. 내 지금 모습이 나로 바로 인식할 때, 그때 맞이한 벅찬 감동이 바로 행복감. 그럼 되었다. 성호.
'블로그 발자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구 신청을 받아들였다. (0) | 2022.07.07 |
---|---|
요일마다 하는 일마다 (0) | 2022.07.05 |
남김 (0) | 2022.03.23 |
부끄러움을 딛고 온라인 집(블로그)을 단장한다. (0) | 2022.01.21 |
블로그는 내 일기요 인생노트와 같다. (0) | 2021.09.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