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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감(블로그 발자취)

큰바위얼굴.

by 큰바위얼굴. 2022. 10. 21.

닉네임 : 큰바위얼굴.

예티는 예티스럽다.


나를 지칭하는 말로 한 참을 고민했다. 그런데 다음블로그에서 티스토리로 이전 https://meatmarketing.tistory.com/5569 하는데 첫 관문이 바로 닉네임을 적어야 다음 단계로 진행된다는 점 때문에 서둘러 떠올려 본다. 나를 지칭하는 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큰바위얼굴. https://meatmarketing.tistory.com/5296

큰바위얼굴과 메모광

"다시 고향에 돌아와 저 멀리 큰바위얼굴을 바라보니 어느사이엔가 닮아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라고 기억된다. '큰바위얼굴' 동화를 보고나서 난 바라고바란, 그렇게나 감추고 감춘다고 해

meatmarketing.tistory.com

그렇게나 닮고자 했던가, 그렇게나 심상에 맺었었던가. 그 이념이 그 사상이 그렇게나 마음에 들었던가. 그 다음 떠오른 건 키다리아저씨. 그런데 아저씨? 아저씨 라는 용어에 사뭇 다른 생각이 들어 제외하고 다른 걸 더 찾아보건만 떠오르길 거부한다. 그런데 '큰바위얼굴'은 이미 사용중이란다. 아, 어쩌랴.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하다가, '큰바위얼굴.'으로 하니 입력이 되었다. 오~ 예.

그 전에 내가 지향했던 "사라짐에 강한 애착을 느낀다. 남김" 이란 문구가 어느 새 그렇게나 지우고 바꾸려해도 이 보다 나은 걸 찾을 수가 없어 헤맸던 것이 언제 아쉬웠던 마냥 그렇게 사라졌다.

이제 큰바위얼굴. 으로 활동 중이다.


내게 소중한 사람 3명만 말해 보시오.

내게 소중한 것 3개만 말해 보시오.

나에 대해 정의를 내려보시오.

내가 바라는 것을 말해 보시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 말해 보시오.

스스로에게 충분히 아끼고 격려하고 있는지 말해 보시오.

쓰고 만들다보면 어느 새 지나온 발자취가 다가올 아늑함(죽음) 만큼 커질 때, 아마 그 때쯤 지금 이 글을 다시 보면서 말하겠지. 수고했다. 성호야. 잘 살았어. 충분해. 뭘 더 바랄래. 나머진 다음 생에. 하루 하루 벗과 벗이 함께 있어 보고 듣고 먹고 하는 원초적인 자극이야말로 어쩌면 우리 사람됨이 너무도 지극히 말초적이기 때문일꺼야. 보여주고 말하고 나누는 것이야말로 나아가며 살아가는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소홀히 할 수 밖에 없는 건 그렇기 때문일꺼야. 뭘 더 바랄래? 뭘 더 바라니? 그렇게 모아서 그렇게 아껴서 그렇게 성공해서 그렇게 얻어서 뭘 하려고 그러니? 어쩌면, 답을 알고 있으면서 그 답 외의 답을 찾아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지치고 힘든 몸을 뉘일 때와 지치고 힘들지만 벌떡 일어나 새벽 5시에 나설 때는 동일한 선 위에 있다. 그것 또한 저것 또한 내 모습이다. 달리 보지 않지만 같은 모습이다. 달리 보아도 달리 보일 뿐 내 모습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아마 그래서 상대적이라는 말이 떠올랐나 보다. 상대적이란 사람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

상대적이라 함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 이다.

출처: https://meatmarketing.tistory.com/5705 [김성호 이야기:티스토리]

답은,

죽는다는 것과 멀지 않다는 것.

성공, 성취, 얻음, 만족, 행복이란 상대적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마지 못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해 나가는 그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

경험이 쌓이고 쌓여 넘쳐 흘러 주변으로 번져감에 따라 인연이 맺어지는 것 또한 자연스런 것.

뭘 바라고 바래 뭔가를 하려고 하기 보다는, 뭘 하든 뭘 했든 그 마음 그대로 상대에게 전하는 것.

내 생각 얼마나 했어? 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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